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mezzo op. 118. no. 2.
나는 힘들 때면 '이른바 고전의 세계'로 파고든다. 이 견고한 세계는 다이아몬드처럼 단단하고 잘 보이지 않는 안락한 세계다. 그 무엇으로도 깰 수 없는..
회색에 가까운 브람스의 음악은 따뜻한 초원을 떠올리게 한다. 특히 intermezzo op. 118. no. 2. 를 듣고 있으면 더욱 그렇다. 그의 음악 안에서는 많은 것들이 색을 잃고 아름다운 흑백이 된다. 그리고 흑과 백의 어딘가에서, 나는 넓은 초원 위의 유목민처럼 끝도 없이 걷기 시작한다. 하늘을 맞닿은 지평선 위의 수묵화처럼 아름다운 길을 따라 걷고 또 걷는다.
요즘 사람들은 감정을 잘 쌓아두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이건 시대의 문제가 아니라 성향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고전이란, 나에게 오는 감정들을 함축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몹시 한정된 공간에서 오랜 시간 정제(整齊)되어 글이나 음악이나 그림으로 표현되며 비로소 세상에 나타나게 된다. 글이나 음악의 표현은 단지 수단에 불과할 뿐이다.
어떠한 결과물을 위해서 술을 빚는 명인과 같이 감정은 증류되고 희석되고 버려지기도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물론 절대적이고 함축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가장 맛있는 음식의 맛을 알기 위해서 바로 씹지 않고 잠시 그 맛을 음미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감정의 정제를 거치지 않는다. 그들은 감정을 담지 않고 그대로 흘려보낸다. 물론 그것을 나쁘다고 볼 수는 없다(이 또한 성향의 문제이니). 모든 사람들이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때때로 '고전적인 것'을 선택하지 않아도 이미 선택지어진 운명들이 있다. 원하지 않아도 모든 감정들을 차곡차곡 담아두고 쌓아두어 무척 고심하여 재료들을 선별하고 그것들을 배합한다. 그 과정은 대단히 고통스럽기 때문에 본인 스스로 그것을 원할 리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이미 그렇게 하고 있고, 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선택지어진 많은 운명들 속에서 이미 정해진 것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만 힘을 얻기 위해 때때로 이유를 찾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오늘의 나는 브람스 유목민(nomad)이다.
이미 선택지어진 방랑의 길을 따라 목표를 정하지 않고 길을 떠난다. 그리고 삶이 나에게 던져주는 많은 고통의 감정들을 소중하게 담아둔다. 이른바 고전의 세계에서, 나는 많은 감정들을 선별하고 함축하여 나만의 유희(遊戲)를 한다. 그렇게 많은 날들이 내 곁에 머물지 못하고 스쳐 지나갔다. 대단히 건조하고 추운 곳에서. 인간적인 슬픔을 내포한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