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루마니아 티미쇼아라에서,
' 변호사님, 여행 다니실 때 사진들을 보니 풍경 사진만 있고 변호사님 사진은 없는 것 같아요. '
' 네, 저는 원래 제 사진을 찍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최근에 마케팅을 하면서 제 사진을 많이 찍게 된 거예요. '
한 달에 한 번씩 만나는 pd님은 내 블로그를 자주 들어오신다고 한다. 그리고 문득, 나의 글들을 읽으며 이 이야기들이 가상의 소설인지, 아니면 현실의 경험을 기초로 한 수필인지 궁금하다고(이런 질문은 숱하게 받고 있다). 한편 그것이 가상이거나 또는 현실이라도 어떠한 표현력에 있어서 감탄을 한다고 했다.
나는 미소 지었다.
' 그래서, 저는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어요. 본격적으로, 진지하게. '
조용한 사무실 오후, 내 얼굴 사진이 별로 없다는 말이 생각나 노트북을 켜고 오래전 사진첩을 살펴보았다. 제대로 저장되어 있지 않고 흩어진 많은 사진들 중에서는 정말 내 얼굴이 나온 사진을 찾기 어려웠다. 10년 전, 처음으로 갔던 유럽 여행. 사진첩에는 풍경 사진들과 지금은 사라져버린 습작 같은 그림들과 글들이 조각조각 남아있을 뿐이다.
그래, 한때는 그림을 그렸었지. 아마도 목탄 같은 것을 사서 들고 다니며 스케치를 주로 했던 듯하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전, 나는 자연스럽게 그림 그리는 것을 포기하고 글을 쓰거나 피아노를 치는 것에 더욱 매달리게 되었다.
문득 깨달았다. 그때나 지금에나 나는 무엇인가를 어떠한 형태로든 그려왔다는 것을,
나는 선명한 기억 속의 날들로 돌아간다. 어떤 기억들은 선명한데, 어떤 기억들은 두꺼운 안개처럼 흐릿하게 번져있다.
오래전 혼자 갔던 여행,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그 시간들은 오로지 너를 만나기 위한 시간들이었다.
루마니아 티미쇼아라는 트램으로 10분이면 역에서 내려 마을의 끝으로 닿을 수 있는 거리로, 마을 자체에는 관광객들이 볼 만한 것들이 많지 않았다(애초에 루마니아는 대부분 드라큘라 성이 있는 브라쇼브가 유명하여 나와 같이 티미쇼아라와 같은 작은 마을을 찾아오는 외국인은 드물었다). 물론 나 또한 처음에는 오로지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잠시 이곳에 머물렀던 것이다.
사실은 티미쇼아라에서 기차를 갈아탈 때까지 몇 시간만 있어도 되겠지만, 그날은 어쩌다 보니 일박을 할 수밖에 없게 되어 나는 마음 편히 오래도록 마을을 걸었다. 이렇게 혼자 오래도록 있다 보면 나는 (당연하게도) 노래를 흥얼거리게 된다.
내 머릿속에는 늘 무정형한 음률이 떠다닌다. 나는 왼편에 무심하게 떠다니는 강들을 뒤로하고 트램 길을 따라 걸으면서 떠오르는 대로 음(音)을 흥얼거렸다.
지금처럼 아름다운 봄날이었다.
너는 무엇을 찾고 있지?
음(音)은 나에게 묻는다.
나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동반자(同伴者)를 찾고 있지. 늘 그래왔어.
너에게 있어 '동반자'라는 것이 뭐야?
어떤 형태ㅡ인지를 묻는 것인가,
그렇지, 그래.
생각해 보고 있어.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히 알 수 있어. 모든 사람들은 나와 같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동반자(同伴者)를 찾고 있을 거야. 틀림없어. 우리가 언제나, 어떤 곳에서 어떠한 선택을 하든지 간에 말이야.
어느 날 난 우연히 알게 된 책의 첫 장에서 다음과 같은 문구를 보았어.
앤 드루 안에게 바친다
광막한 공간과 영겁의 시간 속에서
행성 하나와 찰나의 순간을
앤과 공유할 수 있었음은 나에게는 커다란 기쁨이었다.
동반자라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 우리의 삶의 영원성을 자각하는 것. 그리고 그 순간을 너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매 순간이 아니더라도 ㅡ 어떤 찰나의 순간은, 영원히 그 공간에 머물기도 하지. 그런 삶의 경험을 나눌 수 있다면 행복할 텐데.
그래, 넌 무엇을 할 거야? 이제,
글을 써야지.
물론,
그리고, 찾을 거야? 네가 원하는 것을 말이야.
글쎄 ㅡ,
나는 티미쇼아라에서 웃었다. 나의 음(音) 과는 그것으로 잠시 작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