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좋아하는 백장미 향수,

내가 처음으로 매혹당했던 그 시절의 그 향,

by 정현주 변호사


생각해 보니, 나는 꽤 오래전부터 향수를 좋아했다. 물론 20대 시절에 향수를 뿌리고 다녔던 것은 아니지만 여행을 갔을 때 거리에서 시향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그 모습에 정신없이 이끌려서 어떤 향인지도 잘 모른 채 열심히 시향을 하곤 했다. 하지만 물론 어떤 향수라도 세 가지 이상의 향을 맡으면 어느 것이 가장 매혹적인 것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 시절은 나는, 마지막 사법시험을 치르고 모든 것을 놓고 처음으로 유럽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곳에서 만나는 모든 것이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나의 삶이 늘 처음 가보는 길, 또 처음 맡아보는 향, 처음 만나보는 사람들이다. 나는 당시 이스탄불로 들어가 며칠을 보낸 후 야간 버스를 타고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로 향했다. 나는 불가리아에서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머물렀는데 수도인 소피아가 가장 심심한 곳이었다. 혼자 여행을 오면 워낙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걷기만 하던 터라 그날도 걷고 있었던 듯하다. 불가리아는 원래 장미로 무척 유명한 곳이어서 거리 곳곳에서 장미와 관련한 상품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다.


돌바닥을 열심히 걷다 우연히 들어간 장미 관련 상품을 파는 가게에서, 나는 장미 모양으로 만든 예쁜 향수를 보았다. 백장미, 분홍장미, 붉은 장미 등 아주 많은 장미들이 있었고 각기 향도 모두 달랐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향수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던 듯하다. 향수는 처음에는 강한 느낌을 주지만 이후에는 묘하게 화장품에 넣는 듯한 인공적인 독한 느낌이 남는다. 그 향은 무척 인위적이고 강해서 도저히 좋은 느낌이 들지 않는다. 나는 향수 특유의 지나치게 어른스러운 느낌이나 화장품과 같은 느낌 때문에 무엇인가를 사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는데, 그날 내가 맡았던 향은 전혀 달랐다.


그것은 처음 맡아보는 향이었다. 은은했고 무척 기분 좋은 향이 났으며 잔향은 뿌리고도 한참을 공기 중에 머물러 있었다. 눈을 뜨고 그 향을 맡으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을 것 같다. 눈을 감으니 이 좋은 곳에 오래도록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웠던 2014년의 불가리아


인상이 좋은 백인 아주머니가 내가 붙들린 듯 서서 장미 향수를 시향하고 있자, 여기에 있는 모든 향수들은 불가리아에서만 살 수 있다고 말했다. 가격도 별로 비싸지 않아서 가장 매혹적이었던 백장미 향수 30ml와 같은 백장미 향수지만 휴대하면서 뿌릴 수 있는 작은 병을 2개 정도 사서 나왔다.


그리고 길고 긴 여행 끝에 한국에 돌아와 나는 그 백장미 향수를 화장대에 두고 아주 특별한 날에만 뿌렸다. 그 이후 향수에 비로소 눈을 뜬 나는 지금까지 이런저런 향수들을 사 보았지만, 여전히 장미나 플로럴 계열의 향수에게만 관심이 간다.


최근에는 샤넬의 샹스 오 땅뜨르 오드 퍼퓸을 제일 많이 이용한다. 그 외에도 사봉 ' rose tea ' 향수나 최근 갔었던 이탈리아 산타노벨라마리아에서는 '매그놀리아' 향수도 있다. 이제는 변호사로서 일을 한 지도 꽤 되었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좋은 옷들도 입는다. 자연스럽게 향수도 쓰게 된다. 이렇듯 향수를 종종 접하다 보니 처음에는 어른스러운(?) 향이라고 생각했던 향들도 제법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나의 백장미 향수는 내 화장대에 소중히 보관되어 있다. 어느 순간 양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더 이상 뿌리지 않고 화장대에 남겨두었다.


나는 원래 무엇인가를 잘 남겨두는 성격의 사람이 아니다. 한 번에 블로그를 삭제하기도 하고, 모아왔던 것들을 이사를 가는 와중에 모두 버리는 것이 일상이다. 또 나는 불가리아에 다시 갈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내가 처음으로 매혹당했던 그 향과 그 공기는 여전히 내 머릿속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 그래서 혹시라도 다시 불가리아에 가게 될 일이 생긴다면, 나는 그 향을 기억하고 있다가 꼭 백장미 향수를 다시 사 올 생각이다. 물론 어떤 예정도, 계획도 없는 생각일 뿐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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