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결국 사람으로 구원받는다.
여행은 쉼과 낭만으로 들린다. 하지만 나의 경우에는 망명에 가까웠다. 돌아올 집이 있는 상태에서의 여행은 쉼이고 일탈이 되지만, 돌아올 곳을 만들지 않고 떠나는 여행은 모험이 된다(고생도 함께...).
한국을 떠나고 난 후 처음으로 느꼈던 가장 큰 신기함은 나라마다 정말로 공기가 다르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라들은 사람처럼 특유의 느낌들이 다 달랐다. 사람들의 삶의 모습과, 정취도 달랐다. 가난했던 주머니 덕에 비싼 나라에서는 오래 있지 못하였지만, 길게 체류할 수 있었던 나라들은 대부분 여행자의 삶과 현지인의 삶이 몹시 다르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한국에서의 삶들을 정리하는 것을 가까스레 성공했다. 정확하게는, 더 이상 한국에서 삶을 살아가야 할 이유를 찾지 않기로 했다. 워낙 정리(?)를 잘하는 성격 탓에 한국에서의 것들을 털어버리는 일은 그렇게까지 어렵지 않았다.
무엇인가를 간절히 원하면, 비우는 것부터 해야 한다.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불필요한 옷을 덕지 덕지 껴입는 것과 비슷하다. 그렇기에 이유도 모른채 시간이 갈수록 지치게 된다. 나는 끝 없이 침잠되고 있던 나를 구원하기 위해 밟고 있던 땅을 떠났다. 그 것이 가능했던 때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새로운 곳을 정처없이 걷는 것은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목적이나 계획없이 여행을 다니는 것도 도움이 되었다. 물론 언제나 두려움은 있었다. 내가 남자였으면.. 하고 생각했던 시간들도 많았다. 아무래도 혼자 여행을 다니기에는 여자보다는 남자인 것이 훨씬 편하다. 대부분의 낯선 사람들은 남자에게 큰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런 저런 도시들을 거쳐오다 보니, 정착하고 싶은 곳들을 찾기도 했다. 찰즈부르크, 포르투, 빠이.. 특히 다람살라는 무척 좋았다. 그러나 아쉽게도 완전히 살고 싶은 도시를 아직까지도 발견하진 못했다. 무엇보다 그 도시가 아무리 아름답고 좋아보이더라도 그 곳에서 살기로 결심한 순간 나는 완전히 타국의 이방인으로서 살게 되는 것이니까 말이다. 나는 한국을 완전히 떠나온 것은 맞았지만 어디에도 정착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삶의 가능성을 무한히 열어두기로 했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조금씩이지만 분명하게 가라앉고 있는 나를 무엇으로도 설득하기 어려웠다. 어설프게는 안되었다. 사력을 다해야 했다.
물속에서는 열심히 헤엄치고 있지만 겉으로는 여유있어 보이는 백조와 같이, 나는 사력을 다해 한국을 떠나왔지만 외국에서는 주로 하는 일 없이 걸으며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결국 삶의 방향성을 찾게 한 것은 그 곳에서 만난 사람들이었다.
사람은 결국 사람으로 구원한다. 나는 분명히 이 말을 믿고 있다. 바다속으로 침잠되어 있는 나를 꺼내줄 수 있는 것은 나이지만, 그 계기를 만들어주는 것은 다른 사람이다. 결국 누군가가 날 구원해주려고 해도 내 마음이 닫혀 있으면 잘 될리가 없다. 하지만 동시에 내가 아무리 삶의 의미를 찾고 싶어도 나 혼자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이런 것들은 전부 오래 전의 기억들이다. 최근에는 잠을 자다가 어이 없는 시간(새벽 1시, 2시)에 깰 때가 종종 있다. 그리고 반 쯤은 잠이 든 상태로 글을 써 내려 간다. 그렇게 내 마음의 파도들을, 일렁임들을 정리한다. 그리고 과거의 어느 때, 이국의 다른 공기들을 생각해 본다. 그리고 그 곳이 어디더라도 나는 그 기억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마치 어제 떠나 온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