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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의 주방보조 아르바이트 이야기(제2편)

2005, 호주 진진

by 정현주 변호사


나는 (누구나 다 하는?) 레스토랑, 카페, 호프집 서빙 아르바이트 외에도 특별한 아르바이트 경험이 몇 개 더 있다. 그것은 호주 케언즈를 떠나 호주 남부의 오렌지, 양상추 농장 및 아들레이드 포도 농장을 거쳐, 진진 호텔에서 몇 개월 동안 주방 보조 아르바이트를 했던 일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역시 '진진(gingin) 호텔'에서의 일들이다.


'진진 호텔' 그곳은 어디에 있는가?


%ED%98%B8%EC%A3%BC_051.jpg?type=w1 2005. 진진 호텔 이정표


호주 남부의 보석과도 같은 도시 '퍼스(perth)'에서 차를 타고 약 1시간 정도 달리면 작은 마을 '진진(gingin)'에 갈 수 있다(참고로 호주에서 차로 1시간 거리라는 것은 코 앞에 있다고 해도 좋을 만큼 가까운 거리다). 진진에는 이제는 더 이상 운영하고 있지 않은 기차역인 진진역이 있었는데, 어떤 호주 부자가 통채로 기차역을 사들여 별장처럼 만들어 일 년에 몇 번씩 휴식을 취한다고 했다. 나와 지나*는 주말이 되면, 기차가 오지 않는 진진역에 나가서 그 별장을 몰래 (훔쳐보는) 것을 좋아했다.


기차역은 더 이상 아무도 다니지 않으니 남루해보이는 철도길이 아름다웠고, 그 곳을 별장처럼 쓰는 누군가가 부러웠다. 그리고 늘 그 별장은 비어있었고 사람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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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기차가 다니지 않는 진진역,


우리가 진진에 도착하게 된 것은 물론 일자리를 찾기 위해서였다. 호주 서남부에서는 가장 큰 도시인 '퍼스'에서 일자리 소개를 받고 진진호텔까지 찾게 된 것이다. 진진호텔은 카지노조차 없는 작은 마을 진진에 있는 핵심적인 존재였다. 관광객도 꽤 있었지만 퇴근이 빠른 호주의 많은 일꾼들이 퇴근 후 가볍게 저녁을 먹으러 오거나, 포켓볼을 치러 오거나, 술을 마시러 왔다.


진진에는 전체 4명에서 5명 정도의 한국인들이 있었는데 대부분 농장일을 하러 나갔다. 그 곳에서 나는 우연히 진진 호텔 주방 보조일을 떠 맡게 되었다. 이미 케언즈 카페에서의 혹독한 아르바이트 경험 덕분일까? 일시적이지만 진진에 있을 때는 영어로 말하는 것이 그렇게까지 어렵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정도의 일은 아니었다(물론 여전히 영어를 잘하지는 못했다). 덕분에 나는 딱 한 명만 할 수 있었던 '주방 보조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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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98%B8%EC%A3%BC_049.jpg?type=w1 아름답고 고요했던 진진의 풍경,


진진 호텔은 작긴 해도 호텔이었기 때문에 음식 재료들이 모두 고급이었다. 쉐프는 3명이었고, 내가 담당한 쉐프는 중국인 쉐프, 웨일즈 출신 쉐프였다. 우리는 모두 아침부터 주방에서 저녁 늦게까지 함께 일을 했다. 출근을 하면 나는 우선 피자를 만들었고, 마늘빵을 만들었다. 뭐 이렇게 말해 봐야, 피자는 이미 만들어진 도우에 토마토 소스를 바르고 난 다음 레시피대로 양파, 페퍼로니, 앤초비 등 재료를 뿌려 오븐에 넣는 정도였다. 마늘빵은 바게트를 썰어 마늘크림을 바르는 것이어서 무척 쉬웠다.


그 외에는 버거에 들어가는 스테이크를 편편하게 다지는 일을 하거나, 당근을 다듬거나 쉐프들이 시키는 일들을 했다. 칼을 잡는 일이다보니 물론 손을 베일때가 많았는데, 그런 일은 쉐프들에게도 종종 일어나는 일이라서 여러 가지 붕대와 연고들이 가득한 약상자가 있었다.


주방 보조 일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보다 끝없이 들어오는 설겆이를 하는 일이었다. 가끔 단체 손님이 들어오거나 행사가 있는 경우에는 말 그대로 몇 시간이고 꼼짝없이 서서 무한대로 쌓이는 설겆이를 혼자 해야 했다(그런 날의 주방 보조는 나 뿐이었다).


그 일만 아니라면 재미있는 일들이 많았는데, 내가 말을 거의 하지 않는 동양여자다 보니 나이가 지긋했던 중국인 쉐프가 점점 마음을 열고 나에게 이런 저런 요리를 가르쳐주기도 했고, 점심 시간에는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 내어주기도 했다. 아직도 그때 먹었던 레몬치킨이 종종 떠오른다. 알싸하고 시큼하고 단맛이 감도는 정말 맛있는 치킨이었다.


그에 반해 웨일즈 출신 쉐프 필은 친해지기가 어려웠는데, 그도 그럴것이 성격이 무척 괴팍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시간이 갈수록 필과 많이 친해질 수 있었다. 또한 호텔 주방 보조 생활을 하며 이리저리 곁눈질로 즐거운 경험들을 많이 했다. 특히 요리를 만드는 쉐프의 모습을 바로 옆에서 계속 지켜볼 수 있었으니 그 자체도 재미있었다.


나는 진진호텔에서 처음으로 소고기 스테이크를 먹었는데, 처음 먹었을 때는 너무 맛있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식사 시간이 되면 나는 왕처럼 홀에 나가 거의 매일같이 스테이크를 먹었다(1편에서도 잠깐 말했지만 대부분 음식점 아르바이트는 시급이 짠 대신에 종업원이 먹는 음식에 대해서는 상당히 관대하다). 그 순간만큼은 농장에 다니는 다른 사람들은 날 모두 부러움에 가득한 눈으로 살펴 보았다.


사실 진진호텔의 왕은 따로 있었다. 물론 진진호텔의 사장이었던 데이비드이다. 나는 언젠가 사장이 드라큐라 백작과도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도 그럴것이 데이비드는 무척 차갑고 냉정했으며, 계산이 정확했고 늘 주위에 여자친구(?)들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데이비드는 결과적으로 힘들고 고된 농장일에서 (덜) 힘든 진진호텔 주방 보조 아르바이트를 시켜주었던 고마운 존재였다.


%ED%98%B8%EC%A3%BC_286.jpg?type=w1 2005. 잠깐 일했던 포도농장,


주방 보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새삼스레 느꼈던 것은 내가 요리를 참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래도 열심히 쉐프들의 레시피를 전수받으며 열심히 적어둔 것들이 있다. 그 레시피 책은 아직도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


근데 어느 날 열어보니 전신만신 스프를 만드는 방법이다.

그리고 파스타 소스 만드는 법, 튀김 옷에 맥주를 넣는 것 등등.. 대부분이 매우 사소하고 크게 쓸 일이 없을 것 같은.


벌써 20년 가까이 시간이 흐른 지금, 이런 저런 아르바이트 경험으로 나는 삶의 어려움들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얻지 않았나 싶다. 여담으로, 호주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면서 '꿈이 뭐냐'라고 묻는다. 그런데 나는 그때마다 'lawyer(변호사)' 라고 대답했던 것 같다. 당시에는 공부를 전혀 하지 않았던 나이지만 왜였을까?


생각해보니 나는 꽤 오래전부터 변호사가 되고 싶었었다. 그리고 젊은 시절의 여러 가지 경험들은 분명 나의 인생에서 가장 큰 자양분이 되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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