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사무소 봄 정현주변호사
누구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이 있다. 그것이 어린 시절의 기억이라면 참 좋겠지만, 오히려 성인이 되고 난 한참 후에 찾아오는 경우도 많다. 내가 만약 결핍이 가득 찬 어린시절을 보냈다면 나는 분명 뒤늦게 찾아 온 나의 행복을 놓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비록 그것이 나에겐 크나큰 상처가 될지라도 말이다..
내가 인식하기 전부터 엄마는 무척 불행한 사람이었다. 엄마의 엄마(할머니)도 어린 시절 엄마에게 크나큰 상처를 줬다고 하던데, 결국 엄마도 나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아빠는 사회적으로는 꽤 잘나간 적도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밖에서 얼마나 좋은 사람이었든, 집에서는 적어도 가정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늘 바쁘고 자신의 일이 우선이었고 자식인 나는 그렇다치더라도 엄마에게는 분명 나쁜 남편이었다. 엄마가 사회적으로 무능력한 이유가 원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빠는 엄마를 늘 무시했고, 엄마는 그런 스트레스를 나에게 종일 하소연을 하곤 했다.
처음에는 물론 엄마가 안쓰러웠다. 아빠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 수록 엄마가 불쌍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빠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 수록, '난 나중에 이렇게 살지 말아야지.' , '왜 그렇게 불행하다고 하면서 주체적으로 삶을 살지 못할까?' 란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토록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다고 엄마를 미워하면서, 엄마를 외면할 수 없는 것도 아이러니였다.
나는 물론, 자유롭고 싶었다. 그래서 배우자감으로는 '오로지 날 사랑해 주는 사람'을 선택한 것도 어느 정도는 필연적이었다. 나는 내내 불안정했던 나의 삶속에 든든한 울타리를 바랬던 것이다. 지친 삶속에서 실패하지 않으려면 의지할 사람을 찾아야 했다. 그러다 보니, 불안적인 요소는 모두 (과감히) 버리기로 했다.
오로지 날 사랑해주는 사람을 선택하자!
나는 흔히들 말하는 조건도 보지 않았다. 내가 사랑받고 의지할 수 있는 상대라면 돈이든, 조건이든 무엇이 중요한가 싶었다.
엄마는 아빠에게 사랑을 받지 못했다. 그 사랑이 가장 필요한 사람이었음에도 말이다.
그래서 여자로서 나는, 나를 사랑해주는 남자를 만난다면 그 자체로 훨씬 나은 삶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결혼을 하기로 한 그 사람은 정말로 나를 사랑해주었다. 함께 했던 어느 순간, 나는 나의 부모보다도 이 사람이 나랑 가장 가까운 존재라고 여기게 되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바람을 피다니?
처음에는 큰 충격이 왔다. 곧 이어, 트라우마가 찾아왔다. 내가 앓고 있던 고질병이 날 좀 먹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오래전부터 많이 아프고 다쳐 있었는데 나조차 그것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적어도 '너'는 바람을 피워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세상 사람들이 바람을 핀다고 하더라도...
하지만 나는 이내 수긍하고 말았다.
나는 이토록 행복해지기 어려운 사람이다. 태어났을 때부터 이미 행복한 사람이 있는가하면, 나처럼 남보다 죽기살기로 노력해야만 겨우 환경을 극복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결핍은 치유되지 않아서, 불행한 상황에 대한 순응은 무척 빠른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