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너희처럼 여유롭지 못한가,

영혼이 다친 이들은 휴식이 필요하다.

by 정현주 변호사

오래전 이미, 그들의 항해는 시작되었다.




그들의 공통점은 성장 과정에서, 필요한 만큼의 에너지를 충분히 공급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사람은 누구나, '제대로 된 인간'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만큼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것이 필요한 시기는 확실하게 정해져 있고, 또 충분한 만큼의 양도 정해져 있다.


그런데 에너지를 충분히 공급받지 못한 채 자란 이들은, 초원을 누비는 하이에나들처럼 자신의 결핍을 인정하지 못하고 늘 허기진 상태로 돌아다닌다. 쉬지 못하고, 진정으로 여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진정한 문제는, 무엇 때문에 내가 (남들과 달리) 이토록 여유롭지 못한 것인지? 왜 이토록 힘겨운 짓들만 골라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내가 원하는 것을 드디어 손에 넣게 되었다! 하지만 기쁨은 잠시, 곧바로 걱정이 밀려온다. 이 것을 유지하기 위해 앞으로 내가 얼마나 신경 써야 하지? 얼마나 지출해야 하지?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등등..


주위의 사람들은 '넌 왜 이렇게 걱정이 많아? 난 당장 내일도 어떻게 될지 모르겠는데, 너는 늘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을 걱정하고 있는 거 같아.' 라고 질책하기도 하고, '괜찮아, 넌 잘하고 있어.' 라고 걱정해주기도 한다.




아마도 나에게는 '괜찮아'라고 말해줄 사람이 무조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피로할 때마다 나를 위로해 줄 사람이 너무나도 필요하다. 하지만 때때로 그런 나 스스로도 지치기도 한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위로가 필요한 사람인지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이다.

영혼이 다친 이들은 휴식이 필요하다.


나 스스로에게 만족할 수 없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될 수는 없다. 그것은 완전히 불가능하다. 그러니 결핍된 상태의 그대로의 나를 그대로 받아들이자,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길고 긴 낮잠과도 같은 휴식이 필요하다.


괜찮지 않은 나라도 그냥 어쨌든 나이기 때문이다.


한편,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어떠한가? 여유롭지 않은 나라면 어떠한가? 돈에 집착하는 나라면 어떠한가? 이기적인 나라면 어떠한가?


그냥 나는 (어쨌든) 그냥 나이고,

이미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특별한 존재인 것이다.


결핍된 그들은 이미 삶의 항해를 떠나고 있다. 더 이상 세상의 이해를 바라지 않는다.


나는 오늘도 선장이 되어 드넓은 바다 위에서 나만의 닻을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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