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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주 변호사 Sep 24. 2024

불행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정현주 변호사


최근 법률사무소 봄은 내가 직접 상담 예약을 잡는 경우는 무척 드물다. 상담을 원하는 의뢰인들은 대부분의 경우 사무실로 연락을 하여 직원에게 어떤 종류의 상담을 받을 것인지를 말하고, 직원들이 나의 스케줄을 확인한 후 적당한 시간에 상담을 잡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봄 사무실로 출근할 때까지 나는 어떤 종류의 상담이 몇 시에 잡혔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할 때도 많다. 


오늘은 12시에 이혼 상담이 잡혔다는 것을 조금 늦게 알았다. 지금까지 셀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이혼 상담을 했지만 시간이 되어 반 투명의 유리문을 열고 들어갈 때는 늘 어느 정도 긴장을 한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 아직은 확실히 젊고 충분히 아름다운 그녀는 지금까지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결혼 생활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 나는 그 사람을 만나 함께 있으면서 몸도 마음도 많이 망가졌어요. ' 


그녀의 대체적인 이야기는 이렇다. 


짧은 연애를 마치고 괜찮은 사람이라는 나름의 판단으로 결혼을 했다. 하지만 이후의 결혼 생활은 생각만큼 좋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가족에게 너무 많은 희생과 헌신을 했다. 그녀는 미련하리 마치 남편과 시어머니가 원하는 것들을 다 했다. 그들은 나를 존중하거나 배려한 적이 없었는데. 이런저런 일들이 많이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을 어떻게 여기서 다 말할 수 있을까. 최근 들어서는 상황이 더 안 좋아지기만 했고, 역시 이혼만이 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이렇게 인생을 실패한 채로(그녀는 이혼이란 결정을 하는 것이 인생에 대한 실패로 느껴졌다), 친정 부모님을 만나러 가기 어려웠다. 또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다. 부모님에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사실은 남편과 시부모님에게 무시당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할 때마다 부모님은 그녀에게 ' 나에게 힘든 이야기를 하지 말라. '라며 이야기를 더 듣기를 거부했던 것이다. 그녀에게는 부모님에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과 번듯한 자식이 되어 기대고 싶지 않은 마음 두 가지가 함께 공존했다. 



' 이혼을 하기로 마음을 굳게 먹으셨나요? ' 


나는 물었다. 


' 네, 그게 맞는 것 같아서요.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몰라서. 변호사님이 보시기엔, 제가 한심하죠..? ' 


오랜 기간을 우울하고 괴로운 공간에 있다 보면 힘을 잃게 된다. 어떤 공간을 빠져나오는 것, 한 사람과 이별을 결심하고 강행한다는 것은 사실 대단한 힘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그렇게 힘이 빠져버린 사람에게 ' 너 왜 그러고 있어? '라고 다그치면 어떻게 될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소위 '당하고 살면서 우울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한다. 나 같으면 당장 헤어질 텐데. 바로 빠져나올 텐데 왜 거기에 있을까.라는 말을 한다. 하지만 실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내가 선택한 사람과 이별을 하는 것. 내가 선택한 공간에서 과감하게 빠져나가는 것은 대단한 힘이 필요하고 전제로 강한 '자기 긍정'이 있어야 한다. 


' 어쩌면 ** 씨에게 유일한 해결책은 오로지 그곳에서 이별하고 빠져나오는 일일 거예요. 막상 헤어지면, 그곳에서 빠져나오면 우려하는 많은 다른 일들은 자연스럽게 괜찮아져 있을 거거든요. 그것은 제가 확신할 수 있어요. 우리는 우리가 당사자가 아닌 경우, 나의 친구나 지인이 누군가를 만나 상태가 무척 나빠지거나 또는 무척 좋아하는 것을 느낄 수 있죠? 당사자는 잘 모르지만요. 이처럼 내가 너무 불행하다면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사람과 이별하는 것만으로도 삶이 무척 괜찮아져요. 이유가 무엇이 중요하겠어요? 부부 싸움을 하는 부부들은 서로 ' 너를 만나서 내가 망가졌고, 내 인생이 불행해졌어. '라고 주장하며 이유를 상대방에게 돌리려고 하죠.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누구의 탓이든, '현재 내가 불행하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고, 또 행복까지는 나중에 바라더라도 이 불행에서 빠져나오는 것.에 집중을 하는 것이 가장 나에게 필요한 일이에요. ' 


그리고 나는 말했다. 


' 하지만 지금 **씨가 빠져나오기 힘들다고 생각해도 자책하지 말아요. 타인들은 아마 이해를 못 할 거예요. 어쩌면 한심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죠. 왜 그런 취급을 받으면서 계속 그곳에 있는지. 하지만 빠져나올 수 있는 힘을 낸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거든요. 그리고 **씨가 현재 힘이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요. 그러니까 자책하지 말아요. '


' 그럼... 어떻게 하면 될까요? ' 


' 결국 내가 나답게 살기 위해서는 나에게 긍정적인 힘을 주는 타인이 필요한 거예요. 그것이 친구이든 부모님이든 누구이든 간에. 사람은 혼자만의 힘으로 나아갈 힘을 내는 것에는 절대적인 한계가 있어요. 그래서 나에게 좋은 빛을 주는 사람을 가까이하고, 또 날 불행하게 만드는 사람과 멀리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도움이 되어요. 그리고 **씨는 현재 너무 지쳐있기 때문에, 힘을 비축할 필요가 있어요. 자, 이제 결론은 정해졌죠. ' 


결론은 정해졌다. 그녀는 무조건 남편과 헤어져야 한다(그것의 형태나 방식은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남편은 그녀를 불행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 이유가 그녀의 탓인지 남편의 탓인지도 중요하지 않다. 그 이유를 고칠 수 없고 한번 설정된 관계는 앞으로도 계속 비슷하게 갈 것이 자명하다. 


나의 행복을 위하여 나를 불행하게 하는 사람을 멀리하자. 그것이 가장 가까운 가족이더라도 예외는 없다. 하지만 현재 내가 바로 이 관계를 끊어내지 못하고 있다고 해도 자책할 필요가 없다. 나는 현재 힘이 빠져있는 상태니까. 사람들에게 이해를 받을 필요가 무엇이 있는가?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될까? 혼자 있는 것으로 해결이 될까? 가장 좋은 방법은 나에게 좋은 사람들을 가까이하며 힘을 비축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 내 주위에는 좋은 사람들이 없어. '라고 말하지만, 내가 나아지려는 마음을 먹고 있는 한 주위의 좋은 사람들은 반드시 한 두 명 있기 마련이다. 그녀는 우울하다고 하면서도 결국 변호사 상담을 받으러 나에게 찾아오지 않았는가? 한편으로는 그녀 스스로 나아질 방법을 지금 역시 찾고 있는 것이다. 


내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설정해두면, 그 이후에는 때를 기다리면 된다. 그리고 그때가 오면 비로소 나를 불행하는 것들에게서 작별을 고하고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된다. 


당신은 물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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