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사무소봄 정현주 변호사
나는 이혼전문변호사로 뿐만 아니라, 남양주지원의 개원 초부터 남양주지원의 가사조정위원으로 위촉되어 한 달에 두 번꼴로 이혼 조정에 참여하면서 많은 이혼을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그래서 그런지, 이혼과 관련한 상담을 오시는 많은 분들의 이야기를 잠깐만 듣더라도 그들이 정말 이혼을 마음먹었는지, 정말로 이혼을 감행할 것인지를 바로 느끼기도 한다.
오늘 법률사무소 봄을 찾아오신 의뢰인은 나를 만나기 전부터 혹시라도 놓칠 수 있는 질문을 위해 종이에 빼곡하게 궁금한 점들을 적어오셨다. 그녀가 나를 만나자마자 제일 먼저 이야기했던 부분은 '내가 이혼을 할 경우와 또 이혼을 하지 않을 경우'의 상황을 알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녀의 남편은 계속 도박을 하고 있었다. 최근에는 그 도박으로 크게 빚을 졌는데, 가족 모두 나서서 그 도박빚을 갚아주면서 그녀는 이혼을 결심했다. 남편은 신혼 초에도 이 문제로 그녀를 실망시킨 적이 있었고, 그때도 다시 도박을 하면 전 재산을 너에게 준다.는 취지로 각서를 쓰기도 했었는데 역시 자신의 말을 지키지 않았던 것이다. 10년이 넘는 혼인생활 동안 남편은 계속 크고 작은 거짓말을 늘어놓으면서 도박을 계속했다. 처음에는 남편의 말을 믿었던 그녀도 시간이 가면서 사람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는 당연한 명제를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끼기도 했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 스스로 이혼을 완전히 마음먹기 어렵다는 것에 있었다. 우선 남편은 이혼만은 절대 안 된다며 그녀를 잡았고, 그녀 또한 어린 아들을 생각해서 바로 이혼을 하기는 현실적인 어려움들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어떤 날은 이혼을 하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하고 또 어떤 날은 이혼을 하지 않는 것이 맞는다는 생각에 늘 마음이 괴로웠다. 특히 주변의 어르신들은 대부분 이혼을 해서 무엇하냐며 이혼을 만류했다. 이혼해 봤자 너만 손해다. 사람은 모두 다 결점을 가지고 있다. 원래 다 그렇게 사는 것이다. 애는 어떻게 키우려고 그러냐. 등등.. 하지만 그녀에게는 무엇인가 명쾌하지 않은 지점이 있었다. 그래서 변호사 상담을 받아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재산분할, 양육권, 이혼의 방식 등 그녀가 가져온 질문 리스트에 답을 해주고 있던 나는 문득 그녀에게 ' 그래서, 이혼을 하시기로 완전히 마음먹으신 건가요? '라고 물었다. 나는 물론 처음부터 그녀가 지금으로서는 완전히 이혼을 마음먹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자, 그녀는 나를 보면서 ' 변호사님이라면 어떻게 하실 거예요? 저는...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라고 말한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입장에서 생각했다. 남편을 지켜보니, 남편이 이제는 어떤 말을 하더라도 변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든다. 지금까지의 행동에 신뢰가 깨졌고 기대하다가 더 상처를 받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어린 아들을 혼자 키우는 것이나 재산분할을 하는 것 등 이혼의 과정은 크게 마음을 먹어야 하는 것이고, 그걸 다 감내할 만큼인지는 모르겠다. 이혼 이후의 삶도 걱정이 된다. 현재의 삶을 깨고 다르게 산다는 것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도 있다. 주위에서도 이혼을 하면 여자만 손해라면, 이혼을 만류한다.
' 제 생각에는 .. '
나는 말을 꺼냈다.
'지금으로서는 이혼을 강행하기도 또 이혼을 안 하고 그냥 덮고 살기에도 어렵다면 한 번쯤 시간을 유예해 보시는 것이 어떨까요?'
그녀는 나의 제안에 관심이 생긴 듯, 집중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 이건 법적인 이야기는 아니지만, 두 분이서 일 년 뒤에 이혼하는 것으로 하고 현재 재산분할이나 양육비나 이혼을 하면 어차피 정해야 하는 것들에 대해서 지금 합의서를 써 두시는 거예요. 이혼의 때를 지금부터 6개월이라고 하는 것은 조금 짧은 것 같고, 일 년 정도면 적당한 것 같은데, 그렇게 합의서를 쓰면 나도 지금 당장 이혼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더 이상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고요. 일 년 뒤에 이혼을 한다고 마음먹고 지금 당장 이혼을 할 때 마음에 걸리는 것들을 일 년 동안 정리하시는 거죠. '
어차피 당장 결정을 할 수 없다면 일단 보류를 하는 것이다. 무조건적으로 하나를 선택하기에는 아직 어중간한 마음이므로. 많은 사람들이 마음이 편해지기를 위하는 마음에서 지금 당장 어느 한 쪽으로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선택을 하여 마음을 정리하면 금방 편해지지 않을까,라는 마음에서 그렇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인생의 선택은 자연스럽게 되는 것이다. 어떤 결정은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내려지고 나머지 환경도 그 결정에 맞춰 자연스럽게 흘러간다면 그것이 나에게 일어날 당연한 일이다.
이혼을 결심한 사람들은 사실, '이혼을 하지 않았을 때'라는 것을 상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미 마음을 먹었고 오로지 이혼을 하는 것에만 집중한다. 만약 내가 이혼을 할 경우와 이혼을 하지 않을 경우를 나눠서 고려하고 있다면 아직은 이혼의 때는 아니다.
' 변호사님, 일 년 뒤에도 이혼이 망설여지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변호사님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
그녀는 물었다. ' 일 년 뒤에도 여전히 혼란스럽다면 또 유예하면 되는 거죠.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유예를 할 필요성을 더 이상 느끼지 않게 될 겁니다. 이혼은 정말로 마음을 먹었을 때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의 개인적인 소견을 이야기하자면, 이혼을 할지 말지에 관한 주위의 이야기는 그냥 참고로만 하는 것이 좋아요. 이혼이라는 인생의 큰 선택을 해야 할 때 가장 고려해야 하는 것은 '자기 자신'입니다. 사람은 사실 어떤 사람과 인생을 함께 하는지에 따라 자신의 많은 것들이 결정이 되죠. 20대 때의 일을 떠올려보면, 친구들이 어떤 사람과 연애를 하는지에 따라 얼굴이 확 펴 보이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비참할 정도로 상태가 안 좋기도 하잖아요? 당사자는 그 사실을 인지 못할 때가 많지만, 주위의 친구들은 모두 알고 있죠. 잠시 연애를 할 때만 해도 누군가와 함께 있는지에 따라 그렇게 극명하게 자신의 상태가 바뀌는데 하물며 결혼은 어떨까요?
내가 이 사람과 결혼하여 현재 행복한가, 또는 불행한가,라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것이 일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과거에는 좋았더라도 지금은 그저 불행하기만 한 경우도 있죠. 어떤 경우에는 나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들이 좋아집니다.
하지만 결정을 쉽게 하기는 어렵다. 그것은 아직 '때'가 도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이별의 과정은 무척 단순하고 쉽지만 누군가에게 이별의 과정은 복잡하고 어렵기도 하다. 그것은 나의 성향이라기보다는 상대의 성향, 또 현재의 상황에 따른 경우다 훨씬 많다. 무엇이 되었든,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면 굳이 무리하여 결정을 지을 필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