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녀는 쇼난을 가 보고 싶다고 말했다. 내가 그때 조금 더 명확한 표현을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너와 함께 쇼난의 바다에 가고 싶다고. 그곳에서 너와 함께 노을을 보고 싶다고. 그 흔들리는 축대 위의 비치던 햇살은 바다 위에 산산이 부서지고 하얀 물결에 흩어지고 종국에는 소멸하는 것을, 그 광경을 함께 살펴봤더라면.
쇼난 해변에는 나무로 만들어진 작은 카페가 있었다. 전체적으로는 통나무로 만들어진 카페로 연식이 오래되었는지 지붕의 틈에는 얼기설기 지어진 거미줄이 붙어 있다. 그리고 고동색 나무로 만들어진 문 위에는 '쇼냔 드림 '이라는 영어 활자가 아무렇게나 휘갈겨져 있었다. 그 위에는 바로 며칠 전 찍은 것처럼 보이는 바다 사진이 붙어 있다. 이 모습은 마치 80년 대의 카세트로 나온 음반의 한 모습을 연상케 했다.
나무로 만들어진 문은 꽤 무거웠다. 육중한 문을 여니, 안쪽 문 바로 위에 달린 종이 ' 딸랑딸랑 ' 하는 맑은 소리를 냈다. 문이 이토록 무겁다 보니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를 놓칠 수도 있어 굳이 붙여 논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그녀와 나는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아, 청무가 들어간 발사믹 샐러드와 루이보스차를 시켰다. 음식이 나올 동안 그녀는 윗옷에서 고무줄을 꺼내 긴 생머리를 하나로 묶고 창밖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팔을 지나 손의 절반까지 내려오는 하얀 니트를 반으로 접는데, 속에 나온 하얗고 날씬한 팔목이 보였다. 그리고 그녀는 나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은은하게 웃으며 말한다.
' 쇼난의 바다, 꼭 오고 싶었어. '
이곳 에노시마에, 그녀는 덧붙여 말했다.
우리는 이미 이 섬으로 오기 위해 꽤 많은 일들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이 종착지에서, 더는 어떤 말도 이어붙이기 어려웠다. 어쩌면 큰 의미가 없는 말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리라. 시간이 갈수록 그녀의 세계는 점차 넓어졌고,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시간을 죽이는 베짱이처럼, 시간을 하릴없이 죽이는 다른 세계의 사람들처럼.
' 왜 이곳에 오고 싶었던 거야? '
나는 물끄러미 그녀를 보며, 용기를 내어 물었다.
' 언젠가 내가 읽었던 소설이 있었거든. 내용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아. 그 소설 속에서, 주인공이 쇼난의 바다로 가게 돼. 그리고 그곳에서 죽음을 맞지. 죽으러 갔던 것은 아니야. 하지만 그에게는 쇼난이 상징적인 곳이었어. 서퍼들이 사계절 몰려나와 바다 위에 서고, 열심히 바다를 즐기고 있지. 동경에서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는 곳, 에노시마는 오래전 다른 지역 사람들이 살았던 곳이야. '
그리고 그녀는, 루이보스티를 한 모금 마셨다. 시간은 정오를 넘어가는 시간 해는 그림자를 길게 내빼며, 우리가 앉아 있는 테이블 위까지 빛을 뻗어왔다. 빛은 점점 더 늘어지고 길어졌다. 단조로운 날이었다. 우리가 함께 쇼난에 있다는 것만 뺀다면 말이다. 바깥에서는 바람이 불어오는지 나무로 만들어진 창문 틀이 덜커덩거리는 소리를 냈다. 아마 이 카페는, 에노시마 섬의 신사를 가려는 사람들이 오가며 잠시 들르는 곳으로 느껴졌다. 나무로 만들어진 테이블 끝은 약간 칠이 벗겨져, 나무의 나이테가 조금 지워졌다. 나는 그녀를 따라 루이보스티를 한 모금 마셨다. 그랬더니 나도 모르게 눈이 감겼다. 온몸을 도는 그 따뜻한 느낌은 식도를 지나 위를 따뜻하게 덮이다가 사라져갔다. 나는 이 시간이 이 모든 순간이 한순간의 찰나처럼 느껴졌다.
나는 꽤 오랫동안 혼자 지냈다. 사실상 누군가와 가깝게 지낼 수 없었다는 쪽이 좀 더 가까운 이야기인 것 같다. 혼자 있는 것은 그렇게 나쁜 일이 아니었다. 어쩌면 사람이란 누군가와 함께 공존하며 지내는 편이 더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고독을 품게 되었지만 타인을 받아들이기에는 한없이 나약한 것이다. 그래서 마음을 닫고 지금까지의 삶을 반복한다. 특별한 마음을 가지지 않는다. 그런 마음이 들면 다시 마음을 닫고 멀리 도망치면 되는 것이다. 간단하게 스위치를 끄는 것처럼.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20대를 보냈던 것 같다. 꽤 오랜 기간을 한곳에 있지 못하고 파도처럼 떠밀려 온 세월이었다. 그러던 내가 그녀와 함께 쇼난에 있다. 하지만 아직도 나는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잘 알지 못한다. 나는 문득 내가 무척 지쳐버렸음을 알았다. 가지고 온 책들을 모두 불태워버리고 이곳 쇼난의 서퍼들처럼 바닷속으로 잠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더 이상 살아나가야 할 동력이 무엇인지 더 이상 그 이유를 찾을 수 없다.
' 바다로 나가면 무엇을 하고 싶어? '
그녀가 창밖을 보다가 마침 종을 울리면서 들어오는 사람들을 아득히 바라보는 것을 나는 보았다.
' 그냥 이곳에, 영원히 있으면 안 될까? '
너는 마치 나의 마음을 읽은 것처럼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까지 오는 것이 무척 피곤했으니, 조금만 더 쉬어 가자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이곳에 살자는 것인지 전혀 알 수 없는 어조였다.
에노시마에 오면 무엇인가가 종결되는 느낌이 들것이라 생각했어. 그곳 신사에 들어가 기도를 하고 그곳 사람들처럼 이곳에서 영(靈)을 남기고, 실체가 없이 사라지는 거야. 이곳 쇼난에서.
그런 말을 했었다. 해가 열심히 일직선으로 누워 흩어질 때까지. 종내에는 주위로 산산이 부서져 사라질 때까지, 너와 완전히 작별할 때까지. 그런 이야기를 할 때 나는 너를 따라가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네가 사라지면 나도 함께 사라지겠다고. 그렇지 않으면 이곳까지 온 의미가 없다고. 이제는 혼자 남겨지는 것이 지겹게 느껴졌고 꾸역꾸역 살아나가는 것이 역겨웠다. 나는 미련이 없었고 너는 자유롭지 못한 것을 싫어했다. 우리는 각자의 이유로 종말을 구할 이유가 충분히 있었다. 우리는 에노시마 섬으로 들어가 신사를 오르는 계단에 서서 오래도록 바다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난 여전히 살아있고 너는 없다. 너와의 기억은 에노시마가 마지막이다. 가장 가고 싶었던 그곳 바다, 쇼난에서 너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것을 완전히 마음먹었던 것처럼. 어쩌면 너는 나에게 실체가 아닌 그림자를 보여줬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보았던 것은 오로지 너의 그림자였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