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사무소 봄 정현주 변호사
어린 아이를 데리고 힘겹게 찾아온 의뢰인이 소송을 위임하고 나서 며칠 만에 다시 나를 찾아왔다. 상담 중에 느껴진 그녀의 고단함이 아른거려서 이른 아침부터 사무실에서 만나기로 했다.
소송을 위임하기 전 긴 시간 동안의 상담을 통해 나는 물론 그녀의 상황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나를 찾아온 이유는 소송과 관련된 의문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녀는 나를 만나면서 밝게 웃어 보였다. 그리고 나서 앞으로 진행될 소송 절차에 대한 몇 가지의 질문을 하다가 갑자기 할 말을 잃은 듯이 한참을 침묵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찰나의 시간인 듯 했지만 긴 호흡을 할 만큼은 충분한 시간이 지나고, 그녀는 망설이듯 말했다.
"변호사님, 저는 요즘 너무 힘들어 정신과에서 상담을 받고 있어요.."
"네. 괜찮아요. 잘 하고 계신 거에요. "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사실은 너무 괴로워요.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변호사님.."
그녀의 모습은 무척 고단해보였다. 이 고단함 속에서 많은 밤들이 거쳐갔을 것이다.
음... 나는 뭐라고 말해줘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상담 중에 의뢰인이 우는 경우는 생각보다 흔한 일이다. 그러나 그녀에게 어떤 위로를 해줘야 할까?
나는 사실 삶과 죽음이 크게 멀리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죽을만큼 살고 싶고, 또 간절히 살고 싶은 만큼 죽고 싶은 것이 당연한 것이다. 애매하고 모호한 것들은 그대로 남아있지만 극단은 극단과 맞닿아 있는 것이 아니던가?
나는 자연스럽게, 내가 가장 힘들었던 시절들을 떠 올려 봤다. 왜냐하면 그녀에게 가장 좋은 말을 건네기 위해서는 나의 어둠을 생각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지금 가장 힘든 고통의 순간들을 지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니 말이다.
그 누구도 나를 이해해 줄 수 없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아마도 나의 괴로움은 오로지 나 만이 짊어지고 가야 할 짐과도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사실이 맞다고 하더라도 사람은 위로가 필요하다. 살아나가기 위해서는 어떤 의미가 필요하니까 말이다.
나를 위로해 주던 것들은 찾아보면 꽤 여러가지가 있었던 것 같다. 언젠가 헤르만 헤세의 책들을 보다가 '행복이 영원하지 않듯이, 고통 또한 영원하지 않다.' 라는 말을 보면서 큰 위로를 받았다. 나는 그 이후 삶이 물처럼 흘러간다는 생각을 했다. 좋은 시기가 있고 또 나쁜 시기가 있다. 나에게 가장 나쁜 시기가 지금이더라도 분명히 지나간다.
"지금은 힘든 시기에요. 내가 정말 고통스러운 때는.... 어쩔 수 없어요. 하지만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시간들이 분명히 지나갈 것이라는 거에요. 출산의 고통과 비슷해요. 고통이 오는 것은 멈출 수 없어요. 그 순간 그냥 견디는 수 밖에는..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지만 언젠가 끝이 나는 것은 분명해요. 고통은 어느 순간 갑자기 끝나요. 서서히 괜찮아지는 것이 아니라. "
그리고 나는 연이어 말했다.
"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이제 괜찮구나, 라는 것을 문득 알게 되는 순간이 올 것에요. 지금은 내가 아이에게도 부모님에게도 못할 짓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가장 다쳐 있는 것은 나에요. 무엇보다 나 스스로 위로하고 아껴줘야해요. 그래서 조금 이기적이더라도 나를 위해 여행도 가고, 나를 위해 하고 싶은 일들도 하고.. 이렇게 내가 나를 아끼는 시간들이 지나야 비로소 나의 주변들을 볼 수도 있을 거에요. "
나의 말들이 얼마나 와 닿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녀는 지금 이 순간 내가 자신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이런 말들을 건넨 것이 아닐까란 생각을 했다.
어둠을 거쳐야 빛이 있음이 소중하다. 고통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고통은 분명 성장통에 가깝다.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그 순간은 분명히 지나간다. 그리고 나는 그 전보다 더 단단해져 있음을 알게 된다. 뭐 성장을 꼭 해야 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삶은 이처럼 계속 흘러간다. 흐르는 물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