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란 본래 견디기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by 정현주 변호사


나처럼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이 별로 없는 변호사도 드물 것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세상 돌아가는 일에는 큰 흥미가 없는 편이었다. TV뉴스를 보는 것도 재미가 없었고, 그 흔한 연예인 이야기, 정치 이야기는 더더욱 재미가 없었다. 내가 세상에 대해 조금 궁금하게 된 계기는 뉴스가 아니라 한국사를 공부하면서 부터였을까?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는 재미있다. 세상에는 '어떻게 이런 일이?'라고 생각할 만한 사건, 사고들이 넘쳐 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안에는 언제나 나로 가득차 있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랬던 것 같다. 혼자있는 시간을 나름 즐겼던 나는, 학창 시절을 통틀어 언제나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래서 그런지, '이것은 정말로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면 그다지 참는 법이 없었다. 한 마디로 미련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아무리 친한 친구더라도 나를 괴롭히면(또는 만나는 것이 괴롭다고 느껴지면) 바로 인간관계를 정리하였다. 결정의 기준이 '바깥에서 보는 나'가 아니라 '내 안의 나'였기 때문이 가능한 일이었다. 그로 인해 속상한 친구가 나를 어떻게 평가하고, 나에 대해 말하고 다니든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이런 성격 덕분일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중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중학교 3학년 여자반은 대부분 '친한 친구 무리'로 뭉쳐 다니곤 한다. 체육 시간이 되면 쉬는 시간에 반에서 체육복을 갈아입고 친한 친구들끼리 운동장에 같이 나가곤 했는데, 나도 같이 다니던 '친한 친구 무리(나 포함 3명)'가 있긴 했다.


어느 날 체육 시간, 나는 아마 화장실을 가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쉬는 시간에 체육복을 갈아 입고 자연스럽게 혼자 운동장으로 나갔다. 그런데 운동장에서 나의 '친한 친구 무리'에 속하는 친구 중 한 명이 다른 한 명에게 화를 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요지는 '너 왜 혼자 나갔어?' 라는 것이었다. 체육복을 갈아 입고 같이 나가려고 보니 친구가 먼저 나갔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자연스럽게 그 친구들에게 섞여 들어가, '왜 나한테는 화 안내? 나도 혼자 나갔는데.' 라고 화를 내는 친구에게 물어보았다.


별 생각 없는 질문이었는데, 그 친구는 나를 물끄러미 보더니 아무렇지 않은 어조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넌 원래 혼자 나가잖아.'


생각해보니, 우리들은 퍽 잘 어울렸지만, 친구들이 나에게 크게 화를 내는 법이 없었다. 내가 너무나도 여지없이(?) 독단적인 행동들을 해 왔기 때문일까? 그래서 그런지 중·고등학교 생활은 나에게 즐거운 기억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혼자 생활하는 것이 잘 안되었다. 타인에 대한 자각이 별로 없이 내가 하고 싶은 것 위주로 하고 살았던 나에게 단체 생활이 잘 맞을 리가 없었다.


인생을 통틀어 대부분의 단체 생활에서 나는 불편함을 느껴야 했다. 혼자 있는 것이 늘 즐겁다고 보기는 어려웠지만, 단체에 날 끼워맞추는 것은 더 힘든 일이었다. 나는 가끔 규격에 맞는 우유곽에 담긴 우유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아무런 개성도, 아무런 특별함도 없이 비슷하게 말을 잘 듣는 가공품이 된 기분이 들었다.




그토록 기다리던 고등학교 생활이 종료되자, 나는 본격적으로 혼자 있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신대방역 근처에 작은 빌라에 살았는데, 학교를 잘 나가지 않았다. 차가운 방바닥에 누워서 음악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음악을 듣다가 낮잠이 드는 것이 일상이었다. 음악의 종류는 상관이 없었다. 당시에는 여러 번 반복해서 듣고 싶은 음악과, 또는 지겨운 음악으로 분류되었는데 나의 음악 취향이 가장 다양하게 바뀌던 시기였다.


그렇게 하루의 대부분을 누워(?) 보내다 보니, 나를 둘러싼 세계가 무척 갑갑해지기 시작했다. 공기가 무거워졌다고 할까? 앞으로의 삶이 두려웠던 적은 별로 없었지만, 앞으로 삶을 계속하여 살아나갈 이유가 절실히 필요해졌다. 어떤 면에서 규격에 맞는 삶을 벗어나자, 갑자기 찾아온 자유의 공기를 마음대로 쓰기 어려웠던 것이다.


나는 당시에는 몰랐다.


자유란 본래 어려운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를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때때로 자유롭지 않은 삶을 원치 않더라도 끝내지 못한다.


나는 결국 여행을 가기로 했다. 아무런 목적 없는 여행이었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삶은 도저히 편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살아나갈 이유를 만들기 어려웠다. 결국 나는 내 안에 가장 깊은 바다속으로 조금씩 침잠되어 가는 기분을 느껴야 했다. 매일 눈을 뜨면 나는 조금씩이지만 분명하게 바다속으로 가라 앉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말을 할 수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말을 하는 것도 점차 어렵게 된다. 점점 더 깊이 가라앉고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하게 나는 바다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나의 힘으로는 도저히 나를 꺼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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