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은 나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나를 기다린다.
다시 새벽녘에 눈을 떴다. 나는 거실로 나와 두 시간 가까이 집중해서 글을 썼다. 어느새 새벽의 시간들은 남김없이 지나갔고 아침이 밝아왔다. 한 동안 쓰고 싶었던 주제가 있었는데 마땅한 언어를 선별해 내기 어려웠다. 그리고 생각보다 길고 긴 침묵의 시간들이 지나갔다. 나는 그동안 다른 것들에 제대로 집중하기 어려웠다. 어쩌면 그리운 방랑의 시간들이 나에게 다시 찾아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월간 브런치에 보낼 '여행하는 방법'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사실 내가 말하고 싶은 메시지는 매우 분명한 것들이다. 하지만 이 것을 글로 표현하는 일은 무척 어려웠다. 글을 쓴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이 잘 표현이 되지만 대부분의 경우 처음부터 시작하기 어렵거나 글로 적는 순간 미세하게 표현이 어그러진다. 그런 식으로 이어지는 글들은 갈 길을 잃고 삭제된다. 영원히 발행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런 일들이 누적이 되면 나는 자연스럽게 내가 무엇인가를 표현해 낼 만큼의 충분한 시간들을 보내지 않은 것인가?라는 의문을 품게 된다. 실제로 그런 시간들이 굉장히 필요한 순간들이 있다. 이를테면 무엇인가를 표현해야 하는 순간들은 셀 수 없이 많은 고독의 시간들을 거친다. 사고는 무형적이지만 그것들의 극히 일부만 형상화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그것은 경험으로만 가능한 것들이 아니다. 경험을 거쳐 나오는 인간의 모든 작품들은 크든 작든 사유의 시간들이 필요하다. 외부에서 보기에는 '왜 이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멈춰 있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멈춰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오늘도 불멍*을 했다. 불멍은 또 최고의 뇌휴식 활동이라고 하지 않던가?
실제로 나무에 불이 붙어 타오르는 것을 보는 일은 몹시 오랜만이다. 따뜻한 온기도 좋았지만 타닥타닥 소리도 함께 들려왔다. 불을 보고 있다 보니 나는 밤 속에 사는 한 마리의 나방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방에게 낮은 오히려 컴컴한 어둠이다. 밤이 오면 나의 활동지대가 된다. 삶은 다른 곤충과 비교하더라도 굉장히 짧은 편이지만 누구보다도 더 열정적인 시간들을 보낸다.
" 고통은 아무 말 없이 받아들이는 거라고 배웠어."
왜 너는 그런 말을 해야 했던 것일까? 그토록 고독한 얼굴을 하고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 눈으로 말이다. 너는 얼마나 긴 침묵의 시간을 거쳐야 했던 것일까.
문득 나는 내가 무척 지쳐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떠한 경험도 필요치 않았고, 의지나 목적이 없이는 세상을 정확하게 인식하기 어려울 만큼 말이다. 나는 바닥에 뿌리를 내린 나무처럼 그 자리에서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오래도록 몸을 말고 있었다. 물론 그 순간에도 나를 둘러싼 어둠은 매우 가까운 곳에서 농밀한 밀도로 계속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은 불로 뛰어드는 한 마리의 나방과 같이 열정적인 느낌을 던져 줄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이제 더는 상관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이 나를 더욱더 고독하고 고독하게 만들어서 방랑의 때로 이끌어 주기를 바라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삶을 살아나가기 위하여 기꺼이 나에게 오는 고통들을 받아들여야만 할 것이다.
불멍* '장작불을 멍하니 본다', '불을 보며 멍 때린다' 등의 줄임말. 캠핑장이나 벽난로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멍 때리는 걸 의미한다.(나무위키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