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사무소 봄 정현주 변호사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형사재판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편이다. 변호사로서 민사든 형사든 사건이 들어오면 무조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변호사들도 많지만, 정말로 변호가 필요한 상황에 있는 사람을 변호하는 것이 보람된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법률사무소 봄에서는 '형사 재판'과 관련하여 관련 유튜브나 글을 많이 쓰지 않고, 고소대리나 수사 절차 단계에서의 사건이 무척 많은 편인데, 사실은 형사 재판 사건도 꽤 많이 처리하고 있는 편이다. 특히나 나는 남양주지원에서 국선변호인을 하면서 무죄 주장을 하는 의뢰인들을 상당히 자주 만나게 된다.
사선변호인이라면 모를까, 국선변호인으로 무죄 주장을 하는 일은 생각보다 녹록지 않다. 기본적으로 형사 사건에 대한 무죄 주장을 하게 되면 증인신문 절차를 반드시 거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변호인은 기록을 검토하여 증인신문사항을 미리 만들어야 하고 때로는 피고인 신문도 진행해야 한다. 당연히 재판은 길어지게 되고 그만큼 시간을 많이 쓰게 되니 국선변호인으로서 무죄 주장을 하는 것이 어렵게 되는 것이다. 또한 유죄임이 분명한 증거를 가지고 있을 때의 무죄 주장이 피고인에게 올바른 것도 아니다. 자칫 잘못해서는 ' 범행에 대한 반성이 없다. '라는 인상을 줘서 형량이 더 높게 나올 수도 있다. 이런 부분을 충분히 설명하지만, 어찌되었든 반드시 무죄를 다퉈달라는 의뢰인들이 있다.
법률사무소 봄을 찾아주신 외국인 봄씨는 캄보디아 국적을 가지고 있다. 그는 고국인 캄보디아를 떠나 오래 전 한국에 와서 여러 해 동안 공장 일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말은 거의 못하지만, 같은 나라에서 온 친구들이 많아 함께 일을 하고 가족과는 주로 페이스북을 통해 연락을 한다. 그도 일을 해야 하니 당연히 핸드폰을 써야 하는데, 외국인들이 자주 가는 핸드폰 판매장에서 현금으로 갤럭시를 구매하여 유심을 이용하여 전화를 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경찰에서 연락이 왔다. 자기가 개통을 한 적이 없는 번호로 휴대폰 요금이 천만 원이 넘게 미납되었고, 이를 변제하지 않았으니 조사를 받으러 나오라는 내용이었다. 외국인 봄씨는 사실 일을 할 때를 제외하면 한국말을 거의 하지 못해서, 도대체 무슨 말인지 어떤 일인지조차 이해를 하지 못했다. 경찰 조사는 전문 통역인과 함께 진행되었고 몇 번의 조사를 받은 후 봄씨는 자신이 형사재판으로 넘겨졌다는 말을 들었다. 죄명은 '사기'이며, 잘하면 징역까지 살수 있다고 한다.
봄씨는 그때까지 단 한 번도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은 사실이 없었다. 다른 사람에게 사기를 친다니 말도 안 된다. 봄씨는 자신이 그런 일을 벌일 수 있는 깜냥도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국말을 모르고 또 돈도 없으니 이런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봄씨는 전문 번역인의 도움을 받아 국선변호인이 선정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법률사무소 봄을 찾아오게 되었다.
' 선생님, 범죄 사실에 대하여 어떤 입장이신가요? 지금 검사는 봄씨가 휴대폰 요금을 납부할 만큼의 변제의사나 능력도 없이 핸드폰을 개통하여 국제전화비로 천만 원이 넘는 돈을 썼으니, 이에 대하여 사기죄로 처벌을 해달라는 내용으로 재판에 넘긴 것입니다. '
내가 상황을 설명하자 봄씨는 억울하다고 말했다. 자신이 개통한 것은 갤럭시 하나뿐이며, 미납한 휴대폰 번호는 잘 모르는 번호라는 것이다. 자신은 요금에 대하여 자동이체를 걸거나 계좌이체를 하는 것이 뭔지도 모르고, 유심을 이용하여 충전식으로 소위 말하는 선불폰을 쓴 것이 전부라고 했다. 물론 이 내용은 모두 번역인을 토대로 오고 간 것이다. 봄씨는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소위 사기죄로 구공판이 된 많은 피고인들과는 달리 상황에 대한 이해도, 그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들어가려는 시도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봄씨가 간 뒤 기록을 읽어보니 앞뒤가 맞지 않는 수상한 점이 많았고, 또 결정적으로 봄씨가 지명이 된 것도 당시에 휴대폰점에서 근무하던 직원이 봄씨가 다녀간 것이 맞다고 지정을 하여 지목이 된 것이었다. 지금까지 성실하게 살아오던 봄씨가 갑자기 휴대폰을 구매하여 천만 원이 넘도록 요금 미납을 할 이유도 전혀 없으니 범행 동기도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봄씨의 억울함을 풀어주기로 마음먹고 변론 첫날부터 증거를 부인하며 무죄를 다투겠다고 하였다.
형사 재판에서 무죄를 주장하게 되면 검사는 우선 고소인 및 관련된 사람에 대하여 증인 신청을 하게 된다. 우리가 증거에 대하여 부동의를 했기 때문에, 새로운 증거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법정으로 증인을 부르는 것이다. 이처럼 증인 신청이 이루어지면 그다음 기일은 증인신문 기일로 지정되게 되는데, 이때 검사의 주신문과 변호인 측의 반대신문이 이루어진다. 이 과정에서 판사는 자신이 궁금한 것을 증인에게 묻기도 한다.
봄씨에 대한 무죄 주장을 위하여 우리는 증인 두 명에 대한 신문, 피고인에 대한 피고인 신문을 진행하였다. 몇 달이 걸린 재판 끝에 판사님은 마지막 피고인 신문에서 우리가 주장한 ' 명의도용 가능성 '에 대하여 고민을 하시는 듯했다. 피고인에게 직접 이런저런 질문을 하시다가 마지막에는 이쯤이면 되겠다.라는 말을 하시면서 재판은 끝이 났다.
재판이 끝나도록 봄씨는 불안한 모습이었다.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왜 재판을 받아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그 결과 형까지 살 수 있다고 하니 너무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아무리 봐도 봄씨가 거짓말을 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았던 우리는, 괜찮을 것이지만 혹시 모르니 판결을 선고하는 날에, 형을 살 수도 있다는 점에 대하여 잘 설명했다.
이처럼 억울하지만 방법을 모르는 의뢰인을 대신하여 변호하는 것은 무척 보람찬 일이다. 이는 보수 여부를 떠나 변호사로서 가장 보람된 순간이 아닐까 싶다. 어쩌면 이렇게 방법을 모르지만 누명을 쓰거나 자신이 한 행동을 넘어서 과하게 처벌을 받아야 할 때, 바로 옆에서 도와줄 수 있는 직업이 바로 변호사의 일이다. 그래서 가만히 있다면 억울한 상황에 쌓인 의뢰인들을 대신한 합의, 중재, 무죄 주장, 우리가 주장한 쟁점들이 받아들여진 판결의 선고와 같은 일들이 일어날 때마다 때로는 지치고 힘들어도 힘을 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송무 변호사로서 너무 많은 어려움들이 많다. 국선변호인으로 마주하는 사건들은 대다수 무죄를 다투는 유죄인 경우가 많고, 종종 의뢰인에게 속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특히 형사 재판에서 의뢰인에게 속은 것을 알게 되면, 의욕이 떨어지게 되니 변호를 할만한 동력도 사라지게 된다. 일에 치이고 지친 상황에서 변호사들이 다시 힘을 내게 되는 것이 바로 오늘 같은 보람된 상황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