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혼자 있으면서는 성장할 수가 없어.

함께 내딛는 거야. 축이 없으면 원을 그릴 수 없어.

by 정현주 변호사


가장 큰 문제는 내가 진정으로 그녀를 원하고 있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나는 그녀를 좋아했고 우리는 함께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우리의 대화는 겉으로만 피상적으로 이어졌다. 말하자면 한정적인 단어와 주제로 이어지는 말들이 마치 담배 연기처럼 한곳에서 머물다가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결국 나는, 그녀와 함께 있으면서도 늘 다른 곳에 있었던 것이다. 함께 마음 편한 시간을 보내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녀를 오롯이 원하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녀가 떠난 후, 나는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난겨울 너를 다시 만났을 때, 나는 물론 내가 찾고 있는 어떤 다른 무엇인가가 너에게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는 없었다. 오히려 우리는 다른 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처럼 계속 엇갈리고 스치기만 할 뿐이었다. 때때로 그 시간들은 나에게 일종의 의미를 주었지만 나는 여전히 확신할 수는 없었다. 물론 삶의 확신은 상대가 주는 것이 아니며 나 스스로 찾는 것이라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지만.


' 그러니까 혼자 있으면서는 성장할 수가 없어. '


너는 그때 말했다.


어둠이 있어야 빛을 인지할 수 있듯이 말이야. 나의 형태라는 것은 너라는 존재가 있어야 인지할 수 있다는 것을 최근에서야 알게 되었어. 우리는 가끔, 매우 운이 좋으면 나를 알 수 있는 상대를 만나게 되지. 그것은 다시 말해 '너'라는 존재가 있기 때문에 나의 능력치를, 한계를, 감정을 인지할 수 있게 되는 거야. 하지만 혼자인 시간만을 보내면서 내 존재를 자각할 수는 없는 거야.


마치 중심축이 있으면서 원을 그리는 컴퍼스처럼 말이지?


맞아 ㅡ 그거야. 컴퍼스라는 말의 유래를 알고 있어? con-이라는 말은 라틴어로 '함께'라는 뜻이야. 퍼스(passus)란 '내딛다'라는 말이지. 함께 내딛는 거야. 축이 없으면 원을 그릴 수 없어. 나아갈 수 없어.

그녀는 말했다. 나로서는 숱하게 많은 세월 동안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실체로서 누군가와 함께 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대부분의 관계는 피상적인 단계에서 나아가기 어렵다. 어느 한 쪽의 마음이 크더라도 타이밍은 늘 어긋나기 마련이고, 잘못하면 스스로의 감정의 늪에 빠져버리게 된다. 그리고 관계란 것은 애초에 서로에게 믿음을 쌓아나가기가 어렵다. 우리는 언제나 서로의 떠남을, 또는 나의 이별을 마주한다. 이런 일은 도대체 언제까지 반복될 것인가.


한동안 나는 나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과 공허감에 쌓여 있었다. 너 또한 나를 떠나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더 이상의 상실감을 느끼는 것에 더 이상 어떤 기분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삶에 지쳐있었다. 어쩌면 앞으로도 이런 일은 반복되는 것일까? 언제까지 나는 나를 떠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만 있어야 할까? 나는 한때 표류한 낡은 배를 바라보며 이제는 이 아름다운 섬에 정박하고 싶다고, 소소한 의미를 찾으며 살고 싶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사실 나는 그 무엇도 포기하지 않고 흔들리는 배에 오른 사람처럼 기꺼이 살아온 것이다. 운명이라는 굴레를 정면으로 맞서기보다는 그 흐름에 편승한 닻처럼.


충분하지 않다. 인생의 몇 퍼센트 정도가 모자랐지만 그것은 대부분의 깊은 구멍을 뒤덮을 정도로 삶에서 지나치게 큰 것이었다. 나는 나의 삶의 동반자를, 오로지 전념할 대상을, 어쩌면 안정적인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생각을 멈추고 더 이상의 혼자로서의 굴레를 벗어던지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일단 너를 만나러 가기로 했다. 그것이 바로 나의 출발점이다.


2014.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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