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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과정을 딸과 함께 하는 경우,

자식이 입을 수 있는 상처를 왜 생각하지 않는가?

by 정현주 변호사


나는 가사조정위원으로 활동하며 많은 이혼 사건을 조정한다. 특히 남양주 법률사무소 봄을 개소한 이후 많은 이혼 상담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비단 남양주 뿐 아니라 다양한 지역에서도 이혼 상담을 위해 나를 찾아주신다. 이혼변호사라고 하면 많이들 생각하기에 이혼 상담을 전부 비슷한 양상일 거라 생각을 하지만 실상은 조금씩, 많이 다른 경우들이 종종 있다.


그런데 의뢰인이 여자분인 경우 종종 딸과 함께 상담을 하러 오시는 경우가 있다. 물론 딸은 이미 성년이다. 어떤 경우에는 딸이 직접 이혼변호사를 검색하여 같이 오거나 딸이 외도와 관련한 증거를 수집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난 종종 걱정이 되기도 한다. 자식과 함께 하는 이혼 소송이란 한편으로 자식에게는 상처만 남기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딸도 처음부터 엄마의 이혼을 응원하게 될 지는 몰랐다. 하지만 어렸을 적부터 계속된 아빠의 외도, 이기적인 태도 등에 엄마가 늘 상처 받고 괴로워하는 것을 보는 일은 정말로 힘든 일이었다. 무엇보다 견딜 수 없었던 것은 상황이 안 좋을때마다 엄마가 늘 딸에게 하소연을 하고 딸은 이를 들어주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었다.


가족의 일인데 친구에게 말해봤자 내 얼굴에 침을 뱉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고, 한편으로는 같은 여자로서 엄마가 안타깝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날들이 몇 개월이 되고 몇 년이 되자, 이제는 엄마의 앞으로의 삶을 위해서라도 아빠랑 헤어지는 것이 낫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런데 엄마는 늘 마음이 오락가락 한다. 그렇게 형편없는 대우를 받으면서도 모질게 마음을 먹지 못하는 엄마를 지켜보면서, 가족들의 불행은 전혀 아랑곳없이 자신의 불행을 모두 가족의 탓으로 돌리는 아빠를 더 이상 용서할 수가 없었다.


엄마에게 '이혼을 하는 것이 맞다.'라고 설득하면서, 동시에 주저하는 엄마를 위해 실력있고 괜찮은 변호사를 찾아보기도 했다. 소송을 위임하고 진행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엄마가 '자신이 없다.'라고 하며 이혼 소송을 못하겠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거기에서 끝이 아니다. 엄마는 '아빠를 한 번만 용서해주겠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한 딸에게 '그래도 아빠인데 너무 심하게 말하지 말라.'라고 말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딸은 아빠를 한 번만 더 용서해주고 다시 살겠다고 말하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의 자신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이제는 아빠 뿐만 아니라 엄마도 싫어질 것 같아 얼른 독립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반적으로 자식이 부모의 이혼에 개입을 하면 위와 같은 상황이 종종 벌어진다. 나는 종종 자식의 입장과 부모의 입장에서 각각 이야기를 듣는다. 엄마의 입장에서는 사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딸에게 의지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밖에서 누구에게 이런 이야기들을 하겠는가? 딸은 내 마음을 이해해주고 또 내 편이 되어주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하소연을 하게 된다. 내 마음이 너의 마음이려니.. 하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딸이 아빠를 욕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불편해진다. 또한 딸이 갑자기 나에게도 분노를 하는 것을 보며,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이 든다.


하지만 자식의 입장에서는 재앙과도 같은 일이다. 엄마가 너무 힘들어하고, 또한 안쓰럽게 때문에 엄마의 편을 들게 되었지만 증오를 하게 되는 대상은 '아빠'인 것이다. 엄마를 도와주기 위해 아빠의 바람피는 민낯을 그대로 보게 되거나 폭행이나 폭언등 의 상황에서 엄마가 느끼는 감정을 똑같이 느끼게 된다. 결과적으로는 아빠를 증오하게 되었는데 엄마가 아빠와 용서하고 다시 결합하려는 생각을 한다는 경우에는 배신감까지 든다. 이런 감정은 부모의 다툼이 아무런 원인을 제공하지 않은 자식이 끼어들었기 때문에 발생되는 일이다.


이혼변호사로서, 나는 가급적 이혼 과정을 자식과 함께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혼 과정은 차라리 친구와 함께 하는 것이 더 낫다. 자식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친구가 아니다. 아무리 잘난 자식이어도 부모에게 보호받고 싶은 욕망을 가진다. 그런데 이런 과정은 자식을 보호하기 보다 자식에게 보호받고 싶어하는 것이 아닐까?


이혼을 할 결심과 증거가 준비가 되었다면, 그때는 이혼변호사에게 사건을 맡기면서 답답하고 힘들때 이혼변호사에게 의지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감히 조언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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