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가 사법시험을 준비한다고?(2)

조금은 다른 변호사 이야기

by 정현주 변호사


네팔 여행사 아저씨의 말로는 해발고도 5000m이상으로 올라가면, 그 누구든 고산증은 온다고 했다. 다만 우리처럼 승합차를 타고 아주 천천히 올라가는 경우 몸이 자연스럽게 적응해서 더디게 올 뿐이라며... 그리고 고산증세는 사람마다 모두 다르다. 나는 당시, 일분이면 걸을 수 있는 거리를 조금만 빨리 걸어도 너무 어지러워서 아주 천천히, 느릿느릿 걸어야 겨우 도착하는 그런 이상한? 고산증세에 시달렸다.


Scan_20220214_222416_001.png 해발 6000m 에서 본 에베레스트 산의 모습, 굉장히 낮은 느낌이 든다.


그런데 당시에는 너무 배가 고팠다. 히말라야에서 저녁을 굶은지 약 3일이 지나자 이제는 눈에 뵈는 것이 없었고, 무엇인가 사 먹지 않으면 안되었다(돈을 다 쓰더라도..) 그래서 아주 천천히, 마치 지구 끝까지 걷듯 천천히 걸어 사과를 10개 샀다(나는 결국 가장 싼 과일을 골랐다). 그리고 화장실을 좀 써도 되겠냐고 했더니, 티벳인 아주머니가 'money!'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티벳인들은 세계평화를 외치지 않는가, *옴마니반메훔은 어디간 것인가?


KakaoTalk_20220125_123236332_05.jpg 2009. 티벳라싸


KakaoTalk_20220125_123236332_07.jpg 옴마니 반매훔을 외치며 오체투지를 하는 티벳인들.


결국 나는 지극한 고산 증세에도 화장실도 가지 못하고 숙소로 왔다. 하지만 사과중에 반절은 썩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 티벳인들은 외국인들이 모두 돈이 많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중국에서 쉽게 외국인이 여행하게 두질 않는데, '라싸'에 올 정도의 외국인이라면 다들 부자일거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아마 반절의 썩은 사과를 주면, 내가 다시 와서 사과를 사 갈 것이란 생각을 했던 것이 아닐까?




이처럼 나의 20대는 착실하게 미래를 준비하고, 공부잘하는 모범생의 이미지와는 너무 달라서, 27살에 한국으로 돌아와 갑자기 '사법시험을 공부하겠다.'라고 했을 때는 사람들이 '또 다른 엉뚱한 짓을 벌이려는 것은 아닌가?' . '얘는 언제가 되어야 철이 들까?'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2007년 인천공항에 입국해서 힘들어 리무진 버스를 타기 전에 잠깐 쉬고 있었더니, 모르는 한국인이 나에게 다가와 이렇게 물은 적도 있었다.


"TAXI?"


Scan_20220214_223204.png 2007, 한국에 돌아와서.



하지만 나는 그 시절 그 기억들 덕분에, 변호사가 된 이후 의뢰인을 상대할 때 큰 도움이 되었다. 예를 들면... A라는 의뢰인이 상담을 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 변호사님이 충격먹으실까봐 말씀 못드렸는데...." , "이 사람은 보통 사람이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사람이에요..." , "이런 얘기 듣기 어려우시겠지만......" 하지만 나는 생각보다 전혀 충격(?)을 먹지 않는다. 그리고 왠만한 일에는 흔들리지도 않는다. 그래서 나는 늘 의뢰인들이 걱정하는 것 만큼 상처를 받지 않고 오히려 의뢰인들을 위로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변호사들은 모범적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변호사가 된 이후, 사건의 내용들을 보면서 정신적인 고통을 호소할 때가 있다. 하지만 나는 험난하게 살아와서인지 여러가지 일로 단련이 된 덕분일까, 아니면 사람에 대한 애초의 기대감이 없어서일까, 무엇이든 사건 내용에 대한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없었다.




소송이 될 만큼의 분쟁이란 거의 대부분 사람과 사람간의 문제이다. 그리고 그것은 달리 말하면 '삶'의 문제이다.

내가 당신의 삶을 조금이라도 공감해줄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변호사에게 사건을 의뢰하기로 마음 먹는 의뢰인의 가장 큰 계기가 아닐까 싶다.



*옴마니반메훔은 '온 우주에 충만하여 있는 지혜와 자비가 지상의 모든 존재에게 그대로 실현될지어다'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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