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맹이는 죽음 옆에서 빛을 보았다.
조용한 봄 사무실, 라디에이터의 따뜻한 바람 속에 둘러싸여 열심히 서면을 작성하고 있는데 반가운 전화가 왔다. 월간 에세이 편집장님으로부터 온 전화였다.
" 갑자기 전화드려서 놀라셨죠? 메일로도 내용을 알려드릴 거긴 한데, 한 번 정도는 전화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아서. "
2월 1일, 나는 드디어 월간 에세이로 보낼 글을 완성하였다. 중간에 분량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착오로 인해 분량 조절에 실패하였으나 두 차례에 걸쳐 편집을 하고 (처음보다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최종본을 보낸 것이다.
글을 쓰다 보면 어쩔 수 없이 그 시절의 그 기억들을 떠올려야 한다. 나의 경우에는 그 과정이 어렵지 않지만 때때로 지나치게 몰입을 해서 문제가 된다. 나는 Hélène Grimaud가 연주하는 모차르트의 피아노 콘체르토를 끝없이 듣고 있었다. 물론 음악은 적절하게 나의 생각들을 과거로 향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리고 나는 물들이 만나는 얕은 강변을 따라 끝없이 산책을 하는 오래전 익숙한 광경을 떠올렸다. 마음에 풍요로움이 담겨있었던 장소였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결이 같은 사람을 만나는 것은 기준도 존재하고 감도 있다'라고 했다. 하지만 나의 경우에는 우연한 기회에 가까운 일이었다. 물론 시간이 많이 지나고 나서 좀 더 분명하게 알게 되었지만.
대부분의 알맹이는 계속 진흙 속에 묻혀 영원히 빛날 기회를 얻지 못한다. 그리고 스스로도 자신이 알맹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한때는 기대를 할지도 모르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화의 때에 대한 기대를 접는다. 하지만 어느 날 우연히 뜰채가 어떤 알맹이를 다른 알맹이들 또는 진주들과 함께 건져 올린다. 말 그대로 '우연히' 일어난 일이었다.
건져진 알맹이는 진주를 찾기 위한 다른 이의 손에 의해 함께 물에 씻기고 처음으로 빛을 마주 본다. 물론 알맹이는 처음부터 진주로 태어나지 않았다. 이런 사실은 물에 씻기더라도 절대로 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알맹이는 만족한다. 처음으로 마주한 빛은 자신의 삶 속에서 절대 기대하지 못했을 거대한 행운이었기 때문이다. 평생을 축축하고 컴컴한 어둠 속에 있었고, 곧 모든 기억을 망각할 뻔했다. 그리고 그것이 일반적인 알맹이들의 삶이었다. 또한 진주가 아니라면 어떠한가? 나는 빛을 본 것만으로도 되었다. 알맹이는 사람들이 자신을 개의치 않아 한다는 것에 오히려 만족을 느낀다. 아름답고 영롱한 진주들은 그 나름대로 몸에 구멍도 뚫리고 여기저기 팔려나가야 하는 기구한 운명을 타고났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구원받은 알맹이를 건져올린 '뜰채'는 어디에서 왔을까? 그런 일은 어떻게 알맹이의 삶 속에서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인가가? 알맹이는 열심히 생각해 보았지만 그 연유와 까닭을 전혀 알 수 없었다. 알맹이로서는 짐작도 가지 않을 일이었다. 그냥 세상은 우연으로 가득 찬 것이 아닐까? 어쩌면 그 우연조차 운명일지도 모른다.
알맹이는 그저 우연히, 컴컴한 어둠 속에서 전해 듣기만 한 '뜰채'라는 존재와 바깥의 빛을 상상만 하면서 시간을 보내곤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시간들이 알 수 없는 밀도로 흘렀고, 알맹이의 머릿속에서는 망상처럼 뒤엉키고 말았다. 어느 순간 그런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지 아닌지도 확신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냥 이대로 죽어가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알맹이의 죽음은 강변에서는 아무 일도 아니었다. 사실 '알맹이'로 태어났다는 것 자체가 이미 죽음에 가깝게 태어났을지도 모른다. 알맹이의 삶은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을 만큼 사소했다. 바로 옆에 진주와 비교하더라도 전혀 특별하지 않았고 크게 가치가 있지도 않았으니.
죽음은 늘 바로 앞에 있었다. 하지만 알맹이는 애써 태어난 삶을 죽음에게 송두리째 빼앗기고 싶지는 않았다. 어둠 속에서 무한이라는 것을 생각했다. 그러자 참을 수 없을 만큼 격한 잠이 쏟아졌다. 죽음에 가까울 정도로 폭력적인 잠이었다.
눈을 뜨자 빛이 쏟아져 내렸지만, 처음에는 어떤 상황인지 제대로 인지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알맹이는 처음으로 차가운 물속으로 들어갔다. 축축하기만 했던 눅눅한 감각과는 전혀 다른 상쾌한 경험이었다. 이런 일들은 순식간에 발생한 것이다. 여러 가지 감정들이 밀려 들어왔다. 알맹이로서는 처음 느껴보는 벅찬 감정이었다. 아마 감정이라는 것이 그 깊은 어둠 속 어딘가에 숨겨놓은 보물처럼 박제되어 버렸는데 스스로도 이런 격한 감정을 느끼는 것이 놀라웠다.
그리고 그런 무지개와 같은 감정들은 어떤 것은 시고 달고 썼으며, 비리기도 했고 또 두 번 다시 느끼고 싶지 않을 만큼 고통스럽기도 했다. 알맹이는 처음으로 살아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그것이 무척 고통스럽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한이라는 것을 느낀 이후에는 나를 감싸는 시간들은 더 이상의 큰 의미를 상실했다. 그리고 많은 것들을 인생의 욕심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내려놓지 못한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하지만 나를 가둔 것은 시간과 신체가 아니라 자유롭다고 믿는 나의 정신이었다. 그리고 모든 감각은 죽음의 바로 옆에서 더욱 더 생경하게 다가왔다.
그렇게 사소하고 하찮은 알맹이는 죽음의 바로 옆에서 빛을 보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