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가을 녘의 호수 길을 뒤로하고 '진짜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야기는 굉장히 오랫동안 지속되었고 나의 마음의 빛은 더욱 밝아져갔다. 이 이야기는 생각보다 어려운 내용을 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글의 내용을 최대한 각색하거나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기록하기로 마음먹었다. 어떤 이들에게는 분명히 도움이 될 글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는 내가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까닭이기도 하다. 다음은 그 이야기의 일부이다.
1. '본질'을 알게 되면 더 이상 방황하지 않아?
본질을 알게 되면 더 이상 방황을 하지는 않는 것 같아. 다만 삶은 절대로 고정되어 있지 않고 계속해서 유유히 흐르지. 그러니까 우리가 일단 '진리'를 찾았더라도 우리는 그 '진리'를 향해 계속해서 나아가는 거지. 그렇게 세월은 흐르고 우리는 나이를 먹고 삶은 계속 변하게 돼. 다만 '진리'를 찾으면 이전과 같이 방황을 하지는 않아.
이를테면 과거의 나는 무엇인가를 찾으면서 꽤 오랫동안을 방황하였어. 많은 사람들이 나의 방황함을 보았고 이는 나에게는 여러 가지로 약점이 되었어. 하지만 이제 방황은 끝이 났고 나는 분명해져가고 있지. 그렇더라도 삶은 계속 고정됨이 없이 더 나아가게 될 거야.
2. 그렇다면 너의 방황의 원인은 무엇이었다고 생각해?
중요한 질문이야. 나의 방황의 원인은 '나 스스로를 잘 몰라서' 시작되었어.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삶을 사는 것이 행복한 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 잘 알지 못했지. 우리는 대부분 스스로의 삶이 아닌 타인의 삶을 살아. 이를테면,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하는 일들이 많지. 삶의 대부분은 좋은 학교, 좋은 직업을 얻어 많은 돈을 벌고 사회적 성취를 얻기 위해 이루어져.
그런데 내가 정말로 그것들을 원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어쩌면 나는 나 스스로에게 집중하기 보다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해 또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결국 나 스스로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몰라서 타인과의 삶 속에 존재하는 나를 지키기 위해 이런 일들에 집중하는 것이 아닐까?
'나 스스로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생각해 봤을까? 나의 삶이 타인과의 삶 속에 존재하는 나가 아니라 오롯이 나로서 존재할 수 있다면 그때는 비로소 방황은 끝이 날 거야. 그때는 내가 원하는 것이 분명해지니까 말이야.
3. 왜 우리는 진짜인 삶을 살지 못하지?
우선 스스로를 알 수 있으려면 그것에 대해 볼 수 있는 선명한 눈이 필요하지.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것에 관심이 없거나 잘 알려고 들지 않아. 나는 사람은 누구나 고유한 선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 그 선은 태어나면서부터 고정되어 있고 이를 넘어서기는 힘들어. 어쩌면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진실이란, 실제로는 알지 못하는 것이 그에게 가장 좋은 일일지도 모르지.
다시 말해 우리 모두가 굳이 진짜인 삶을 살 필요는 없다는 거야. 진짜인 삶은 자기 스스로가 그것을 진지하게 원할 때 또 감당할 수 있고 나 스스로를 넘어서고 싶을 때 비로소 가능한 일이란 생각이 들어. 또한 자신의 소명을 자각했더라도 완전히 진리로 다가가는 것은 한없이 어려운 일이기도 하지.
그리고 내가 진짜인 삶을 살 수 있으려면 타인의 구원이 필요해. 이건 무척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어. 대부분의 사람은 나 스스로 오롯이 혼자 넘어갈 수 있는 한계가 있어. 내가 진흙 속에 묻혀있는 진주더라도 진흙 속에 남아 있는 한 밝게 빛이 날 수 없는 것처럼 누군가 나를 알아보는 타인이 필요하고, 나를 꺼내 올릴 타인의 구원이 필요해.
4. 어떤 삶을 살아야 행복할 수 있을까?
그건 사람마다 달라. 무조건 진짜인 삶을 알아야 행복하다고 단언할 수 없어. 내가 생각하는 행복이란 우선적으로 나 스스로의 본질성을 자각하는 거야. 사람의 고유한 모습은 모두 다 다르므로 행복에 이르는 길도 모두 다 다를 수밖에 없지.
그렇게 나의 본질을 자각하고 나면 그 이후에는 불행한 일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쉽게 행복에 이르는 길이 되겠지. 행복에 이르는 방법을 찾는 것은 어려워도 불행을 피하는 길은 생각보다 쉬우니까 말이야.
우리는 각자 다른 길에서 자신의 진정성을 깨닫고 스스로의 본질을 자각하며 고유한 삶의 진리를 찾아 나아가고 있지. 나는 그들을 구도자(求道者)라고 불러. 나의 구도는 진정한 자유에서부터 시작되었지. 헤세의 말처럼 어디에서든 고향처럼 집착해서는 안 되며, 언제든 이 공간에서 저 공간으로 떠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이야.
나의 잘못은 나 스스로를 잘 몰랐던 것에 있었어. 하지만 나는 이제 나를 알게 되었어. 나를 알아야 비로소 나를 지킬 수 있게 되겠지.
5. 그렇다면 천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 천재가 진짜인 것일까?
천재들은 주위의 사람들에게 강한 영감을 주지. 그들은 이미 극단적인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이기 때문에 개인적인 삶으로만 보자면 이미 불행하다고 말할 수 있어. 천재의 성공은 당연하지만 그들 주위에서는 그 성공과 결실로 인한 인간들이 대부분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야. 이미 그 세계에서 재능만으로 판단되는 것 외에 나 스스로를 알기는 어려울 거야.
극단적인 재능을 가진 자가 그 세계에서 1등을 하는 것은 어렵지 않아. 하지만 그 1등은 오래가지 않아 더 뛰어난 다른 이로 인해 무너지게 되지. 시간이 조금 걸릴 수는 있지만 무조건 이런 일은 일어나게 되어 있어. 그렇게 1등에서 무너져 내린 뛰어난 자가 다시 1등으로 올라설 수 있을까? 이 일은 무척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해. 모든 업계에서, 재능이 있다면 나는 한 번쯤 성공을 맛볼 수 있지만 언제든 무너질 수 있지. 그렇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그 상황을 외면하게 될 거야. 오히려 큰 충격을 받아 그 업계를 영영 떠나버릴 수도 있지. 회피하지 않고 왜 무너졌는지 바라보고 나보다 뛰어난 자들을 인정하는 것, 이런 현상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자질이 있어.
재능과 진짜는 다른 영역이야. 재능이 발현되는 것은 선천적인 영역에 가깝지만 진짜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의 과오를 제대로 바라보고 이를 받아들이는 과정이 필요하지. 편한 곳으로 물러서거나 뒤돌아가지 않는 거야.
그리고 그 이후 나의 정신에 깃든 무한한 가능성을 다시 한번 믿어볼 것, 그렇게 정진할 것. 그런 시간들을 지나다 보면 다시 1등을 탈환하지 않더라도(그것은 이미 의미가 없을 수 있으며) 또는 다른 길을 가더라도 나는 진짜의 삶을 찾아가는 구도자가 되어있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