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사무소 봄 정현주 변호사
며칠 전 약정서를 보내는 와중에 새로 들어온 직원의 작은 실수가 있었다. 의뢰인이 '카톡'으로 연락을 달라고 하여 의뢰인의 번호를 저장하고 만들어 놓은 약정서를 보내려는데 번호 한 개를 잘못 저장하여 의뢰인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카톡을 보냈던 것이다. 한참 시간이 지나도록 상대가 카톡을 확인하지 않아 직원이 다시 의뢰인에게 전화를 하여 이런 상황을 알게 되었다. 직원은 약정서를 기다리고 있는 의뢰인에게 죄송하다면서 상황을 설명하였고, 의뢰인은 갑자기 혹시라도 자신의 개인정보가 다른 사람에게 들어간 것이 아니냐며 불안해했다.
다행히 중요한 개인 정보는 약정서에 아직 기재되지 않은 상황이긴 했지만 직원은 (대전에 있었던 나에게) 황급하게 전화를 하여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를 물었다. 나는 조정으로 정신없이 바쁜 상황이었으나 ' 주임님이 같이 불안해하면 안 되고, 별일이 아니니 의뢰인에게 잘 설명해 주시면 되세요.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어요. 의뢰인들은 늘 불안해하는 상황이니 큰일이 아니라면 실수를 하더라도 주임님이 오히려 반듯하게, 마음이 놓이도록 대해주시면 되세요. '라고 말했다.
송무 변호사, 특히 대표 변호사가 되면 이처럼 해결을 요하는 다급한 전화를 무척 많이 받게 된다. 전화의 내용은 예상치 못하는 일들에 대한 빠른 결단이 필요한 일들이 대부분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송사가 걸린 의뢰인들은 늘 마음이 불안하고 괴롭다. 전화를 하기 전부터 이미 화가 나 있는 의뢰인도 있고 따지고 싶어 하는(사실은 변호사가 아니라 상대방에 따지고 싶으나 그 마음을 참을 수 없는) 의뢰인들도 많다.
개업을 하기 전에도 나는 오로지 송무만 했던 변호사지만, 사실 그전의 송무들은 지금 생각해 보면 약과(藥果)였다. 그때는 고용 변호사로서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니 내가 맡았던 사건에 대한 마음의 책임 외에 다른 것들은 필요치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이 너무 바쁘고 힘들면 언제든지 이직을 꿈꾸었다. 이직이 자유롭다는 점이 바로 전문직의 장점이 아니던가!
하지만 법률사무소 봄을 열고 대표 변호사가 된 이후로 당연히 이직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 되었다(하지만 물론 나는 늘 마음의 꿈이 있다).
오늘은 내가 참석한 3번의 재판이 있었다(다른 변호사님들의 재판까지 고려하면 총 5번의 재판이 있는 날이었다). 마지막 조정은 저녁 6시 반이 넘어갈 정도로 무척 길었고 조율이 어려웠지만 다행히 성립되었다. 끝없이 전화를 받는 따뜻한 봄날의 하루, 사무실로 돌아와 나는 변호사로서 대하는 어려운 재판, 특히 어려운 의뢰인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많은 변호사들이 꼽는 어려운 의뢰인은 어떤 의뢰인일까?
우선은 '심정적으로 불안한 의뢰인'을 들 수 있다. 심정적으로 불안한 의뢰인은 언제든 화를 낼 준비가 되어 있다. 불안한 마음에 매일 같이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어 사소한 것까지 모두 변호사를 통해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 변호사는 사건을 해결해 주는 동시에 마음을 풀어줘야만 하는 것이다. 불안하더라도 위로를 통해 마음을 풀어줄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만약 늘 화가 나 있는 상황이라면 이를 상대해야 하는 변호사도 늘 긴장 상태일 수밖에 없다. 궁금한 것들에 대한 의문이야 어느 정도 풀릴 수 있다고 하더라도 마음의 평온까지 주기는 어렵다.
변호사에게 ' 솔직하지 않은 의뢰인' 또한 어려운 의뢰인이다. 기본적으로 변호사들은 의뢰인의 이야기를 신뢰하고 사건을 진행한다. 그런데 의뢰인에게 당했다!라는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사정을 이야기하면서 수임료를 분할 지급하겠다고 하여 믿고 기다렸는데 수임료를 지급하지 않는 의뢰인, 나는 절대 횡령을 한 적이 없다!라고 주장하여 이를 믿고 조사를 받아보니 실제로는 횡령을 했던 의뢰인, 우연히 마약을 했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계속해서 마약을 하고 있었던 의뢰인 등, 변호사로서 의뢰인의 이야기를 듣고 사건을 진행하다가 오히려 말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되는 난감한 상황에 처하게 되기도 한다.
이처럼 어려운 의뢰인을 상대하면서 쌓이는 가장 큰 어려움은 '정신적인 고갈' 문제이다. 22년 1월 개업 이후 송무 변호사로서 일을 시작한 이후 종결 사건만 586건이 넘어가고 있다. 현재 진행되는 건을 합치면 2년간 최소 750명이 넘는 의뢰인을 만난 셈이다.
이처럼 바쁜 일상이다 보니 대표 변호사로서 의뢰인뿐만 아니라 봄 사무실을 이끌어나가는 것도 힘에 부치는 일이었다. 그 사이에 나는 얼마나 바뀌었는지 모르겠다. 가장 큰 문제는 어려운 의뢰인들을 만나고 또 어려운 재판을 거듭하면서 나 스스로도 정신적인 고갈을 해소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 점이다.
또 한 가지는 사람에 대한 기대가 많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변호사로서 다른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그 사람의 민낯을 보게 되기도 하고 타인의 감정을 마주하게 되기도 한다. 당연히 좋은 점보다는 실망, 포기, 좌절과 같은 느낌들을 더 많이 마주한다. 그런 마음은 첫 번째로는 부정적인 느낌을 많이 주지만, 시간이 갈수록 점차 희석되어 전체를 볼 수 있게 한다. 물론 여전히 완전히 전체를 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