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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주 변호사 Nov 25. 2022

변호사님이 카페 알바를 하다니?

 


 사무실의 과장님, 주임님과 함께 커피를 마시는 중에 잠시 지금껏 경험했던 아르바이트 이야기가 나왔다. 두 분은 이미 점심시간에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 경험 이야기를 하다가 편의점 알바, 레스토랑 서빙 알바 등등의 이야기들이 나왔다고 한다. 


" 어? 저도 레스토랑 알바 오래 했었어요. "

나는 갑자기 반가운 마음(?)에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네? 변호사님이 레스토랑 알바를 하셨다고요?" 주임님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 "네.. 전 카페 알바도 많이 했었는데...." 




이 이야기는 약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의 첫 아르바이트 경험은 무려 '이탈리안 레스토랑'이었다. 그곳은 피자와 파스타를 정말 잘 만드는 셰프와 매출과 직원을 관리하는 매니저와 그리고 시급으로 뛰는 아르바이트생들로 구성된 단출한 가게였다(가게 사장은 한 달에 한 번 수금을 하러 올 때만 잠시 얼굴을 비출 뿐, 평소에 마주칠 일은 없었다). 


나는 당시 19살이었다(응?). 왜 19살 미성년자가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나는 그곳에서 나름 '삶의 현장'을 배웠다. 


가장 좋았던 것은 주머니가 가난하여 그 당시 비싼 파스타를 먹을 수도 없었던 내가, 레스토랑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을 기화로 어림잡아 10가지가 넘는 (비싼) 파스타를 골고루 음미하며 맛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더욱이 종종 피자 주문이 잘못되면 남은 피자를 싸고 집에 돌아갈 수 있었다. 추후에 더 알게 된 것이지만 음식점 알바는 시급이 짠 대신에, 그 음식점에서 파는 비싼 음식들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여러 가지 테이블 매너를 배웠다. 와인잔을 흔적 없이 깨끗이 닦는 법도 배웠고, 카르보나라도 처음 먹어 보았다. 사실 지금까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파스타인데, 어쩌면 그 레스토랑 아르바이트가 파스타의 문을 열었다고 하더라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나는 일을 너무 못해서 늘 매니저님에게 핀잔을 먹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일의 순서를 배우기도 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손님이 나가서 테이블을 치워야 하는데, 계산을 동시에 해야 하고 또 새로운 손님이 들어와서 안내를 해야 한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보았더니 동시에 3가지 일을 할 직원이 나밖에 없다. 


이런 경우 어떤 일을 제일 먼저 해야 할 것인가!! 


(정답은 계산이 먼저이다. 그리고 새로운 손님을 깨끗한 테이블로 안내한다. 만약 치워야 하는 테이블만 남아 있으면 새로운 손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빠르게 치운다.) 


이런 것들은 경험을 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다. 그리고 덤으로, 아르바이트를 같이 하는 동료들에게는 위계질서도 존재하지만 일을 하면서 동료애도 생기게 마련이다. 늘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바쁘고, 매니저님에게 욕을 먹는 하층민 신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다음 아르바이트. 


나는 20살부터 호주에 가기 전까지 한국에서 약 4년에 걸쳐 오랫동안 카페 알바를 했다. 한국에서는 이디야, 할리스에서 알바를 했다. 당시 나에게는 '스타벅스 알바'가 꿈이었다. 이디야는 사실 스타벅스 따라쟁이처럼 스타벅스가 있는 곳 근처에 지점을 내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스타벅스 알바는 상당히 복잡한 과정을 거쳤던 것 같다(나는 복잡한 것을 싫어하기에 스타벅스 알바는 그저 꿈이었을 뿐, 빠르게 포기했다). 



이디야를 거쳐 할리스 알바를 하게 되었을 때는 커피 맛에 우선 놀랐다. 갓 볶은 커피콩의 그 향기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아침마다 커피콩을 가는 드드드득~ 기계 소리, 그리고 고소하고 산미가 섞인 커피콩의 냄새는 새벽녘의 제과점을 지나는 것만큼이나 신선했다. 그리고 나는 우유를 끓이면서 우유 거품으로 라테에 그림을 그리는 법도 배우고, 좋아하는 케이크를 원 없이 먹기도 했다. 물론 여전히 시급은 짰지만 말이다. 


하지만 카페 알바는 내가 호주로 여행을 떠난 뒤, 현지 카페에 취업을 할 수 있게 해준 고마운 경험이 되었다. 물론 호주에서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은 무척 고된 일이었다. 일단 호주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뜨거운 라테 하나요~', '아이스 아메리카노요~'라는 식으로 심플한 주문을 하지 않는다. 


다음의 예시를 보자(모두 굉장히 빠른 원어민 영어)


" 저지방 밀크로 너무 뜨겁지 않게 라테 한 잔 주시고요, 아, 저지방이 아니라 무지방으로! 그리고 샌드위치에 계란이랑 마요네즈만 넣어 토스트 해주세요. 피클, 양파 이런 거 전혀 넣지 말고요. 포장이요. "


너무 어렵다.... 나는 영어를 전혀 하지 못한다. 왜 이렇게 복잡한 것일까...?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어려웠다. 내가 "pardon?" 을 몇 번 하면 친절한 호주 사람들은 곧바로 얼굴을 찌푸렸다. 그리고 내가 동양인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바빠죽겠는데 이 알바는 내가 왜 했던 말을 계속하게 하는 거야?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당연한 일이다. 영어 공부를 하려고 취직을 한 것이 아니지 않나, 내가 다 부족한 탓이지..


또한 아침이 되면 줄을 서서 커피와 샌드위치를 사 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2005. 호주 케언즈에서 함께 일했던 아르바이트생들
2005. 호주 케언즈에서



지금은 모든 것이 그립기만 하다. 호주 케언즈에는 아직 그 카페가 그대로 일까? 


(정현주 변호사의 아르바이트 일상은 다음편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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