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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주 변호사 Oct 09. 2024

너는 고향을 찾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어?

너는 곧 고향을 찾을 거야, 분명히, 곧


오래전, 나는 흔하디 흔한 문예지에 실린 그녀의 글을 읽다가 큰 충격을 받았다. 그 글은 겉으로 봐서는 무척 평범하고 특별할 것이 없었다. 어쩌면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 이야기를 건조한 어투로 담담하게 적어 내려 간 글로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인가 알 수 없는 느낌에 이끌려 나는 그 글을 다시 한번 읽게 되었고, 또 반복하여 계속 읽어 내려갔다.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여러 권의 책을 다독(多讀)하는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마음에 이끌리는 책을 꽤 여러 번, 생각이 날 때마다 수없이 반복하여 읽는 쪽에 가깝다. 어떤 책들은 어떤 이들과 같이 다채롭게 변화한다. 늘 같은 모습으로 느껴지면서도 그의 내면은 살아 숨 쉬고 또 변화한다. 마치 변화를 위한, 아프락사스와 같은 것이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그녀의 글은 결코 대중적인 사람들에 대한 울림이 아니라는 것을. 


그녀는 '고향을 잃은 자들에 대한 위로'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선택된 사람들만 알 수 있도록 눈에 보이지 않은 투명한 가루를 뿌려서 겉으로 보이는 대중적인 이야기가 아닌, 그 내면의 특별한 이야기들을 건네주고 있었다. 그것은 선택된 자들에게만 보여주는 그녀 본연이 가지고 있는 따스함, 일종의 온기와 같은 것들이다. 일반적인 사람들이라면 결코 알 수 없는. 




' 너는 고향을 찾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어? ' 


너는 물었다. 


나는 마침 열심히 운전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최근의 나는 과거보다 더 열심히 운전을 하고 있다. 막 시작된 가을이 바로 흩어지기 전에 슬슬 산책을 해야 하는데,라고 생각하지만 늘 그렇듯이 실천은 쉽지 않다. 


문득 너의 질문은 오래전 스페인에 있었던 나로 돌아가게 했다. 그때가 언제였는지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10년 전이나 그 정도쯤, 나는 우연히 바르셀로나에 도착하여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값이 싼 호스텔에 묵고 있었다. 아무런 기대도 없이 가게 된 바르셀로나는 유럽 답지 않은 그 특유의 활기찬 느낌 덕분에 나의 마음을 평온하게 했다.  


아침에 되자, 딱히 갈 곳이 없었던 나는 호스텔의 로비에서 책을 뒤적이고 있었다. 한참을 그러고 있으려니 주인으로 보이는 50대 중반의 아주머니가 나에게 다가왔다. 


' 아니, 여기까지 와서 뭘 하고 있어? 파밀리아* 성당도 가고 구엘 공원*도 가고 그래야지. 부지런히 움직여야지. 여기에 며칠이나 있어? ' 


' 음,, 글쎄요. ' 


얼마나 머무를지 알 수 없었던 나는 멋쩍게 웃었다. 혼자 있는 것이 익숙한 나는 이런 갑작스러운 대화가 늘 어색하기만 하다. 그녀는 내가 뭔가 소심하거나 어수룩하다고 생각한 듯했다. 그녀는 나에게 아침을 먹었냐고 묻더니, 근처에 좋은 카페가 있으니 같이 가서 커피를 마시자고 제안했다. 그곳에서 파는 쿠키가 엄청 맛있다면서. 나야 뭐 크게 할 일이 없었으니 커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듣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가 데려간 카페는 호스텔과 멀지 않았다. 그곳은 중세의 성을 모티브로 만든 것과 같이 웅장한 곳으로, 가우디 양식의 영향을 받은 듯 화려했고 이국적이었다. 그녀가 주문한 커피는 깨끗한 도자기 잔에 담겨 나왔다. 꽤 달달한 맛이었다. 나는 말없이 달달한 커피와 쿠키를 먹었다. 


나의 예상대로 그녀는 커피를 마시며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오래전 마타할머니가 생각나는 듯 느릿하고 여운이 있는 목소리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이곳의 아름다운 정경과 잘 어울렸다. 하지만 나에게 놀라웠던 것은, 이 부분이다. 


' 외국에서 사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알고 있니? '


그녀는 말했다. 한국이 싫어 외국으로 도망치듯 떠나온 다음, 처음에는 그 자유로움이 좋았다고. 하지만 역시 이곳에서 나는 이방인이고, 또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니 그곳에서도 이방인이 되었다고. 그래서 지금은 고향을 잃은 기분이라고. 


' 고향을 잃은 기분은 어떠신가요, 그것은 싫은 기분일까요? ' 


나는 실례가 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물었다. 또 나는 속으로 물었다. '왜 당신은 이방인의 삶을 택하셨나요.'


' 모르겠어. 그냥 나는 나에게 주어진 삶에 익숙해져 갈 수밖에. 결국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상황에 적응을 하도록 만들어져 있지. 좋든 싫든 간에 말이야. ' 


그녀는 정말로 모르겠다는 듯 얕은 한숨을 쉬고는, 또 과거의 한 때를 회상하듯 벽을 잠시 쳐다보면서 말했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지나고, 그녀는 커피를 마시고 있는 나를 다시 쳐다보았다. 잠깐이지만 매우 진지한 눈이었다. 


' 너는 직업이 있어? '   


' 아... 네, 아직까지는 없었지만 앞으로는 생길 것 같아요. ' 


그녀의 눈을 보며, 나는 최대한 솔직하게 말했다. 그때까지의 나는 여전히 미래가 없었다. 적어도 가시적인 측면에서는. 


' 어쩌면 저도 고향을 잃은 사람일지도 몰라요. ' 


' 왜 그렇게 생각해?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가? 아니, 그렇지는 않다. 나는 아마도 그곳에서 어쩌면 꽤 성공적으로 정착을 할 것이다. 다만 어쩐지 그곳이 나의 '고향'이라고 느껴지지가 않는 것이다. 태어났다고 해서, 머무른다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그곳이 나의 고향이 될 수 없듯이. 


' 잘 모르겠어요. ' 


나는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다시 운전에 집중을 하고 있었다. 아직까지 차 사고가 난 적은 없었지만 며칠 전 당황을 하여 후진을 하다 주차장에서 차의 후면을 벽에 박은 적이 있었다. 다른 사람의 차와 부딪히지 않아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고향을 찾고 싶다는 생각을 하느냐는 너의 물음에 잠시 바르셀로나의 기억에 젖어있던 나는 그때와 같이 ' 지금은 잘 모르겠어. '라고 답했다. 


' 하지만 너는 곧 너의 고향을 찾을 거야. 분명히, 오래가지 않아. ' 


' 정말로 그럴까? ' 


응. 너는 이방인으로 줄곧 살아왔잖아. 하지만 나는 분명한 느낌이 들어. 너는 고향을 찾을 것이라고. 


너는 말한다. 


나는 눈을 감은 채, 생각했다. 


' 이제 와서 나는 고향을 찾고 싶은 건가? 아니, 그렇지는 않다. 나는 이곳에 실제하고 필요한 곳에 마음을 두었다. 나는 오롯이 나를 찾았다. 이때 한 시대는 끝이 났고 또 다른 시대가 찾아오고 있음을 느낀다. 이제 나는 믿을 수 있고 나에게 필요한 정수(精髓)의 사람들과 함께 그곳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곳에서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다만 이곳에서의 나의 존재는 사라지고 그림자만 남는다. 영원한 이방인으로서, 신념으로서, 필요한 존재로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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