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주 변호사
올해의 여름은 무척 길다고 느껴진다. 모든 것을 녹여버릴 듯한 뜨거운 온도에 산책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여름의 때가 저만치 흘러갔다. 며칠 전부터 잔기침이 시작되었다. 몇 년간 몸이 아플 일이 없었는데 갑자기 한여름의 감기가 찾아왔나 보다.
잔기침은 시간이 지날수록 심해졌다. 특히 밤이 오면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기침이 나서 자다 깨기를 반복했다. 원래라면 약을 도통 먹지 않는 나지만, 다음 주에 있을 sbs 방송 촬영(다음 주에는 2번의 녹화방송이 예정되어 있다) 때문에라도 최소한 이번 주까지는 목소리가 돌아와야 했다.
생각해 보니 늘 그렇지만 8월에도 일이 많았다. 재판도 많았지만 신경 쓸 일 투성이었다. 그 와중에 내가 생각하고 마음먹거나 변화한 것들이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시간을 들여 천천히 생각해 보기로 했다. 내가 하는 일이라는 것이 매 순간 결정을 하는 것이 대부분인데(나는 하루 종일 ' 이거 어떻게 하면 되죠? 변호사님, ' , ' 변호사님 결정을 내려주세요. '라는 말을 수십 번씩 듣는다), 내 나름의 결정을 하려면 당연히 마음이 맑아야 한다. 흐리고 혼탁한 마음에서는 제대로 된 결정을 할 수 없고, 잘못된 결정은 큰 책임을 동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밤이 되었다. 티 없이 깨끗한 남색의 하늘, 어스름한 가로등 불빛 뒤로 키 큰 나무들이 숲을 이루며 보인다. 이름을 알 수 없는 날벌레들이 쉴 새 없이 울고 있다. 이제는 더위도 가고 밤이 오면 선선한 느낌마저 든다. 몸이 아픈 가운데 이 산책길을 걸으면, 구름에 둥둥 뜬 기분이 든다. 아마 약 안에는 사람을 몽롱하게 만드는 성분이 있는 것 같다. 마치 술에 취한 것처럼 ㅡ 하지만 술에 취한 느낌과는 무엇인가 조금 다르다. 좀 더 본격적으로 압도적인 성분에 의한 피곤함이 몰려온다.
지난주에 있었던 힘들었던 미팅이 생각난다. 최근에는 필요한 일 외에는 마음을 써야 하는 일을 만들고 싶지 않은데 그렇게 마음을 잡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의 극단적인 이기심을 눈으로 계속 확인하는 일은 역시 유쾌하지는 않다.
필요한 공간과 필요한 사람들 외에 곁을 두지 않는 것.
그 공간에서조차 사라지는 것.
나에게 현재, 무엇이 필요한지 생각해 보았다. 최근에는 그런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하고 있는 것이다. 약에 취해 밤길을 걸으면서 생각을 되감는다. 그리고 나의 심연(深淵)을 들여다본다. 그 안에는 필요한 것이 없다. 오로지 완전하게 다듬어지고 있는 빛이 숨겨져 있다. 아직 그 빛은 온전한 나의 것이 아니다. 나는 빛을 세심하게 다듬는 일을 한다.
그리고 그 빛은 더 이상 그 누구에게도 공유하지 않는다.
흙더미 같은 어둠 속에서 고요함을 찾을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