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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에서 승소했는데 2심에서 화해권고결정?

화해권고결정을 받았을 때.

by 정현주 변호사



법률사무소 봄에서 가장 많이 진행하는 사건이 손해배상소송이다 보니,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데 '화해권고'결정이 내려오거나 갑자기 '조정으로 회부'가 되는 경우가 많다. 많은 의뢰인들은 이처럼 '화해권고'결정을 받게 되면 그 내용대로 당장 따라야 하는 건지, 또 갑자기 왜 화해권고결정이 나왔는지 궁금해 한다.


' 변호사님, 화해권고결정이 뭔가요? 이걸 따르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건데요? '


화해권고결정이란 간단하게 말하자면 판사님이 생각하는 조정안이다. 화해권고는 민사소송법 225조에 근거를 두고 있다.


민사소송법 제225조(결정에 의한 화해권고) ① 법원·수명법관 또는 수탁판사는 소송에 계속중인 사건에 대하여 직권으로 당사자의 이익, 그 밖의 모든 사정을 참작하여 청구의 취지에 어긋나지 아니하는 범위안에서 사건의 공평한 해결을 위한 화해권고결정(和解勸告決定)을 할 수 있다.

② 법원사무관등은 제1항의 결정내용을 적은 조서 또는 결정서의 정본을 당사자에게 송달하여야 한다. 다만, 그 송달은 제185조제2항·제187조 또는 제194조에 규정한 방법으로는 할 수 없다.



이처럼 화해권고결정이란 말그대로 화해를 권고(勸告)하는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따라야할 의무 같은 것은 없다. 그렇기에 법에서는 위와 같은 화해권고결정이 내려오더라도 송달을 받은 날로부터 14일 이내에 이의를 신청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당사자에게 갑작스러운 화해권고결정이 당황스럽기만 하다. 특히 1심에서 다 이겨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에 불복한 상대방이 항소하는 바람에 변호사를 선임하고 다투다가 갑자기 불리한 화해권고결정이 나오거나 바로 직권으로 조정회부가 되는 경우가 생기면 억울하기 그지없다. 심지어 드물기는 하지만 억울한 마음에 화해권고결정에 대한 이의를 했는데 같은 내용으로 두 번의 화해권고결정이 내려오는 경우도 있다.


' 변호사님! 제가 1심에서 이렇게 화해권고결정이나 조정이 되었으면 그대로 받아들였을 거에요.. 그때 내가 직접 조정기일에 출석해서 그렇게 조정을 하려고 했는데... 그쪽에서는 나오지도 않고. 그래도 변호사님이 힘써주신 덕분에 결국 우리가 이겼잖아요. 그런데 피고가 갑자기 항소해서 결과적으로 저는 변호사 비용을 또 지출하고 또 가압류 비용도 내고... 그런데 판사님이 왜 화해권고를 내리시는 건가요? 차라리 상대방이 다른 주장을 한 거라면 받아들일 수 있겠는데 새로운 주장이나 증거는 아무것도 없잖아요. 그런데 판사님이 왜 화해권고결정을 하시는건가요? '


억울한 의뢰인은 답답한 마음에 나에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물론 그의 이야기도 당연히 이해가 갔다. 일반인이라면 누구나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 아닐까? 다 이긴 소송이라고 생각해서 당연히 항소기각을 예상했는데 난데없는 화해권고결정이라니. 당사자에게는 하늘과 같은(?) 판사님으로부터 내려온 화해권고결정은 정말로 권고(勸告)인지 강권(强勸)인지 알 수가 없다.


법률사무소 봄 정현주 대표변호사, 김지혜 변호사


항소심에서 난데없는 화해권고결정이 나와 이의신청을 했던 우리는 사실상 같은 내용으로 두 번째 화해권고결정을 받고 망연자실했다. 두 번째 화해권고결정이 나왔을 때 마침 그날 조정위원회 모임이 있어 그 자리에 계셨던 현직 판사님들과 20년이 넘게 변호사 생활을 하고 계시는 변호사님께 지금의 상황에 대해 넌지시 물어보았다. 물론 나도 사석에서 일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불안에 떨고 있는 의뢰인에게 전화를 하기 전에, 분명히 변호사로서의 결론은 어느정도 내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일종의 객관적인 확신에 근거해서 말이다. 어쩌면 일종의 책임감과 비슷한 기분이 아니었을까?


' 화해권고결정을 내려서 이의신청을 했는데 또같은 내용의 화해권고결정이라면, 1심 판사와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확실할 것 같은데요? '


현직 판사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더더욱 확신이 들어 나는 어려운 전화를 했다.


' 변호사님!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


' 제 생각에는.. 화해권고결정에 따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


나는 조금 뜸을 들이며 말을 꺼냈다. 감정적으로 굽힐 수 없다는 그의 의견에는 충분히 동의하지만, 변호사로서 '감정'을 떠나 의뢰인에게 조금이라도 이득이 되는 측면을 고려한다면 그렇게 말할 수밖에는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화해권고결정보다 판결이 더 좋게 나올 가능성은 별로 없고 오히려 결과가 더 좋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의 말을 들은 의뢰인은 2심에서의 결과가 1심과 달라질 수 있다면 3심에서도 달라질 수 있는 것이 아니냐는 말을 한다. 그 정도로 속이 상한 것이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다시 생각해보았다. 실무적으로는 화해권고결정이 내려왔을 때 이의를 하더라도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다시 말해 새로운 증거나 결정적인 증거가 제출되지 않는 한 더 유리한 결정이 나오기는 힘들다는 뜻이다. 하지만 소송을 진행하는 것은 단지 금전적인 이유 때문만은 아니기 때문에 이의신청을 하고 또 우리의 현재 상황에 대해 충분히 참고할만한 서면을 작성하여 내는 것도 의뢰인의 마음적으로는 필요할 수 있다.

' 그래요. 화해권고결정에 이의한다고 해서 무조건 지는 것은 아니니 원하신다면 당연히 그렇게 해드릴 수도 있어요. 하지만 오늘 바로 결정하지 마시고 아직 기일이 있으니 조금 더 생각해 보시겠어요? 아니면 저희쪽에서 조정을 하는 방안도 있어요. '


왜 같은 사실관계와 증거임에도 판사에 따라 생각이 달라질 수 있는가? 우선은, 원고와 피고의 주장이 둘 다 비슷하게 일리가 있을 때 판사 개개인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판사의 생각 또한 법리에 기초하기 때문에 당사자로서는 운의 영역이라고 밖에 보여지지 않는다. 하지만 변호사로서 의뢰인의 심정을 아무리 공감하더라도 감정에 기초하여 무조건적으로 다투는 것보다는 더 늦기 전에 조정을 하는 것이 의뢰인의 입장에서는 가장 이익이 될 수도 있기에, 이런 안타까운 상황에 놓이는 경우에는 조정을 시도해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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