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나는 변하기로 마음먹었다.
마음이 힘들수록 나를 알아주는 좋은 사람과 함께 있어야 한다.
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한다.
' 누구를 만나도 결국에는 똑같아. 남자든 여자든 같이 살면 다 같아지기 마련이야. ' 그러니까 세상에 별 여자 없고 별 남자 없다는 말이다. 오래전 나의 외할머니는 심지어 ' 여자는 어떤 남자하고도 사랑할 수 있어. '라는 말을 나에게 하신 적이 있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꽤 오랫동안 생각을 했다. 정말로 어떤 사람을 만나도 결국 결혼을 하거나 같이 살게 되면 비슷해지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왜 많은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일까?
생각해 보면 어떤 사람을 만나도 늘 비슷한 지점에서 헤어지게 된다. 또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닮았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닮았다. 하지만 비슷한 만남과 이별이 반복되는 지점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상대방의 문제보다는 '나의 문제'가 많았다.
내가 변하지 않으니 늘 비슷한 상황이 오는 것이다. 어느새 고착된 관계는 계속 굳어져가고 나의 과오를 잘 알 수 없으며 누구를 만나도 비슷한 잘못을 반복하게 된다. 굳어지고 단단한 마음, 어쩌면 나는 나의 세계에서 내 생각에 빠져 타인을 바라보고 있지는 않는가? 마음이 힘들 때 내가 하는 작은 일들은 크게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어느 날, 변하기로 마음먹었다. 나의 단단한 마음을 조금 말랑하게 만들기로 했다.
우선 마음이 힘들 때에는 좋은 사람과 함께 있기로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에게 좋지 않은 사람들과 결별을 해야 했다. 맺고 끊음이 명확하지 않고 타인의 마음에 영향을 받아왔던 나에게 '결별'은 무엇보다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왜 그렇지 않은가,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한 첫 번째 단추는 바로 '불행한 일을 피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 좋지 않은 것들과 결별하는 것만으로도 아주 많은 것들의 본질적인 부분이 바뀐다. 지금까지의 나의 외형적 삶이, 내 내면의 혼돈과 어지러움이 이내 잠잠한 파도처럼 고요해진다.
그리고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지기로 한다. 오롯이 이 시간과 세계를 거친다. 그런 시간들 속에 혼자 있으려니 나는 외로움이 잦아드는 것을 느낀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외로움과 고독은 더 이상 나를 해하지 않는다. 감정들은 그 세계에서, 그저 나와 머물며 함께 있어준다.
글로 존재하는 것들은 무형적인 세계의 것들을 유형적인 일들로 바꾸는 것으로, 사실은 본질적인 부분을 써 내려가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현상에 대한 묘사를 해야 하는지 늘 어렵기만 하다. 나는 늘 그림을 그리는 화가처럼 하얀 도화지를 노려보면서 어떠한 보이지 않는 존재의 것들을 글로 바꾸려는 시도를 한다. 이런 일들은 굉장히 어렵기만 하다.
안식에 이르기 위해 자연을 거닐어 본다. 바다는 완전한 순환성을 지닌다. 나는 많은 현상들을 보다 더 진지하게 받아들이려는 시도에서 눈을 감고 여행의 많은 공간들을 떠올린다.이러한 많은 것들이 내 지치고 단단한 마음을 말랑하게 만들어 보기로 한 시도였다.
문득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가는 붉은 화살 호의 아무도 없었던 침대칸 기차의 내가 떠오른다(이 기억은 숨겨져 있는 서랍장에 놓은 수많은 기억들 중의 빈번하게 고르게 되는 기억들 중의 하나이다). 아무래도 그때의 내가 그리운 마음이 들어서일지도 모르겠다. 하늘에서 나는 비릿한 비내음, 서늘한 바람, 아무도 없는 길목에 새겨진 저릿한 마음들. 혼자일때의 기억들은 늘 그렇게 서릿발처럼 마음에 조각조각 새겨져있다.
지난날을 떠올려보면 나의 대부분의 삶이라는 것이, 불온한 것들과 결별하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서 지친 마음을 내려놓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좋은 사람들에게 힘을 얻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의 나는 내면의 더 깊은 곳으로 달려가고 있다. 겨울의 길목에 이른 가을의 마지막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