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환경에서의 삶은 결핍과 필수불가결한 것처럼 보인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나와 가장 친했던 친구는 나와 비슷하게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다. 어린 시절의 나는, 태어나서부터의 환경이 너무나도 익숙한 나머지 가난하다는 것이 불편하지 않았다. 따라서 친구들에게 우리 집의 모습이나 환경이 부끄럽거나 감춰야할 대상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나는 매일 그 친구를 끌고 우리 집에 데려갔다. 한 번은 우리 집 쌀독에 있는 쌀에 쌀벌레들이 잔뜩 생겨서, 친구와 함께 쌀들을 신문지위에 펼쳐놓고 쌀벌레와 애벌레들을 관찰하기도 했고, 집 창고에 살고 있는 쥐 이야기, 개미에게 물린 이야기들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나 또한 그 친구의 집에 놀러가게 되었는데, 1층에 늘 문이 열려있던 그 집은 방이 딱 2칸이었다. 나는 친구가 그 작은 집에서 엄마, 아빠, 언니, 친구, 친할머니까지 함께 월세로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친구는 엄마가 일을 하시고 늘 늦게 귀가하셨기 때문에 거의 매일 우리집에 와서 같이 저녁을 먹고는 했다. 나 또한 그 친구의 집에 가서 저녁을 얻어먹은 적이 있으나, 친구의 친할머니가 끓여주시는 '삼양라면'은 별로 맛이 없었다. 우리는 이처럼 번갈아가면서 학교가 끝날때마다 서로의 집을 오고갔으나, 서로가 가난하다는 것에 대한 자각은 별로 없었다. 너나 할 것없이 환경이 비슷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돈을 모아 롯데리아에 가서 늘 행사를 하고 있었던 '천원 데리버거'를 사서 같이 나눠 먹고는 했다. 나는 친구와 함께 했던 그 귀가 시간들이 퍽 즐거웠던 것 같다. 그래서 고등학교에 올라가고 난 후에도 여전히 같은 1층 집에 살고 있었던 그 친구가 나 외에는 반 친구들을 한 번도 자기집에 데려간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는 조금 놀랐다.
나는 가난하긴 했으나 아버지의 사업 문제로 계속 집을 옮기기도 했고, 또한 그 친구외에도 다른 친구들을 거리낌없이 집에 데려가기도 했다. 그 시절, 나는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에 대한 자각이 별로 없었다. 나는 중, 고등학교를 통틀어 학교 생활을 좋아하지 않았다. 친하지 않은 다수의 친구들과 억지로 친하게 지낸다는 것이 좀 불편하게 느껴지기만 했다. 그래서 소수의 친구들과 친하게 지낼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친구는 달랐던 것이다. 그 친구는 나보다 훨씬 더 온화하고 사회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는데(대다수의 사람들과 잘 지낸다는 면에서), 자신이 밖이 훤히 내다보이는 1층 월세집에서 다섯 식구와 함께 산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이 무척 싫었던 것 같다.
그리고 우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함께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나와 그 친구는 그 때에도, 지금도 종종 그 시절의 이야기들을 하곤 한다. 가난했기에 일방적으로 희생할 수 밖에 없었던 엄마, 언니의 이야기, 그리고 다른 집보다 무능력하거나 책임 없는 아빠를 보면서 공통적으로 느끼던 회환, 그리고 다른 환경의 친구들을 보면서 느끼던 결핍들에 대해서 말이다.
그러다 우리는 그런 환경의 결핍은 자격지심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특히나 한국 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설령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한국에서 산다는 것은 상호간의 비교에서 오는 상대적 우월감, 상대적인 불편감의 감정을 심하게 느낄 수 밖에 없는 경쟁구도의 삶에 가깝다.
그렇다면 외국에서의 삶은 좀 더 다를까?
단언할 수는 없지만, 내가 여행을 다니면서 만난 외국에서의 삶을 택한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한국의 경쟁사회를 무척 싫어했다. 하지만 외국에서의 삶은 또 다른 결핍을 만들어낸다. 고향을 완전히 떠나 새로운 나라로 온 사람들은 그 곳의 사람들과 같은 선상에서 시작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방인은 어디에서나 다른 느낌을 받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 새로운 느낌이, 또 남들과 다른 내가 그 자체로 나란 사람의 정체성일지도 모른다.
나는 비록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결핍이 가득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주류의 사람들과는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했다. 소위 '잘난 사람'들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이다. 나의 권리에 대해 당당히 주장하거나 요구를 하고, 또한 가만히 있어도 날 존중해주는 것이 당연한 환경에서 자라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그냥 이 정도면 됐어.'라고 내심 포기하거나,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여행을 간 다음 오랫동안 혼자 있으면서 그 혼자의 느낌을 편하게 생각하기도 했다. 비록 여행자체는 무척 힘들었지만..
하지만 나는 그런 다채로운 '결핍'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지금의 나는 누가 봐도 '주류의 삶'을 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사람들이 주장하지 못하는 권리를 대신 주장하거나, 대신 싸워주는 일을 하고 있다. 무엇이 되었든, 나는 '간극'에 있는 사람이다. 완전한 주류도 아닌 비주류도 아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