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22년 후의 고백 '을 보면 사랑하는 사람을 우연히 잃고 그 이후 삶의 의미를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상담과 소송을 많이 진행하는 나로서는 현재 진행형인 고통을 조금은 넘어서서 찾아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이미 소송을 어느 정도는 마음을 먹고 있기 때문인지 그들에게 이미 사랑이란 감정은 없다.
어떤 면에서는 사랑은 처음부터 없었거나 또는 이미 지나갔으며 지금에 와서 중요한 부분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이미 상처받은 그들에게서 '상실의 고통'을 잘 느끼지는 않는다. 그들에게서는 고통보다는 변하지 않는 상황에 대해 지쳐버린 상태 또는 책망과 체념에 가까운 감정들이 느껴진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상실을 느낀 사람들이 그 시간에 그야말로 박제되어, 오래도록 그 고통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주인공 남자는 결혼을 앞두고 사랑하는 약혼녀를 잃게 된다. 그때까지 영화에서 그는 크게 두각을 나타내는 인물은 아니었다. 오히려 눈앞에서 대지진을 겪고 조금 정신이 불안정해 보이는 약혼녀 옆에 있으면서 그녀를 위로해 주고 함께 시간을 보내주는 착한 사람으로 보였다. 그런데 아주 어이없는 일로 약혼녀는 실종이 된다. 그것은 그녀의 잘못도 아니고 그의 잘못도 아니었다. 그저 사람을 죽이는 것만이 목적인, 아무나 죽이는 살인마의 눈에 걸려 우연히 일어난 일이었던 것이다.
영화는 그 이후 고통스러워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비춰주지만 그 이후의 일은 자세하게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그 이후 완전히 삶이 바뀌게 된다.
상실(喪失) 이란 1) 어떤 사람과 관계가 끊어지거나 헤어지게 됨.이라는 뜻과 2) 어떤 것이 아주 없어지거나 사라짐.이라는 두 가지의 문언적 의미가 있다. 두 가지는 사실상 같은 의미라고 해도 무방하다.
상실의 고통은 당연히 사랑이 수반된다. 내가 어떤 것을 잃어버리거나 대상이 사라졌을 때의 고통은 존재에 대한 사랑이 없다면 존재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따라서 상실의 고통은 흔한 감정이 아니다. 어떤 이들은 한 평생에 걸쳐 사랑을 하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이별은 힘든 시간을 동반하지만, 어떤 이들에게 헤어지거나 사라지는 것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당연하며 그로 인한 현실적인 것들이 눈에 더 보이는 경우도 있다. 반면 어떤 이들은 우연히 상실을 경험한 이후, 사실상 완전히 마음의 문을 닫는다. 다시는 똑같은 고통을 느끼고 싶지 않다는 본능적인 마음이기도 하지만 이미 그 순수성을 누군가에게 주었고 그것이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실의 고통이란 삶에서 자주 찾아오기는 어렵다.
슬프게도 모든 종류의 감정은 당연히 변하기 마련이다. 큰 감정이든 작은 감정이든 그렇다. 심지어 어떤 경우의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 어떤 것도 남기지 않고 완전히 소멸(消滅) 되기도 한다. 나는 그래서 변하고 떠나는 것이 마음이 본질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한다. 그렇기에 사랑을 상실하여 그리워하는 것보다는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든 함께 보낸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결국 상실의 고통을 간직하는 것도 그 사람의 의지에 가까운 일이다. 상실은 흔적을 남기지만 그 이후의 삶은 그 사람의 결정인 것이다. 하지만 ' 22년 후의 고백 '의 주인공은 나아가기를 택하지 않았다. 어떤 종류의 상실은 그 삶에 절대적으로 관여하여 그 이후의 삶을 완전히 변화하게도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하는 대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