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생각보다 짧고 죽음은 갑자기 찾아오기도 한다.

by 정현주 변호사


나는 지금까지의 삶이 단조로웠던 적이 거의 없었다. 단조롭다고 한다면 사법시험을 준비하고 있을 때 정도랄까? 하지만 그때 역시도 늘 다음 해 언젠가 합격을 바라고 있었고 '고시생'이란 특별한 경험을 하고 있었으니 단조로웠다고만 보기는 어렵다. '고시생'의 어느 때는 생각보다 살만하기도 하고, 제대로 된 인생의 회피를 하기도 하고 종종 격렬한 좌절을 맛보기도 한다. 공부를 몇 년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세상과 단절이 되고 사회와 유리되어 있으니 더욱 그렇다. 고시 공부를 하다보면 (괴거에 내가 공부를 아무리 잘했던 간에 ) 나 스스로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것을 곧 깨닫게 된다.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그전부터 공부를 하는 집단에 속해있다. 대부분 명문대를 들어가고, 꼭 그렇지 않았더라도 어찌 되었든 공부를 하는 집단에서 공부를 잘했기에, 자연스럽게 공부 잘하는 아이들의 끝판왕이라는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무리에 들어간다.


하지만 나의 경우에는 대부분의 삶이 공부를 하는 집단에 속해 있지 않았다(생각해보면 공부를 잘했던 기간도 별로 없다). 소위 신림동에 오기 직전까지 몇 년에 걸쳐 나에게 어떤 장소는, 다른 곳을 가기 위해 잠시 돈을 벌거나 거치기 위한 장소에 불과했을 뿐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렇게 20대의 대부분의 시절을 나는 여행을 하면서 보냈다(마지막 여행지는 네팔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전에도 그랬지만 그때까지의 나에게는 떠나는 것이 일상이었고, 한곳에 머무는 것은 익숙지 않았다.


원래 익숙지 않은 것을 처음 할 때의 열정이 가장 뜨거운 법이다.


그래서 나는 사법시험을 공부하기로 마음먹고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이 곳에서 머무르며 오래간만에 하는 공부가 무척 재미있었다. 여행을 다니면서도 혼자 있었던 시간들이 대부분이라 혼자서 공부를 하는 시간들도 처음에는 그다지 고독하지는 않았다. 사법시험 1차를 공부할 시절에는 탁 트인 서울대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집까지 통학을 했으며 시험 직전에는 잠시 신림동에 나가 있기도 했는데, 처음에는 공부를 하면서는 다른 것은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즐거웠다. 물론 고시생인 이상 합격만이 동아줄이고 그 외의 현재나 미래는 비참한 환경일지라도 뭐, 나는 어차피 가진 것이 없었으니까 괜찮았다.


생각치도 못하게 합격을 하고 난 뒤에는(나는 삼시*가 끝나고 가진 돈을 모두 털어 다시 여행을 떠났는데, 마지막 여행지인 베를린에 있을 때 합격 소식을 들었다), 이미 충분히 나이도 있고 해서 얼른 결혼을 해서 안정을 찾고 싶었다. 그때까지의 나의 삶은 안정. 이란 전혀 없다고 해도 좋을 만큼 나 스스로 엉망진창인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늘 nostalgia가 없었다. 내가 서 있는 땅은 늘 불안하고 흔들리는 곳이었으며 과거의 동경 따위는 없었다. 뒤를 돌아보기에는 현재 내가 서 있는 곳, 나의 좌표와 또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 늘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무척 막막한 일임이 틀림없다.


인생은 생각보다 빨리 지나가며, 우연한 기회에 죽음이 도처에 널려있다는 것을 나는 조금 일찍 깨달았다. 누군가의 죽음을 빨리 경험했기 때문이 아니다. 나의 대부분의 삶이 예측불허였던 탓에 손을 놓으면 그대로 깊고 깊은 우물속으로 빨려들어갈 것처럼 긴장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동안 내가 바라는 것이 안정.이라고도 생각했지만, 지금은 내가 무엇을 가장 바라는지 알고 있다. 또한 안정을 바라는 것은 그만큼 지쳤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안다.


어떤 버팀목도 존재하지 않던 때에, 완전히 혼자 있으면 말할 수 없이 고독해진다. 내 주위에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있더라도 그 고독감은 이길 수 없다. 그런데 그 시절이 지나면, 또 그런 때가 그립기도 하다.


고독은 무척 조용하다.


내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있더라도 나에게 아무것도 닿지 않을 때, 또는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곳에 앉아 하염없이 그들을 지켜볼 때, 내가 가진 것들이 사실 아무것도 아니며,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될 때. 고독은 그렇게 도처에 있다. 그것은 많은 감정을 아무렇지 않게 거쳐 간다. 그렇기에 고독은 조용하다.


그래서, 나는 오랫동안 사랑의 감정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고독한 사람들은 당연하게도 사랑을 꿈꾸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랑은 오히려 고독을 더 짙게 만들 뿐이다(아마도 그럴 것이다). 사랑은 혼자가 아니라는 달콤한 꿈을 꾸게하며, 상대에게 의지하게 만든다. 그렇더라도 사랑받는 것보다는 사랑을 하는 편이 훨씬 나을 것이다. 그것이 더 나를 어둠으로 내몬다고 하더라도 찬란한 꿈이 함께 있으니.


생각보다 인생은 짧고, 죽음은 갑자기 찾아오기도 한다. 이 사실에 대해 늘 깨어있을 수 있다면, 나에게 불필요한 것들을 비로소 털어버리고 삶에서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좀 더 명확하게 인식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지금 느끼는 이 고통이, 또 감내해야만 하는 시간들이 나의 유한한 삶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인지는 늘 생각해 볼 문제이다.


생각보다 인생은 짧고 가치 있는 일은 밤 하늘의 별처럼 드물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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