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고전의 세계'

우리는 투명하지만 결코 넘을 수 없는 벽을 마주본 채.

by 정현주 변호사


나는 예전부터 슈베르트의 곡들을 무척 좋아했다. 특히 슈베르트의 죽음과 소녀(string-quaret no.14 in D minor D810 "death and the maiden)시리즈도 좋지만 겨울나그네 중 '밤인사(gute nacht)'를 가장 좋아한다. 늘 좋아하는 곡들이나 책들을 계속 반복해서 읽는 것을 좋아하는 탓에 슈베르트나 슈만처럼 원래 좋아하는 작곡가가 아닌 새로운 음악들은 어쩌다가 듣는 편이다(그렇게 좋아하게 되는 곡들도 가끔 있다).


슈베르트의 곡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배경은 언제나 겨울이다. 그것도 초겨울의 스산한 느낌이 난다. 방랑자는 항상 어디론가 떠나고 있으며, 그의 마음은 이미 많은 체념들이 담겨져 있다. 하지만 어딘가에 존재하는 '인정'을 위해 따뜻한 온기를 버리지 않는다. 즉 그는 언제나 사랑을 그리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렇게 보면 삶이란 나이와도 큰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가 들면 시간이 좀 더 '느리게' 흘러가는 것 뿐이다.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다보니 삶이 좀 더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나는 원래도 그랬지만 세상 돌아가는 일에도 크게 관심이 없어, 언제나 나를 둘러 싼 세계는 고전들이 만들어 낸 거대한 성과 같다고 생각했다. 새롭고 바뀌는 것들이 주된 것들이 아니라, 오래되고 쌓여 있는 책들과 오래전 사진을 구워놓은 cd들이 가득한 창고 같은 곳이다(나 또한 그 창고에 있는 오래된 물건 중의 하나인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외부의 자잘한 상채기를 입을 때마다 나는 이른바 '고전의 세계'속에 틀어 밖혀 내가 좋아하는 슈베르트의 음악들을 들으며 글을 쓰거나 서머셋 몸의 책들을 읽곤 했다.




이 '고전의 세계'는 나름 견고한 성이다. 아주 소수의 사람들이 초대받고, 그 외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큰 장벽이 둘러져 있다. 많은 사람들과의 사회적인 대화는 피상적인 부분에 머물러 있으며, 그 이상으로 잘 나아가지 않는다. 성 밖으로 나갈 일이 많이 없기 대문인지, 나 또한 상대가 그어 놓은 선 안으로 굳이 들어가지 않는다.


우리는 투명하지만 결코 넘을 수 없는 벽 속에 둘러 쌓인 채 상대를 응시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고 또는 함께 커피를 마시기도 한다. 그렇게 서로에게 결코 가까워지지 않은 채 한 걸음 물러서서 관계를 유지하지만 이렇게 거리를 유지하기까지 많은 실망과 상처들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내 그런 감정의 편린들도 바람처럼 지나가 버리고 만다. 이런 '거리'가 무척 당연해지는 시기가 오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을 굳이 의식하지 않으며 물이 흐르듯이 살아 간다. 그러다보면 운이 좋게도 동류의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각자를 둘러싼 세계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 만큼이나 다채롭고 다양하다. 나는 그 다양한 세계가 굳이 섞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왔다. 서로의 세계를 맞추려는 노력은 거의 대부분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좋아지는 사람들이 있을까? 아마도 어렵지 않을까? 사람은 태생적으로 남에게 맞추기 어렵다(여러가지 이유에 따라 '맞추려는 노력'을 하는 것 뿐이다).


하지만 '동류'는 다르다.


나와 같은 세계를 나눌 이가 있다면 기꺼이 고전의 세계의 단단하게 잠궈놨던 자물쇠를 열어 기꺼이 내 방으로 초대하리라. 그리고 얼마든지 이 곳에 머물다가 갈 수 있도록 쉼터를 제공할 것이다. 지루한 삶속에서 얻을 수 있는 몇 가지의 안식이 있다면, 그것은 나와 동류의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동류'를 만나기 위해, 슈베르트는 그토록 긴 시간을 기다렸을 것이다. 그것은 인정이며, 추운 겨울의 화롯불과 같은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당연히 대부분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물론 나는 나를 둘러싼 고전의 세계가 이대로 친숙하다. 일을 하면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 그 사람들의 이야기와 상황들을 처리하는 나 이외에 이렇게 차가운 계절이 오면 익숙한 고전의 세계에서 머물며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를 들으며 말러의 시들을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렇게 하루 이틀, 고전의 세계에 머물러 있다가 새로운 한 주를 또 시작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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