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나도, 겨울의 세계로 가겠어.
' 너의 실체가 나에게 왔으면 좋겠어. '
물론 그것은 나의 욕심이라고 생각하지만. 너는 덧붙이듯이 말한다. 그리고 너는 옅은 한숨을 내쉬고 조금 망설이다가 나의 눈을 바라본다.
' 나의 마음은 그렇지만.. 그렇더라도 너는 자유롭게 선택해야 해. '
어김없이 더운 여름, 하늘은 이글거리면서 타오른다. 온몸이 오그라들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우리는 조금 시원한 곳을 찾아가기로 했다. 하지만 그늘로 보이는 공간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시원한 나무 아래서 편하게 누워있었던 그 어느 여름날의 때가 떠오른다. 그때도 땅이 이글거리면서 타올랐었다. 문득 이 더위와 여름이 싫다는 생각을 한다. 여름은 모든 것을 확장되고 팽창되게 한다. 사실로 말하자면 봄도 싫다. 봄은 잠시 따뜻한 기운을 주지만 그 시간은 너무나도 빨리 지나가버리니까.
' 겨울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
' 그래. '
아마, 내 실체는 겨울에 있을 거야. 나는 이 사실을 소리 내어 말하지 않는다. 겨울로 가는 길목에서, 너에게 정확한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단어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눈을 감고 겨울의 이미지를 떠올려본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더운 여름은 겨울을 연상하기에 딱 좋은 느낌이 든다.
겉으로 보이기에 나는 매우 '옅은' 벽을 가지고 있기에, 나로서는 사람들의 내면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기회가 타인들보다 한결 많았던 것 같아. 말하자면, 나는 꽤 솔직한 편이고 마음도 잘 보이는 그런 유형의 사람인 거지. 나약한 사람은(실제로는 나약한 사람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타인의 벽을 쉽게 허물 수 있고 당연히 그 사람의 나약한 면도 볼 수 있게 돼. 그리고 상대의 나약함은 때때로 물밀듯이 내 마음으로 밀려들어오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각기 고유한 성벽이 있어서 타인이 그 내부로 들어가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야. 그 마음을 흔드는 것도. 어떤 이들은 스스로가 흔들리는 것을 원하지 않아. 내부의 성벽을 아예 봉인해서 그 누구에게도 공유하려고 들지 않지. 마치 한 겨울에 꽁꽁 얼려버린 고드름처럼. 그들은 겨울의 세계에서 나오지 않는 거야. 그 무엇도 필요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 그렇다면 너는 어떤데? '
너의 질문은 명확하게 내가 향하는 길을 묻고 있다. 나는 넌지시 한 방향을 바라본다.
' 나는 빙글빙글 도는 이 세계에 지쳤어. 너도 알다시피. 이곳은 길게 봐서는 여행지의 오랜 연장선이고, 나는 언제든 다른 여행지로 향해갈 수 있지. 게다가 나는 이 세계에서 꼭 지켜야 할 것이 남아있지도 않아. 빙글빙글 도는, 서성일 수밖에 없는 곳에서 나의 실체를 남겨두며 마음을 쓰는 것은 무척 진이 빠지는 일이야. 그래서 나는 '그림자 분리 작업'을 하기로 마음먹었어. '
그리고 나는 겨울을 향해 간다. 그곳은 여름이 없다. 여름을 기다리는 봄도 오지 않는다. 내부의 성벽을 봉인하여 공유하지 않는 얼려버린 고드름처럼 겨울의 세계에 머물 뿐이다. 마음을 쓸 필요가 없는 한겨울에 있다. 겨울의 세계를 향해가는 막다른 길, 나는 많은 세계를 거쳐온다. 실낱같은 희망을 부여잡고 필요한 모든 것들을 거쳐간다.
' 그렇다면, 나도 겨울의 세계로 가겠어. '
그 순간 놀랍게도 너는 그렇게 말한다. 나의 마음을 읽은 듯이. 순간 나의 마음을 나도 모르는 사이 입 밖으로 소리내어 말한 것인가,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물론 그렇지 않았다. 나는 계속 입을 다물고 겨울의 정경을 떠올리고 있었을 뿐이다.
계속하여 기억을 되감는다. 나는 오래전 겨울에서 왔고, 한동안 이 공간(여행의 연장선)에 머물렀다. 마음을 쓰고 기력을 소진했다. 그림자를 분리하여 때가 될 때까지 이곳에 남겨두고 실체는 다시 겨울로 돌아간다.
마음은 봉인(封印)한다. 하지만 동시에 해제(解除)될 것이다. 그곳 겨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