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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주 변호사 Apr 06. 2024

그대는 너울너울 삶을 사는 사람이야.

사랑과 상실, 삶의 방향성에 대하여


누군가가 나에게 ' 그대는 너울너울 삶을 사는 사람이야. '라고 말해주었다. 그 말을 듣기 위해 나는 아주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


칼에 찔려 엉망이 된 나는 바닥에 누워 잠시 숨을 내쉰다. 오래전 기억을 떠올린다. 절망의 바다에 빠져있었던 그때 ㅡ 나는 꽤 오랫동안 그 고통들을 감당하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나는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왔고, 어느덧 그 기억은 과거로 넘어가 버렸다. ㅡ 그리고 나는 한참 동안을 우물 속에 남아 동면하고 있었던 것을 깨닫는다. 마음의 한편을 비워둔 채로. 


벌써 계절이 지나 추위가 아득히 멀어지는 동안, 오래도록 나는 우물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렸다. 계절이 없는 곳에서, 눈을 감은 나는 시간을 감는 새가 되어 하늘로 날아올랐고 광활한 바다 위를 살피며 높이높이 날았다. 나는 밤의 새였다. 


하지만 낮이 되면 나는 다시 우물로 돌아온다. 자명종의 알람처럼 단 한 번도 어긴 적이 없다. 우물의 기억을 떠올린다. 그곳은 시간이 멈춘 것처럼 길고 긴 동면의 세계였지만 안온감은 없었다. 겉으로 나는 잘 지내고 있었다. 내 주위에는 언제나 일정 정도의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과 어울리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나는 너울너울 사람들과 어울렸다. 때로는 저녁 약속을 잡아 술을 마시기도 했고, 시간이 되면 짧게나마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마음의 한편을 비워두고 누군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오롯이 집중하는 것은 나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었다. 나는 나를 잊고 싶었다. 


하지만 어떤 방법을 써도 마음의 평온을 얻기 어려웠다. 너를 잃었기 때문이다. 내 안에 상실감이 생겨버렸기 때문이다. 그것은 점과 같은 형태로 마음 깊은 상처가 되었다. 두터운 사막을 춤을 추며 걷는 것처럼 나에게는 연막이 사라지고 진짜만 남는다. 그리고 진짜는 어디에도 없다. 


이대로는 마음이 닳고 닳아져, 다시는 사랑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한동안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 시간이 흐르기 전까지는 눈에 보이는 그 어떤 것도 진짜가 아니었다. 지금 상황에서 다른 무엇인가를 만들다가는, 분명히 일을 그르치고 말 것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어떠한 것들은 충분한 시간이 지나도록 그대로 두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계절이 지난 후, 나는 약간의 자유로움을 얻는다. 마음의 한편은 계속 비어져 있지만 그것은 그대로 두기로 한다. 그동안 나는 많은 사람들과 여러 가지 형태로 만남을 가진다. 단 한번도 진심이 아니었던 적이 없다. 오히려 나는 더욱 더 집중하여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때때로 나의 이야기를 하기도 하지만, 늘 일정 정도의 선은 넘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누구도 나의 유리(遊離) 된 점을 발견하지 못한다. 내가 우물에 있고, 밖으로 나오지 않은 밤의 새라는 것을, 그리고 나는 중요한 것을 상실(喪失) 했고, 그것을 채울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을, 

그렇게 고독한 시간이 지나간다. 이 고독한 세계에는 언제나 일정 정도의 억눌린 고통이 존재한다. 깊게 칼에 찔린 곳은 여전히 틈이 벌어져 있다. 나는 그것을 그대로 두기로 한다. 마음의 형벌과도 같다고 생각하면서. 


일과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 잠이 들기 전, 변함없이 너를 생각한다. 내 마음의 작은방에서 너의 정신을, 너의 모습을 생각한다. 그리고 너의 이야기를 궁금해한다. 나는 작고 따뜻한 마음을 품고 너의 이야기를 듣는다. 이 마음의 방에 타오르는 등불처럼 그 불은 꺼질 듯하며 타오르고 있다. 이 시간은 오로지 너만을 위한 것이다. 나는 잠시 안온한 착각에 빠지지만 물론 너는 이곳에 없다. 이미 이 세계에서 사라졌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삶의 방향성은 거의 정해져 있다. 인연은 나의 선택이 아니다. 하지만 결국 나의 고독에서 나를 구원하는 것은 나 스스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사람은 누구나 불완전한 형태로 태어나기에, 다른 사람의 사랑 속에서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분명히 그렇다. 사람은 다른 사람을 통해 채워지며, 사랑을 통해 비로소 완전해질 수 있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타인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다는 마음, 그리고 누군가에게 응답하는 마음이다. 사랑은 기다리며, 기꺼이 희생하고 같이 있어주려고 한다. 그것이 필요한 한 사랑은 사람에게 가장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누군가에게 위로를, 또 누군가에게는 사랑을 얻는다. 

사랑을 하며 여행하는 삶, 


그것이 결국 상실과 고통에 이를지라도 나는 여전히 너울너울 삶을 살기로 한다. 


그 끝의 향방을 알지 못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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