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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주 변호사 Oct 04. 2024

그것은 분명, 꿈속의 일들이 아니다.

feat. 유리알 유희, 데시뇨리


얼마 남지 않은 딸과의 로마 여행을 준비하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스위치가 꺼진 듯 고요한 잠이었다. 꿈속에서는 내가 피아니스트의 손을 가진 사람이 되어 있었는데, 손이 그야말로 자유롭게 움직였다. 사실은 수도 없는 연습을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 경지였는데 꿈속에서의 나는 그 어떤 것도 가능했다.


그리고 다시 새벽에 눈을 떴다. 어쩔 수 없는 새벽 3시다. 다행히 내일은 나의 유일한 휴일이고, 조금 늦게 일어나도 되는 날이라 거실로 나와 물을 한 잔 마신 다음 커피를 마시기 위해 물을 끓인다. 늘 그렇듯 이디야 아메리카노 믹스를 타려다가 이상하게 허기가 느껴져 믹스 커피가 없는가 살펴보던 중 코코아를 발견한다. 나는 커피와 코코아를 함께 섞고 물을 가득 따른다.


문득 손을 보니 잔뜩 굳어있다. 꿈속에서의 자유와는 한참 거리가 멀다. 사실은 어쩌다 이 시간에 눈을 뜨더라도 언제든 다시 잠이 들려고 시도를 할 수도 있긴 하지만 오늘은 어쩐지 그러고 싶지 않다.


그러고 보니 나는 오래전부터 상당히 예민한 아이였다. 잘은 몰랐지만 그랬던 것 같다. 한때는 친구들을 잔뜩 사귀고 싶어 타인에게 관심을 보이다가도, 어떤 때는 그 누구와도 대화를 하는 것을 단절하고 동굴 속에 들어가는 적도 있었다. 어릴 적에는 만나는 친구들마다 세상의 전부를 이루지만, 시간이 갈수록 나의 세계를 가치롭게 하는 특정한 사람을 만나는 것이 기적에 가까울 만큼 무척 힘들어지는 법이다.


어떻게 보면 그것은 집을 짓는 행위와 비견된다. 세상의 가치는 내가 만나는 사람들로 매겨지고 시간이 갈수록 그 세계는 나만의 세계로 대체된다. 다시 말해, 나의 세계는 건축가의 손을 거친 것처럼 단단하고 견고한 성을 쌓는 것이다. 그렇게 지어지는 집은 오로지 나만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세상에 나를 이해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외롭고 고독한 시간들이 지나간다.


나이를 먹을수록 내가 살고 있는 성에 누군가를 초대하는 것은 어려워진다. 물론 그것은 타인 또한 마찬가지지만 우리는 각자의 성을 정확하게 잘 볼 수는 없다. 그렇게 수없이 많은 시간들이 지나가고 운이 좋으면 살면서 나의 성을 정확하게 찾는 사람들을 발견할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그 사람들과 얼마나 한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는지는 내가 결정할 일은 아니다. 그것은 인연의 흐름, 정확하게 말하면 운명에 따라 결정된다.


(코코아를 넣은) 커피를 마시며 거실에 앉아 있던 나는 언젠가 찾아갔던 루마니아 부쿠레슈티로 다시 날아간다. 그곳은 잿빛 도시로, 그 당시에 나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빈털터리였다. 도시에 도착했던 것은 기차역이었다. 하지만 시간을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해 새벽녘에 도착했고 루마니아 돈을 많이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동유럽을 여행하던 때에는 역 근처에 패스트푸드에 자주 갔는데, 충전도 할 수 있는 맥도날드를 가장 선호했다.


어떤 도시는 그림처럼 색깔로 남아있다. 따뜻한 색과 차가운 색, 그리고 아무런 특징이 없는 무색으로 남겨져 있다.


루마니아는 두 번 가고 싶지는 않은 잿빛의 나라였지만 머릿속 어딘가에 남겨져 있는 것처럼 종종 떠오른다. 부쿠레슈티 어딘가에서 마셨던 커피, 그리고 산책길, 길을 걷다 아무 가게에나 들어가서 시켰던 라자냐와 디저트도 떠오른다. 어쩌면 나도 모르는 사이 그 도시 어딘가에 나의 빛도 남겨놓고 왔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부쿠레슈티를 잿빛으로 기억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다시 눈을 감고 나는 과거의 어느 때를 기억한다. 대부분은 이곳의 기억이 아니지만 역시 새벽녘의 망상에 가까운 생각들이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마음의 넘실거리던 파도는 조금씩 진정되는 것을 느낀다. 종종 현실과 이상을 구분 지을 수 없을 만큼 나는 이곳,의 무엇인가가 나를 강렬하게 붙들지 않으면 안 된다고 느낄 때가 있다. 데시뇨리*와 같이 강한 현실주의자가 필요한 시점이다. 누가 봐도 안정적이고 견고한 자신의 성을 쌓는. 그에 비해 높은 나의 벽은 그 색을 잃고 투명해지고 있으며 차츰 소멸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성이 투명해지고 우물의 벽이 얇아져 모든 것이 전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원점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 나는 더 이상 이곳에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분명 꿈속의 일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제대로 글을 써 보기로 했다.


지금으로서는 내년의 (가장 큰) 계획이다. 물론 그전에 데시뇨리처럼 현실적인 딸과 우선은 로마에 다녀와야지. 지금의 내가 아무런 기대를 하고 있지 않은 신기하지만, 로마는 그래도 지금까지 가장 가고 싶은 도시들 중 하나였다.



* 제대로 된 글을 쓰기 위하여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구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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