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현주 변호사 Sep 16. 2024

자전거를 샀다.

정현주 변호사


10년만에 자전거를 샀다. 한때는 자전거를 분신과도 같이 여기며 어디를 가든 함께 했던 적이 있었다. 오래전, 내가 6개월간 머물렀던 케언즈(cains)는 집과 카페, 학교가 모두 몇 킬로씩 떨어져 있었다. 어디를 가든 개간이 되지 않은 황폐한 황무지 길을 건너가야 했고 한국과 달리 사람들이 거주하는 모든 길목은 낮은 평지로 되어 차가 없는 이들은 자전거를 타기 좋았다. 그래서인지 자전거 도로가 매우 잘 발달되어 있었다.


낮과 밤, 나는 늘 자전거를 타고 일을 하고 있던 카페로 향하였는데 오고 가는 길에 종종 강렬한 소나기가 왔다. 그곳은 겨울이 없는 곳으로 사시사철 여름만 있는 열대 기후였다. 이처럼 자전거를 타는 중에 비가 오면 당황하지 않고 비를 그대로 맞는다. 그러다 보면 갑자기 해가 떠오르고 비는 모두 말라 있었다. 케언즈에서 이런 일은 수도 없이 자주 일어나기에, 빨래도 그대로 널어놓는 경우가 많았다.


카페에서 수 킬로 떨어진 학교도 늘 자전거로 이동하였다. 매일같이 하루에 두 시간 남짓 자전거를 매일 타다 보면 복잡한 마음도 생각도 어느덧 정리가 된다.  황무지를 가로지르는 사이, 종종 하늘에는 내 키만 한 거대한 검은 새가 유유히 날아오르며 괴이한 울음소리를 내기도 했다. 어디에서부터 왔는지 알 수 없는 박쥐 때들도 보였다. 언젠가는 이 새가 내 머리 위로 떨어지거나 나를 공격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해 더더욱 페달에 힘을 주었다.  


생각해 보면 지금과는 무척 다른 삶이다. 하지만 그 시간의 기억들은 필요한 지점들이 되어 나의 시간 속에 켠켠히 쌓여 있다. 마치 낡은 서랍 창고처럼. 언젠가 여유가 생기면 그런 많은 것들을 글로 옮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머물고 있는 이곳은 그때의 분위기와 조금 닮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서로를 아무렇지도 않게 스쳐 지나간다. 밖은 번화가로 신호등 불빛이 바뀔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지지만, 그 안 어딘가에는 고즈넉한 분위기가 있다. 여러 차례 집을 바꿔오던 나에게는 가장 낯선 풍경이다.


오래간만에 자전거를 타며 그리운 옛 생각을 했다.


가을을 잊으며 폭염이 계속되던 날들, 조금은 선선해진 밤이 되자 밤 산책을 나섰다. 여전히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많은 이들과 이 마을과 같은 풍경은 많은 것들을 낯설게 한다.


갑자기 주어진 며칠 간의 낯선 휴가,

원래라면 여행을 떠났음이 옳았겠지만 일로서 지친 마음을 오래도록 펼쳐두고 깊고 긴 쉼. 을 향해간다.


끊임없이 몰려오는 잠을 거스르기 힘들다.


매거진의 이전글 sbs비즈 '내보험궁금할땐' 정현주변호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