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어떻게 지내?' , '나야 늘 같지, 뭐.' , '요즘 사는 게 왜 이렇게 재미가 없어....'
최근 들어 내가 주로 듣는 말이다. 40대에 진입하자 삶은 더욱 재미가 없어졌지만, 본격적으로 재미가 없어진 것은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인 것 같다(나의 경우에는 남들보다 사회생활이 상당히 늦은 편이었다).
왜 나이가 들수록 사는 것에 재미가 없나?
우선은 아마도, 나이가 든다는 것은 책임과 의무가 많아지기 때문일 것이다. 진정한 어른이 된다는 것은 누리는 삶이라기보다는, 짊어지는 삶에 가깝다. 과거에 내가 기댈 수 있었던 나의 부모님, 또 친한 선배, 존경하는 선생님들이 시간이 갈수록 한 없이 작아진다. 거칠 것이 없었던 어렸을 적의 내가 사람들에게 거침없이 내뱉던 말들이 이제 와서 보면 그저 패기에 가까웠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제는 나만을 바라보고 있는 자식, 나에게 기대고 싶어 하는 부모님, 내가 챙겨줘야 하는 직원이나 형제들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렇게 내가 '해야 할 것들'이 가득한 삶 속에서 어떤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인가?,
물론 종종 그런 삶의 짐들은 한 없이 부담스러워진다. 가끔은 아무것도 없었던 빈 손으로 돌아가고 싶어 진다. 배낭 하나만 들고, 1달 간의 배낭여행을 떠났던 내가 종종 그립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사회적으로 안정된 커리어를 가지고 있는 나의 친구들이 무척 부러웠다. 여행에 지쳐 결혼해서 안정된 삶을 살고, 자식을 어느 정도 키워 둔 빨리 결혼 한 친구가 부러웠던 때도 있다.
하지만 안정은 덫이었다.
내가 안정을 선택할 때, 자유는 자연스럽게 한참 멀리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진정한 의미의 '안정'을 찾게 되면, 그때는 선택의 폭조차 몹시 좁아지는 것이다(답답해지기도 한다.).
우물 안의 개구리는 오랫동안 힘차게 우물 밖으로 나가려고 애를 쓴다. 하지만 막상 우물 밖의 그 광활함을 마주하면 기쁨도 잠시! 이내 지쳐버리고 만다. 나를 묶어 두는 것이 없다는 그 느낌은 생각보다 무섭다. 종종 길을 잃게 만들고, 불안하게 만든다. 마치 앞이 보이지 않는 뿌연 안개가 뒤덮인 길에, 오로지 나 혼자만 걷고 있는 그런 느낌이랄까?
그렇게 한 때의 방황을 거치고, 나는 다시 익숙한 우물 안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나를 둘러싼 익숙한 물 내음, 편안한 공기에 잠시 기대 본다. 그렇게 나는 다시 찾은 안정이 나에게 가장 익숙하고 편한 곳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덫에서, 나는 오래도록 비슷한 일을 반복하게 된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면
사실은 내가 의지하던 많은 것들이, 결국 나를 의지하는 것들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결국,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느끼는 권태로움은 내가 '빛나는 자유'보다는 '안정'을 택한 대가가 아닐까란 생각을 해 본다.
한편으로는 내가 의지했던 많은 것들이 실제로는 나를 그토록 얽매이게 만드는 것들이 된다는 것을 미처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많은 것들을 기대하면서, 또 당연한 듯 살아가는 것을 본다.
지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언제든 우리의 마음속에 있었던 그 '방황의 때'를 기억해야 한다.
가장 힘겨웠던 순간, 나를 생생하게 깨어 있게 만들었던 그때의 나를 말이다. 비록 천둥벌거숭이처럼 거칠 것이 없었고, 힘들었지만 무척 자유로웠던 시절의 모습이다.
내 안에 빛나고 있었던 그 작은 알맹이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먼지가 쌓이고 예전보다는 그 빛을 잃었지만, 여전히 존재 그대로 빛나고 있다. 조금도 변함이 없이 그곳, 그 자리에 있다.
물론 재미가 없다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삶의 시각은 재미가 없는 그 순간순간에도 무척 다채로워서, 그토록 차이가 없는 하루하루, 평범한 나날들 속에서도 늘 특별한 것들이 함께 있다. 내가 가장 평범한 것을 사랑하게 되는 것처럼 얼마든지, 그 순간의 때를 즐길 수 있다.
무엇이 되었든, 지루함을 느끼는 나이 든, 아니면 바쁜 나이 든 ㅡ 나는 그냥 나이고, 또 늘 다른 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