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낭에서의 하룻밤

by 정현주 변호사


사람은 왜 허무함 속에서 생을 찾아야 하는가? 곧 드리워지는 죽음과도 같은 실제적 공포가 있어야 여하한 삶을 좀 더 잘 느낄 수 있게 되기 때문일까?




그 날은 어김없이 새파란 가을의 그저 그런 하루처럼 보였다. 하늘은 드높았고 물감으로 칠해진 회색과 짙은 파랑이 섞인 하늘에는 흰 구름들이 떠 다녔다. 가끔씩 그렇게 색이 대조적으로 빛나는 날들이 있다. 눈 앞에 보이는 다채로운 빛들, 그리고 두런두런 거리는 사람들의 말 소리가 한꺼번에 들리는 날들..


마침 배가 미끄러지듯 선착장에 도착하고 있었다. 나는 장시간의 운행으로 헝클어진 머리를 정돈하고, 낡은 캐리어를 찾아 내릴 준비를 마쳤다. 아, 카메라를 잊을 수는 없다. 당시에는 크로스로 메고 다녔던 캐논 카메라가 있었다. 물론 혼자 여행을 다니다보면 생각보다 여유롭게 사진을 찍을 시간이 많이 생기지는 않지만 말이다.


'페낭'은 당시 베낭여행지의 성지같은 곳으로 거리에 있는 모든 것들이 옛날 느낌이 들었다. 이 곳은 '느린 여행자의 도시'다. 나는 언제나 페낭을 꼭 한 번 와보고 싶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이름이 주는 울림이 마음에 들기도 했고, 영국의 영향권을 받았던 도시라 아시아와 유럽이 섞여 있다는 느낌도 꼭 눈으로 보고 싶었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배가 고팠다. 여행은 늘 허기지다. 아시아에는 어느 곳을 가든지 포장마차 같이 거리에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공간들이 있다. 나는 주위를 보다 커다란 웍에 큰 국자같이 생긴 조리도구를 이용하여 무엇인가를 열심히 볶고 있는 작은 가게에 들어갔다. 그리고 '나시고랭'을 시켰다. 나시고랭은 그냥 볶음밥이다. 그런데 동남아시아의 볶음밥들은 어느 나라에서 시키든 무조건 맛이 좋다. 내가 시킨 '나시고랭'은 태국에서 먹던 볶음밥보다는 색깔이 진했는데, 역시나 맛이 좋았다.


하지만 난 계산을 하려고 지갑을 열자, 여기가 태국이 아니라 말레이시아이며 몇 주전 우연히 환전한 말레이시아 화폐들 말고는 돈이 한 푼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밤새 배에서 설잠을 자고 있었던 까닭에 무조건 환전을 해야 하는 상황을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무슨 생각으로 '페낭'까지 오게 된 것일까? 큰 계기는 아니었다. 어디론가 계속 떠나고 있었고, '페낭'이라는 이름이 익숙하게 들렸으며, 아마 페리값이 무척 저렴했던 까닭이었던 것 같다.


어느 순간 나라에서 나라로 이동하는 것에 대한 개념이 흐릿해졌던 것 같다. 버스를 타고 국경을 횡단하기도 하고, 기차를 타거나 또는 배를 타고 국경을 넘어가기도 했던 것이다. 마치 도시에서 도시를 이동하듯이 나에게는 그냥 새로운 '장소'일 뿐이었다.


가지고 있던 화폐들로 나시고랭 정도의 밥값은 지불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가 막막했다. 나는 최후수단으로 챙겨온 비자 카드를 넣고 돈을 인출하려고 했다. 아... 그런데 카드가 정지되어 있었다. 흔히 있는 일이었지만 처음 오는 새로운 나라, 새로운 장소에서의 이런 경험은 절대로 마주하고 싶은 상황이 아니다. 은행을 가면 어떻게 해결이 가능할 수도 있었겠지만 마침 토요일이라 내일까지는 은행이 모두 닫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결국, 나는 당장 마주한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우선 집에 연락을 하고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해 친구에게도 연락을 했다. 그리고 가장 저렴한 이동수단인 버스를 타고 한인 숙소를 찾아갔다. 그리고 숙소의 한국인 사장에게 사정을 말한 뒤에 한국에서 한국돈으로 계좌이체를 하면, 해당하는 돈 만큼의 말레이시아 돈을 환전받기로 했다.


이런 모든 과정이 일어나기 전, 나는 깨끗한 길에 잠시 앉아 있었다(은행 바로 앞에 공터는 생각보다 무척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을 하려고 노력해도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치 방망이 같은 것으로 갑자기 머리를 맞아서 멍해진 상태 그대로 모든 것이 멈춘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알 수 없는 곳에서 대단히 현실적인 이유로 손에 땀이 차기 시작했다. 등에도 땀이 흐르는 것 같았다.


문득 내가 낯선 곳에 완전히 혼자 있다는 것을, 지금 이 순간에 갑자기 사라진다고 해도 그 누구도 날 도와줄 수 없다는 자명한 사실이 인식되었다.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오고 싶었던 나는, 아무도 모르는 곳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를 잘 모르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나보고 강하다고 말한다. 또는 무척 겁이 없거나, 위험하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사실 나는 강했기 때문에 떠나는 선택을 한 것은 아니다. 당시의 나에게는 언제나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물론 물리적인 선택지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겠지만, 그런 걸 선택할 정도로 강인하지 못했거나, 눈이 흐렸을 뿐이다.


그렇게 깨끗하게 아름답던 페낭의 하늘과, 느린 걸음들과, 맛있는 음식들을 뒤로한 채 나는 환전을 하자 마자 도망치듯 그 곳을 떠났다. 등과 손에 땀이 차고 목이 메이던 그 기분을 잊을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페낭은 정말 오래도록 머물고 싶은 도시였으나, 나에겐 순간적이지만 마주하고 싶지 않은 공포를 잔뜩 안겨준 곳이었다.


어쩌면 나는 어이없이 환전도 하지 않고 용감하게 토요일에 페리를 타고 새로운 나라를 온 탓에, 불현듯 내가 있는 좌표를 인식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있는 좌표는 안전한 곳이 아니었다. 적어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안전해 보이는' 집으로 돌아가기 전까지는 말이다. 하지만 물론 한국의 집도 '안전한 곳'은 아니었다. 나는 결국 공포를 마주하거나 맞닥뜨린채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다.


너무 아쉬운 하루 동안의 이야기이다. 페낭은 느리고 옛스럽다는 점에서, 그리고 많은 이들이 여행객으로 멈추지 않고 스쳐간다는 점에서 어딘가 그때의 나와 닮아 있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눈을 감고 마음에 귀를 기울이면 언제든 갈 수 있는 수 많은 장소, 혼자 있는 밤들, 차가운 밤의 공기들이 아른거리지만 아쉬움이 가득했던 날들도 있다. 그리고 언제고 내 마음속의 상자에 넣어 꺼내볼 수 있는 시간들을 늘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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