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주 변호사
오래간만에 생각나는 여행이야기.
과거와 같이 모든 것을 훌훌 벗어던지고 긴 시간 동안 여행을 가기 어려운 때가 왔다. 아마도 한동안은 그럴 것이다. 나 스스로 선택한 길이지만, 어떤 일들에 일정한 책임을 지고 머물러야 하는 때가 온다는 것은 준비되지 않은 마음에서는 여전히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람은 자신의 생각과 모습을 잘 바꾸지 못한다. 그래서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우주를 이해하는 것과 같다. 일을 하면서 어쩔 수 없이 보게 되는 그 사람의 단면,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샘은 생각보다 맑지 못하다. 반짝이지도 않는다. 긴 시간 동안 한곳에 머무르는 것은 혼탁한 세계에 젖어드는 것과 같았다.
그래서 나에게 여행이란 한 시대를 끝내고 다른 시대로 넘어가기 위해 건너기 위한 다리에 가까웠다. 말하자면, 이미 닳아버린 나의 마음을 비우고 안식에 이르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루마니아에 갔을 때의 일이다.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는 내가 다녔던 그 어떤 나라보다 위험한 분위기가 있었다. 그때 나는 이스탄불에서 불가리아 벨리코트루노보를 거쳐 루마니아로 들어갔다. 잠깐 있으려고 한 나라였지만(당시에 나는 베를린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나라는 나라마다 특유한 인상이 있다. 나는 늘 나라가 처음 주는 이 분위기, 느낌이 사람이 주는 인상과 무척 비슷하다고 느낀다. 나에게 맞는 사람이라는 것이 존재하듯이.
루마니아는 나에게 건조한 느낌의 곳으로 기억된다. 나는 오전부터 정처 없이 길을 걷다가 거리에 있는 한 카페에 들어갔다. 늘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걷다 보니 쉬이 지치기 때문이다. 들어간 카페는 테이블이 3개 정도 있는 작은 규모였고, 손님이 전혀 없었다. 한낮의 부쿠레슈티에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낯선 여행지이다 보니(또는 위험한 여행지라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관광객도 많지 않았다. 나는 카페에 앉아 멍하니 밖을 쳐다보았다. 그렇게 배가 고픈 것은 아니었지만 라자냐와 커피를 시켰다.
음식을 기다리면서 가지고 다니던 노트를 펼치고 글을 썼다. 단지 시간을 때우며 쓰는 글이었으므로 내용은 없었다. 두서없는 글이었다. 마침 나온 뜨거운 커피는 내 식도를 타고 위장을 뜨겁게 돌다 사라졌다. 그리고 방금 오븐에서 구워진 라자냐는 적당히 맛있었다. 늘 느낀다. 라자냐는 어디에서 시켜도 맛이 한결같다고. kfc의 프라이드치킨처럼 한 공장에서 나오는 것과 같은 똑같은 맛이다.
그렇게 나는 한낮의 시간을 보냈다. 핸드폰은 물론 한국과 연결을 하지 않아 와이파이가 잡히는 경우에만 인터넷과 연결이 되었다. 나에게 핸드폰은 사실상 gps로 길을 찾을 때 쓰는 용도였다. 그 누구와도 연결되어 있지 않는 시간이었다. 아주 오랜 기간 동안 ㅡ 세계와 동떨어진 기분이 든다. 내가 이곳에 있는지 그 누가 알까, 만약 내가 여기서 우연한 죽음을 맞이한다면 그 누구도 나를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고요한 사라짐이다.
나는 때때로 이렇게 공간적으로 완전한 혼자에 이르러야 한다. 겨울로 가는 길목에서, 어떤 것에도 연결되지 않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 시간은 죽음과 분명 맞닿아 있다. 나는 이렇게 연(緣)이 끊어져야 혼탁한 것들을 버릴 수 있다. 시간이 걸릴지라도 완전히 비울 수 있다.
그때를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자유롭고 여유로웠던 때. 무조건 한없이 고독했던 때.
사실상 그때와 다른 사람으로 보이는 지금의 이 세계는 그 혼탁함을 씻어낼 방편으로 더 이상 여행을 택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괜찮다. 나는 그때와 같이 속수무책으로 혼탁한 세계에 물들지 않으니. 나는 이제 그곳에 머물지 않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