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하기 전까지는 고통은 그저 나의 몫으로 남기면 된다고 생각했다. 고통은 보통 실존에서부터 시작되었으니까 말이다. 오히려 대부분의 나의 삶은, 감정이 없는 무미건조한 것들에 가까웠다. 시간이 지나자 나를 스치는 것들에 대한 감각이 없어졌고, 그러다 보니 고통이 오면 나는 자연스럽게 이 세계에 대한 회피를 선택하면 되었다.
매우 간단한 일이다. 아무리 무거운 짐이라도 세상에 나 혼자만 있다면 다른 누군가에게 기대할 것이 없다. 나의 고통은 오로지 나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나는 그냥 앉아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대하면 되었다. 그렇게 많은 것을 포기한 채로 앉아 있다가 우연이라도 점멸하는 빛을 발견한다면 그 자체만으로 위안을 얻기도 한다.
살아가면서 얻는 많은 상처들은 사실은 많은 부재로부터 객관화된다. 그러니까 실제로는 아무것도 없음.이라는 객관적 사실을 마주 보면, 내가 받는 상처들의 대부분은 내가 만들어낸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나는 무엇인가를 기대하고 상자의 뚜껑을 연다. 이내 그 안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절망한다. 하지만 사실로 말하자면, 나는 상자의 내용을 확인하기 전부터 분명히 이곳에는 아무것도 없을 것이란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무엇인가 기대를 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기대는 무척 본능적인 것이며, 때때로 삶을 살아나가는 데 있어서 가장 필요한 부분이 되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의 느끼는 힘듦이란 단지 혼자 있음으로 무엇인가 승화를 시킬만한 것들이 아니다. 고통이 실존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일을 하면서 만든 다른 관계에서부터 오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에너지의 고갈과 같은 것이고, 또한 부적응의 문제이다.
그래서 무엇으로도 해소되지 않는 기분을 최근에는 많이 느낀다. 이런 류의 어려움은 혼자있음이 익숙한 내가 겪어봤던 어려움이 아니다. 가지고 있는 에너지들을 다 쓰고 나면 완전히 비어있는 상태로 무엇인가를 시작해야 하는데 비우지 못하는 것이다(또는 비울 수 없다).
해야 할 일들이 끝없이 쌓여있거나 생각하거나 결정해야 할 일이 쌓여있다. 무엇보다 나는 그곳에서부터 도망치지 못한다. 결국 해결을 해야만 한다. 상황을 그대로 두면 악화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또는 나는 괴로움이 익숙지 않아서, 도망가려는 습성을 버리지 못한다.
결국 나는 원점으로 돌아온다. 일은 시간이 지나도 익숙지 않고, 내가 바로 해결할 수 없는 괴로움들이 도처에 널려있음을 받아들이면서.
그리고 나는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쿠바를 머릿속에 떠올려본다. 비행기를 타고 얼마나 멀리 가야 할지 감도 오지 않을 만큼 머나먼 곳 쿠바로 가는 것이다. 그곳에서 원하는 만큼 오랫동안 머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본다.
나는 늘 익숙하고 편안한 것들을 좋아하지만, 여행만큼은 새로운 곳으로 가는 것도 좋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