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하롱베이에서 만난 그녀
내가 그녀를 만난 것은 아마도 2008년의 한 여름, 베트남 하노이에서 신청한 하롱베이 투어에서였다. 그때 내가 왜 하노이에 있었는지 아직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언젠가 한번 가보고 싶었던 베트남의 하노이는, 벽에 뜬금없이 밖혀있던 모서리 못과도 같은 도시였다. 그것은 언젠가 반드시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고, 또 실제로 나는 그런 마음이 들면 반드시 실천에 옮기는 편이었다.
더웠던 2008년의 여름날을 기억한다. 내 방은 언덕위에 닭장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는 수많은 원룸들이 가득한 집집들중의 맨 끝에 있었고, 내가 그 방을 선택했던 이유는, 단지 창이 있어서 바람이 쉽게 들어올 수 있었고, 그 창밖으로 숲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나는 죽은듯이 방에 있었다.
그 이전에는 미처 몰랐으나, 나는 생각보다 생활이 크게 흐트러지지 않았고 그 방은 내가 들어오기 전이나 후나 크게 차이가 없을정도로 정적이었다. 가을이 오면 바람이 불다가, 겨울이 오면 눈이 쏟아져내렸고, 또 봄이 소리없이 찾아왔다. 창문을 열면 정체불명의 벌레들이 쏟아져들어오는 것만 빼면 나는 그곳이 퍽 마음에 들었다. 방음이 잘 되지 않았기 때문에, 복도로 울리는 사람들의 발소리가 단지 크게 크게 들릴뿐이었다.
어느날, 나는 와인 한병을 선물로 받았다. 독일에서 친구가 사다준 그 와인은 '아이스바인'이라고 하였다. 내가 처음 마셔본 와인인 '아이스바인'은 실수로 만들어진 와인이라고 했다. 그것은 무척, 지나칠정도로 달았고, 때문에 내 머릿속을 멍하게 만들었다.
내 마음속에는 늘 타오르는 불이 있었는데, 그것은 늘 일정한 강도로 타올랐기 때문에, 평소에는 상당히 균형적이었다. 나는 사람들 마음속에는 늘 일정한 강도로 타오르는 불이 있다고 생각해왔다. 나의 경우에는 때때로 그것을 인식하고 있을 뿐이다. 그것은 절대로 꺼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불을 '인식'할때면, 내 몸은 건조하게 바싹 말라버리는 듯한 기분이 들곤 했다. 입안이 바싹 마르는 것과도 같이, 그래서 나는 실제로 새벽녘에 물을 꺼내 마시곤 했고, 추운 겨울이 되면, 화롯불 앞에 앉아 몸을 녹이곤 했다.
놀랍게도, 나는 늘 무엇인가에 목이 말라있었다. 나는 그것이 知에 대한 탐구라고도 생각했다. 처음에 나는 점멸하는 별들처럼 활자에 탐닉했다. 그러자 내 몸안에 있던 어떤 불이 크게 타오르는것과도 같이 알수 없는 곳까지 날 두드리곤 했다. 그럴때면 나는 지나치게 자유로워서, 그것이 날 알 수 없는 곳으로 끌고 가곤 했다.
그것은 활자에 탐닉하게 만들고, 또 그림에 유희하게 했다. 나는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음악을 좋아했다. 내가 무엇인가에 빠져 있을때, 나는 그토록 자유롭게 유영(流泳)할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늘 그 불을 어쩌지 못하고, 그런 것들을 바래오곤 했다. 그럴때면 나의 자유로움은 나의 존재를 망각하게 하고, 조금 숨을 쉴 수 있게 했다.
하롱베이에서 그녀를 만났을때, 나는 나의 유영이 끝났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아름다웠고, 또 아름다웠다. 그녀는 언제나 그곳에 앉아 있는 현지인과도 같은 모습으로 배 위에 놓여있던 테이블앞의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내 쪽을 잠시간 응시하고는 이내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렸을 뿐이다.
처음에 나는, 단지 해가 지는 것을 바라보면서 책을 읽을 셈으로 가져온 기욤뮈소의 프랑스 소설을 들고 나왔었다. 하지만 나는 우연한 계기로 그녀를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처음의 몇초의 응시말고는 단 한번도 내 쪽을 바라보지 않았으며, 대체 무엇을 생각하는지 상상도 할 수 없는 표정으로 배 너머의 물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는 단색의 원피스를 입고 있었고, 은색의 달라붙는 귀걸이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것들을 책 너머로 모두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이 내가 기억하고 있는 우리의 첫 만남이었다.
어느 날, 그녀와 함께 와인을 마시게 되었을 때의 일이다. 그녀는 종종, 그때 왜 하노이의 하롱베이를 가게 되었는지를 나에게 말해주곤 했다. 나는 무엇보다도 꺼지지 않는 내 마음속의 불들을 어찌할 수 없었고, 그것들은 방향성을 잃은 남루한 배들과도 같이 떠다니게 되었는데, 그러다보니 아주 작은 계기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노라고,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그러다 지구끝까지 가서야 나는 비로소 알게되었어. " 라고 그녀는 계속해서 말했다.
그것은 마치 큐브와도 같아서, 내가 떠나기 전의 위치로 돌아오게 되는 과정이었다는 것을 말이야. 결국 내 불은 밖에서 꺼트릴수 있는 그런 종류의 것들이 아니었지. 하지만 나는 유약한 병자처럼 누군가가 그것을 꺼주기만을 바라고 있었어. 처음에 나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믿었고, 또 현자의 말이라고도 생각했어.
나는 삶을 탐구하고도 싶었지. 사람들이 어떻게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하루하루를 버티면서 살 수 있는지 너무나 궁금했어. 나는 그런 것들이 무척 알고 싶었어. 하지만 어느 날 나는 내가 태어난 곳과 아주 거리가 먼 곳에서, 여전히 나약하고 유악한 마음을 껴안고 앉아 있었는데 ㅡ 갑자기 그런 모든 것들의 의문이 끝이 나버렸다는 것을 알았어.
나의 생에 대한 탐구는 끝이 날 만한 것이 아니었고, 나는 계속 나아갈 수밖에 없으며, 그래서 이렇게 앉아
언제까지나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어.
그러다가 우연히 너를 만나게 되었지.
너를 만나고 나서, 나는 왜 그렇게 방황했었는지 알게 되었어. 너와 나는 똑 같은 외로움을 안고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는 것을 말이야. 같은 질량의, 같은 무게만큼의 외로움을 우리는 알고 있었어. 그리고 딱 그만큼 상처를 받기 싫어해서, 스스로 견고한 벽을 쌓았지.
하지만 너와 나는 그 부분에서 너무나도 닮아 있어서, 서로에게 먼저 다가간다고 할 것도 없이 벽을 보일 필요가 없었던 거야. 하지만 ㅡ 그것이 얼마나 행운이었는지를 생각해 봐 ㅡ 우리가 조금만 더 일찍 만나거나, 조금 더 늦게 만났더라면 아마도 일어나지 못했을 일일 텐데.
내 삶의 사랑은 지극히 작은 부분이었고, 그것은 지금까지도 역시 그래왔다. 하지만 살면서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기는 했다. 실제로 나는 그것이 없을 때, 건조한 나뭇가지처럼 바싹 말라갔으며, 또 그것대로 익숙하게 지내왔다. 적어도 내가 그녀를 만나고나서, 그 이후의 삶은 나에게 상당히 많은 변화였다는 것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명하게 느끼게 되었다. 내가 얼마나 그녀를 만나기를 나 자신이 모를 정도로 꿈꿔 왔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하지만 ㅡ 나는 그 때, 그것이 얼마나한 행운인지를 느끼지 못했다. 나는 결국 그 무엇으로도 지배당하고 싶지 않았고, 알 수 없는 길을 향해 유희해야 하는 삶을 선택하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