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의 날들,

오랫동안 이도 저도 아닌 삶의 연속이었다.

by 정현주 변호사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흘러간다고 하는데 나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어쩌면 충분히 나이가 들지 않은 것인가?). 일이 바빠지고 무엇인가에 과몰입되어 시간이 흐른다는 것 외에, 나의 경우에는 시간이 흐를수록 과거의 기억들이 더욱 더 선명해졌다.


특히나 그 당시에 들어던 음악을 다시 듣게 되면 내가 어디에 있든지간에 그 당시의 장소로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었다. 마치 과거의 시간이 그대로 머물러 있고 그 문이 닫혀 있는 것과 같았다. 음악이란 수단은 그 문의 빗장을 여는 열쇠와도 같은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특수한 능력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음악을 듣고 있으면 나는 그 당시의 장소로 돌아가서 그때 내가 느꼈던 감정을 다시 오롯이 느끼곤 했다. 그리고 당시에 마침 불어왔던 바람과 차가웠던 공기 나를 바라보던 상대방의 눈들까지 함께 떠올랐다. 달이 일그러진 밤의 일이다. 물론 모든 기억들이 그렇게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기억들은 연기처럼 뿌연 느낌으로 남아 있기도 했다. 아마 그런 기억들은 나 스스로 기억의 문을 닫아 보관하지 않고 아무렇게 흘려버린 것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오랫동안 이도 저도 아닌 삶의 연속이었다. 말하자면 고향이 없는 외국인과도 같은 기분이었던 것이다. 문제가 무엇이었는지도 정확하게 알지 못했지만 20살이 지나서 외국으로 여행을 떠나면서 어렴풋이 알게되었다. 나는 한국 사회에 잘 적응하기 어려웠다. 20살이 되도록 한국에서의 삶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중,고등학교 때에는 얼른 졸업하기만 기다렸고 20살이 넘자 무조건 돈을 모아 떠날 생각을 했다. 만약 국적을 선택할 수 있다면 나는 절대 한국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에서 떠난 이후 마음은 편해졌으나, 숱한 여행을 하면서 이곳이다! 라는 느낌을 받은 나라는 없었다. 다만 나는 이후에도 계속해서 한국이 싫었다. 그렇게 떠난 이후, 유독 편안해지는 나라, 혹은 마을에서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오래 있어도 나는 그곳에서는 외국인일 뿐이다. 나는 나라를 떠나서 그 곳에 정착해 살고 있는 많은 외국인들이 생각보다 많은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에게는 만족감은 있을지 몰라도 안정감이 많지는 않았다.


고향을 잃은 자들은 언제나 방황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았다.


꽤 많은 시간들이 지나고 나서 나는 알게 되었다. 내가 오랫동안 방황의 기분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이유는 공감해 주는 사람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이다. 사랑을 하거나 사랑을 찾는 것도 아니었다(한 때는 그렇게 믿기도 했지만). 나는 많은 것들에 공감하고 있었지만 나를 공감해주는 사람을 찾기 어려웠던 것이다.


어쩌면 나는 그동안 내가 찾는 것들에 대한 솔직한 태도를 보이지 않았던 것일까?


이도 저도 아닌 이방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척 고독한 일이었다. 그것은 스스로도 힘든 일이었을 뿐만 아니라 주위를 어지럽히기만 했다. 나는 나를 사랑해주는 많은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상처를 주기도 했다. 이렇게 고독할 바에야 차라리 혼자 남는 것이 편하다는 생각도 더러 들었다. 그런 시간들은 엉키고 늘어져서 시간이 한 없이 길게 지나가기만 기다린다.


그래서 나는 삶 속에서 조금씩 남아 있던 공감의 순간들을 소중하게 기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둠이 짙게 내린 새벽이나, 그 때 들었으나 지금은 사라져 버린 음악이나, 완전히 혼자로 남아 있는 시간에 잠깐씩 꺼내볼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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