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8월의 어느 날, 나는 멜버른(melbourne)에서 다시 케언즈(cairns)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탔다.
4시간이나 걸리는 비행이었지만 저녁 비행기를 타서 그런걸까, 깜빡 잠이 들었다. 이미 한국에서도 떠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 그 즈음의 나는 갑자기 비행기를 타거나 버스를 타는 것이 일상적인 일처럼 느껴졌다.
비행기를 타는 것은 늘 불안함과 가까이 있었다. 혼자 하는 여행이란 늘 긴장 상태에 가까웠는데, 비행기를 타고 비행을 하는 순간은 아무리 편안해도 기내가 흔들리기라도 하면 문득 '죽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안겨 준다. 그래서 그런 걸까, 기내 안에서는 어떤 기내식이 나와도 맛있었고, 늘 허기지게 느껴지기도 했다.
오랫만에 돌아온 케언즈(cairns)는 늘 그렇듯이 한 밤에도 더웠다.
케언즈의 날씨는 늘 온화했다. 때로는 무척 덥게도 느껴지기도 했지만 늘 일정한 온화함이 있었다. 밤은 늘 짙은 청색이었고, 내가 오랫동안 묶었던 쉐어 하우스 바로 앞에는 빨간색의 공중전화 박스가 있었다. 그 공중전화 박스 안에서, 나는 아주 가끔 한국으로 전화를 걸곤 했다.
물론, 외국에 있는 것이 정말 견디기 힘든 그런 순간에만 전화를 걸었다. 한국에서 떠나온 뒤로 '한국에서의 나'는 지우개로 지워진 것 처럼 느껴졌다. 다들 바쁘게 학교를 가고 취업 준비를 하면서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데, 나 혼자만 그곳에서 배제되어 있었다.누군가가 전학을 가고 나면 얼마 안 있어 바로 교실에서 잊혀지듯이, 그 곳에서의 시간은 언제나 일정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한국에서 의도적으로 흔적을 지우고 싶어 이 곳으로 온 것이다. 내가 가끔 오랜 친구에게 전화를 걸면 그들은 잠깐 시간을 멈추고 내가 떠난 시간을 더듬으며 '잘 지내?' 라고 물었다. 그리고 난 곧바로 한국에서의 시간을 통화기 너머로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여기는 별이 쏟아져 내리는 계절이 다른 호주인데, 그곳은 내가 떠나기 직전과 전혀 변함이 없는 곳처럼 느껴졌다.
왜 그런것일까? 나는 그 사실을 굳이 의도적으로 피하고 싶었다. 아마 한국에서의 시간은 일정한 대신에, 조금 울퉁 불퉁한 형태로 영혼이 다쳐 있는 형태였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나의 시간은 한국에서 떠나온 순간부터 전혀 다르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처음 갔던 케언즈에서, 나는 운이 좋게 상당히 저렴한 가격의 쉐어하우스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다시 돌아온 케언즈에서는 그 쉐어하우스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이미 내가 묶고 있던 방에는 일본인 여자가 몇 달전부터 들어왔고, 빈 방도 없다고 했다. 같은 장소에 두 번 오면, 새삼스럽게 많은 것들이 변해 있음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같은 장소에 두 번 오게 된다는 것은 경유지임을 제외하면 대부분 좋은 기억이 있기 때문에 그 작고, 미세한 변화들에서 날선 상처를 받을 때가 있다.
여행은 매 순간 선택과 다름이 없다. 나는 케언즈가 아니라 다른 도시, 또는 다른 나라로 갈 수도 있었다. 그때 케언즈에 가려고 했던 것은 서호주에서의 몇 달 동안 너무 지쳐있었기 때문이다. gingin 호텔에서 몇 달간 일을 하고 난 이후, 한 달정도 여행을 했을 뿐인데 돈이 전부 떨어져버렸다. 멜버른까지 왔을 때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 하지만 새로운 도시나 나라를 가기에는 여유 자금이 부족했다. 바로 한국으로 갈 것이 아니라면, 돈을 벌 수 있는 곳으로 가야 했다. 그러다보니 익숙한 케언즈에 다시 오게 된 것이다.
나는 곧 바로 예전에 일했던 카페에 다시 취직을 했고, 그 때부터는 온 종일 일만 하기로 했다. 백팩커에서도 짐을 빼서, 몇 달은 살아야 할 쉐어하우스를 구해야 했다. 나는 이미 오랫동안 일을 하고 있던 카페 사장의 사촌에게 '괜찮은 쉐어하우스가 없는지'를 문의하게 되었고, 그는 뉴질랜드 여자 '마타'를 소개시켜 주었다.
그래서 마타와 처음으로 만나게 된 것이다. 마타는 뉴질랜드에서 온 나이가 많은 할머니였다. 그녀는 주로 신발을 신지 않고 장을 보러 다녔고, 문에 잠금장치가 거의 없었으며, 집에서 마리화나 화초를 키웠다.
마타의 집과 내가 머물던 방,
문 앞에는 예쁜 정원이 있었다.
마타의 집은 거의(?) 개방되어 있었다.
넓은 거실, 평소에는 여러 마리의 큰 개들이 있었다.
그녀의 직업은 딱히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직업을 마사지사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실제로는 근처의 집에서 여행을 갈때마다 그 집에서 키우고 있는 개들을 돌봐주는 일로 수당을 받는 일을 아르바이트로 하고 있었다(호주 사람들은 주말 마다 며칠씩 자주 여행을 가곤 했다). 그래서 그녀의 집에는 늘 여러 마리의 큰 개들이 있었다. 짧으면 하루, 길면 일주일씩 있는 경우도 있었다.
이처럼 그 당시 호주에서는 꽤 많은 이민자들이 특별한 직업 없이도 아르바이트를 통해 얼마든지 살 수 있을 만큼 복지가 잘 되어 있었다. 집들은 보통 정원이 딸려 있었고, 다들 큰 마트인 울워스(woolworth)에서 장을 보고 며칠씩 음식을 만들어서 먹곤 했다. 그녀는 이미 10년 넘게 뉴질랜드에서 호주로 넘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