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겨울의 우아한 유령은 마음속에 숨겨진 불처럼.
윌리엄 발콤의 우아한 유령(Graceful Ghost Rag)은 비교적 최근에 작곡된 곡이다. 클래시컬하지만 어딘가 음울한 느낌이 감돌아 재즈풍의 느낌이 피아졸라의 탱고를 떠올리게 한다. 이 곡은 여러 가지 악기로 연주한 다양한 버전이 있는데 나는 특히 바이올린과 피아노로 협주한 연주한 버전을 제일 좋아한다. 물론 피아노로만 처음부터 끝까지 치는 버전도 굉장히 좋은 편이다.
한 겨울의 우아한 유령은 마음속에 숨겨진 불과 같이 따뜻한 느낌을 전해주며, 오늘처럼 흰 눈이 펑펑 오는 날에 듣고 싶어지는 겨울의 곡이다. 특히 반복되는 첫 음절의 멜로디는 중독성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컴퓨터에 앉아 글을 쓰며 나도 모르게 우아한 유령의 첫 소절을 흥얼거린다. 그리고 몇 해 전 겨울의 밤, 혼자 포르투의 카페에 앉아 바라보았던 바깥의 이질적인 풍경을 떠올린다.
그날은 해가 지면서 바로 부슬 부슬 겨울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들은 봄비처럼 소리도 없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유럽의 돌바닥에 조용히 부딪히며 흩어졌다. 방랑자와 다름없던 나는 숙소에 혼자 있는 것이 답답한 나머지 정처 없이 길을 나섰다. 마침 비가 오고 있다는 것은 나에게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비가 내리는 밤을 좋아한다.
하지만 비가 오는 밤에 우산을 들고 오래도록 걸을 수는 없었다. 비는 적어도 산책을 하는 것에는 큰 방해가 되었다. 결국 나는 한 면이 통창으로 되어 있는 붉은 벽의 카페에 들어갔다. 그리고 진한 에스프레소 한 잔과 함께 먹을 에그타르트를 주문했다. 그리고 그것들을 들고 창가에 앉았다. 그때 눈에 들어온 풍경은 이런 것이다. 바깥은 천천히 떨어지는 빗방울들이 빛에 반사되어 반짝 거렸고 사람들은 코트의 깃을 여미고 빠르게 걸음을 재촉했다. 비 때문에 그 누구도 주위를 둘러보지 않았다.
그리고 거리의 한 가운데에는 작은 난간 같은 곳이 있었는데, 위에는 다소 짧은 지붕으로 간신히 비를 피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어둠 때문에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던 한 남자가 그곳에 서서 바이올린 케이스가 비를 맞지 않을 정도로만 앞에 두고, 바이올린을 켜기 시작한 것이다. 남자는 바이올린을 켜기 전 잠시 숨을 고르듯이 우뚝 서서 나지막이 앞을 바라보았다. 비는 더 이상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천천히 젖어들고 있었다.
음악은 카페의 창에 가려져 제대로 들리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의 바이올린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자 그 따스한 기운이 목을 타고 내려가는 것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이내 커피의 뜨겁고 쓴맛은 사라졌지만 그것이 남긴 뜨거운 기운은 내 몸을 타고 거꾸로 올라와 팔 전체를 감돌았다. 나는 머리가 뜨거워졌다.
그런데 바깥에 길을 가던 한 쌍의 연인이 갑자기 바이올린을 켜는 그 남자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두 손을 붙잡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주위를 의식한 듯 쭈뼛거리는 느낌이 함께 있었지만 그들의 동작은 점차 자연스러워지고 대담해졌다. 거울을 바라보듯이 창밖에 시선을 두고 있던 나는 그들의 대담한 행동에 놀라 나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내 몸을 감싸던 뜨거운 기운들은 웃음과 함께 더 이상 퍼지지 않고 붙들려 있었다.
열정적이었던 연인들의 몸짓은 차가운 겨울과 안개처럼 흩어지던 빗방울과 어우러져 나의 고독을 함께 가져갔다. 나는 하염없이 그들의 음악을 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흐르던 재즈풍의 우아한 유령이 귓가에 들려왔다. 언제까지나 그곳에 박제되어 춤을 추고 있었던 연인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