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에 만난 플로브디브, 불가리아
숱한 여행을 했지만 기억에 남는 도시는 손에 꼽는다. 여행을 하면서 처음으로 만나는 나라, 도시들은 처음 만나는 사람과 같이 그 특유의 첫 인상이 있다. 그리고 그 인상은 시간이 지나도 잘 바뀌지 않는다.
그리운 나의 플로브디브(plovdiv),
불가리아는 수도 소피아를 제외하고는 몹시 정겨운 나라였다. 2014년 8월, 이스탄불에 있었던 나는 야간버스를 타고 불가리아 소피아로 가기로 했다. 갑작스러운 결정이었고, 또 계획이 없이 불가리아를 거쳐 발칸반도로 올라가기로 했기 때문에 언제든 문제가 생기면 유럽 저가항공을 타고 다시 이스탄불로 돌아올 각오를 했다.
당시에는 이스탄불에서 불가리아로 올라가는 루트를 택하는 한국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이스탄불에서 플로브디브에 같이 갈 사람을 구할 수는 없었다. 이스탄불의 밤, 지친 나는 그렇게 불가리아로 향하는 야간버스에 올라 밤새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서 잠을 청했다. 다행히 나는 야간버스에는 꽤 익숙한 편이었다. 어느덧 터키 국경을 넘어 새벽녘에 불가리아에 도착했고, 이틀을 소피아에서 시간을 보냈다.
소피아에서의 기억은, 그저 무미건조하다. 크게 아름답거나 불편하지 않는 한 나는 많은 것들을 담아두지는 않는다. 어차피 시간이 흐르면 소중한 극소수의 것들만 남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좀 더 시간이 흐르면, 그런 극소수의 것들조차 나에게서 사라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하지만 버스를 타고 찾은 플로브디브는 소피아와 조금 달랐다.
그곳은 내가 그 전까지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아늑함'이 있었다. 마을 전체가 돌로 깔려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플로브디브는 불가리아의 작은 마을이다. 아주 많은 돌들이 있고, 내가 찾아갔던 old plovdiv에서는 달콤한 장미쨈을 팔고 있었다. 장미로 쨈을 만들다니!! 너무 아름답지 아니한가?? 그때의 나로서는 모든 것이 신기했다.
나는 호스텔에 짐을 풀고 마을을 계속 걸었다. 때마침 불가리아 관광청에서 무료로 시티투어를 하는 프로그램이 있어, 그 것을 신청하여 가이드와 여행객들을 따라 플로브디브 곳곳을 걷기도 했다(물론 영어를 다 알아듣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들을 따라다니다가 맛있어 보이는 아이스크림 가게가 눈에 보였고, 자연스럽게 나는 투어에서 이탈했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마을 지도를 가지고 정처없이 걷게되었다.
마을은 작고, 상점도 많지 않아 반나절을 걸으니 구시가지를 다 둘러볼 수 있었다.
플로브디브는 모든 이에게 감동을 주는 장소는 분명 아닐 것이다. 하지만 마음이 다친 이들에게는 휴식을 줄 수 있는 장소임에는 틀림 없다.
혼자 여행을 하다보면, 유독 외로운 곳을 지나가기도 하고 또 전혀 외롭지 않은 곳을 만나기도 한다. 물론 전혀 외롭지 않은 곳을 만난다는 것은 확률상 아주 드문 일이다. 그것은 긴장 상태의 나를 조금 쉴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지친 밤, 나는 눈을 감고 그 날의 여정을 기억속에서 더듬어보고 있다. 해가 뉘엿뉘엿 걸린 8월의 플로브디브의 오후, 열심히 걷던 언덕뒤로 그날따라 어쩐지 특별하게 보였던 해가 사라지던 장면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동시에 반대편에서 불어오던 미온적인 바람, 야트마한 담장, 수근거리던 관광객의 말 소리도 함께 되살아난다.
안녕, 그리운 나의 플로브디브,
언젠가 카메라와 노트북만 챙겨 널 다시 만나러 갈꺼야, 다시 한 번 향긋한 장미쨈과 아이스크림을 먹어야지. 며칠이고 충분히 쉬다가 다음을 기약하며 그리움은 조금 남겨둘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