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호주 케언즈(cairns)
늘 비슷한 시간에 카페 일이 끝나고 돌아오면, 마타는 늘 tv를 보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아침 뿐만 아니라 저녁도 종종 마타와 함께 먹게 되었다.
그녀는 어느 날 테이블에 늘 놓여있던 예쁘고 앳된 여자의 사진을 늘 나에게 보여주면서, "어때? 예쁘지? 내 딸이야." 라고 자랑스럽게 말을 시작했다.
"아주 예쁜 애야. 공부도 잘하고 어려서부터 똑똑했어. 인기도 많았지, 정말 그랬어... " 그리고 그녀는 페이퍼에 담배를 덜고 또 그녀가 키우는 마리화나를 덜면서 말았다.
"그 애는 나를 닮아 정말 예뻤지.... 작년에 결혼을 했다고 들었어. " 그리고 그녀는 마리화나가 섞인 페이퍼를 말아 불을 붙이고 숨을 들이쉬었다.
내가 기본적인 대답만 하고 주고 받는 대화는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는 내가 자신의 말을 듣고 있는지 어쩐지 큰 상관이 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두서 없이 하곤 했다. 처음 호주에 갔을 때에는 어림도 없었지만 케언즈에 도착하여 일을 하면서부터, 또 서호주로 여행을 하면서부터는 언젠가부터 호주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귀에 들리기 시작했다. 물론 그들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적어도 어느 정도는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마타는 분명 자신의 이야기를 내가 알아듣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그래서 점차 더 편안하게, 좀 더 노골적으로 자신의 감정에 대한 이야기들을, 주로 딸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나는 궁금했다. '왜 사랑하는 사람을 그토록 그리워 하면서, 연락하지 않는 걸까?' 당시 나는 23살 밖에 안 되었고, 그런 감정을 이해하기는 너무 어렸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때까지 그런 상황에 처해보지 않았던 것이다. 삶을 후회하기에는 내가 감당하고 있다고 느껴지는 짐들이 너무 많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도 정확하게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마타는 무척 외로운 여자였다. 나는 한 번도 물은 적이 없었지만 평생을 살아 왔던 고향 뉴질랜드를 떠나 가깝긴 하더라도 완전 새로운 곳인 케언즈에 정착을 하였다. 이미 많이 늙었고, 자신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혼자 살기에는 꽤 큰 집에서 늘 바뀌는 여러 마리의 개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늘 같은 날들이 계속되던 중, 적당히 연락하고 지내던 동네 사람이 '어린 동양 여자애가 몇 달간 잠시 머물 곳을 찾는데 남는 방을 빌려주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여 처음에는 걱정을 하면서 방을 빌려줬다고 한다. 그런데 생각보다 착실해서 마음에 든다고 했다(처음에는 내 직업을 의심했다고 했다.).
나는 당시 돈이 필요할 뿐이었고, 케언즈에는 단 몇 달만 머무를 생각이었다.
케언즈는 좋은 곳이었지만, 두 번, 세 번 오고 싶은 곳은 아니었다. 케언즈는 호주의 다른 마을과 비교하더라도 그 온화함이 그리워 몇년이고 사람들이 다시 찾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은 분명했지만 ㅡ , 적어도 나에게 필요한 곳은 아니었다. 나는 징검다리와 같이 케언즈에 잠시 머물러야 했다. 그때의 나는몰랐지만, 나는 좀 더 많은 곳으로 방황을 해야했던 것이다.
하지만 마타는, 지금까지도 기억의 한 켠에 아름다운 기억처럼 저장되어 있다.
그때까지 나는 잊혀진 사람의 외로움을 잘 이해하기 어려웠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연락을 하지 못하면서 늘 그리워하는 그 마음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것은 지금까지도 잘 알고 있는 감정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하지만 마타는 나와 다른 세계에서 같은 감정을 품고 사는 특별한 사람이었다. 나는 그녀처럼 노년에 홀로, 큰 개들을 맡아주면서 그렇게 유쾌하게 삶을 보낼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이름도 모르고 직업도 잘 알 수 없는 익숙하지도 않은 다른 인종의 외국인을 집에 들이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
마타는 외로웠지만 나름대로는 유쾌하게 삶을 살았던 것 같다. 내가 잠시 그녀에게 스쳐지나갈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그녀의 기억에는 잠시(몇달 간) 맡아둔 그녀가 돌봐 준 큰 개나 고양이들 중의 하나로 기억에 남았을 지도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