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와 함께 있어도 사무치게 외로울 수 있다는 것을 진작에 알았다.
오래간만에 한남동과 이태원을 걸었다. 오늘은 비교적 날이 따뜻했고, 1월의 마지막 날이기도 했으며 벌써 26년의 첫 달이 조용히 사라지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버스정류장으로 나와 파란 버스를 기다리며 앉아 있는데 왼쪽 얼굴 위로 꽤 오랫동안 담아놓은 듯한 햇빛이 쏟아져 내렸다. 스며드는 공기는 물론 차가웠지만 그 차가운 공기들 틈새로 한가득 담겨있는 햇빛들이 느껴졌다. 질량이 느껴지는 햇볕을 보고 있자니 최근 빠져 듣고 있는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2번이 귓가에 울리는 것 같았다.
몇 분이 지나자, 버스 정류장에는 버스가 큰 짐을 실은 기차의 앞 칸처럼 느리게 들어왔다. 나는 버스에 올라타 한남동까지 가는 50여 분의 시간 동안 길에 수없이 쏟아지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았다. 버스는 복잡한 강남을 지나고, 몇 번의 횡단보도에 멈춰 선 뒤 긴 다리를 건너갔다. 다리 건너편으로 이어지는 고속도로를 마주 보는 길에는 다양한 집들이 지어져 있었다. 그 집들에는 일관성이라는 것이 결여되어 있었다.
' 오늘은 참 좋은 날이야. '
나는 찬란한 일요일 오후의 햇볕이 쏟아지는 다리를 건너면서 너에게 말했다.
' 왜? '
' 오늘은 나에게 extra, 여분의 날이니까 말이야. '
'여분의 날'이라는 나의 말에 너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린다. 나에게 과연 '여분의 날'이라는 것이 있었던 것일까.라는 새삼스러운 의문에 반기를 들듯이.
' 오늘은 오래간만에 아무런 일도 없고, 토요일이고 편하게 쉴 수 있어. 특히나 한 달의 마지막이 주말이면 말이야. 나는 아무것도 신경 쓸 것이 없어. 하루 정도는 징검다리 휴무처럼, 보너스처럼 나에게 남게 되는 거지. '
이런 날에, 한남동을 가게 된 것은 큰 행운이라고 나는 새삼스럽게 생각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꽤 오랫동안 한남동에 가지 못했다. 한남동 그곳은 ' 첫사랑, 그녀'의 모티브가 되었던 장소이기도 하고, 꽤 오래전 나의 기억 속 저장창고 안에 남겨져 있거나 또는 아로새겨진 추억들이 깃들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는 버스에 내리자마자 추운 날씨에 대항하듯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한다. 시간은 이미 1시가 넘었다. 아직까지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녹사평역 근처의 남아프리카 음식점에서 늦은 점심을 먹는다.
' 나는 이곳에 한 번은 와 보고 싶었어. 남아프리카는 언젠가 꼭 한 번 가봐야 할 곳인데 말이야. '
너는 말한다.
이국적인 물건들이 가득한 식당 안에는 놀랍게도 꽤 많은 동양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었고, 대부분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꽤 이국적인 양 갈비를 먹고 있었다. 체더치즈에 버무린 시금치와 감자튀김, 페일에일로 보이는 생맥주들이 자리에 놓여있다.
우리는 메뉴판을 세심하게 본 뒤(놀랍게도 메뉴판은 영어로 되어 있었다), 양 갈비와 새우 4마리, 시금치와 갈릭 브레드를 주문했다.
나는 문득 허기짐을 느꼈다. 창가를 등지고 앉아 먼저 나온 페일에일을 마시면서 등으로 쏟아지는 따듯한 햇살을 느꼈다. 나는 겨울에 늘 추위에 떨고 있다. 특히나 최근 봄 사무실은 온종일 히터를 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렇게까지 추운지 모르겠다.
제일 먼저 나온 갈릭 브레드는 바게트 빵 위에 버터를 바르고 구운 일반적인 마늘빵이 아니었다. 그것은 좀 더 본격적으로, 빵 위에 달게 절인 양파와 체다치즈(이 가게는 체다치즈를 좋아하는 것 같다)를 가득 뿌려 구운, 한 조각만 먹어도 배가 부를 것 같은 크기의 한 끼 식사로 보였다. 먹음직스러워 보였지만, 나는 이후 줄줄이 나올 음식들을 생각해서 약간만 맛을 보기로 했다.
다행히 그다음 나온 메인 요리들이 양이 많지 않은 것은 큰 다행이었다. 우리는 조용히 맥주를 마시면서 웰던으로 잘 구어진 양고기와 빵을 먹고, 일요일 한낮의 햇볕을 담뿍 느꼈다.
천천히 나온 음식들을 차근차근 먹고 음식을 먹는 동안 손에도 대지 않았던 갈릭 브레드가 절반쯤 남았을 무렵, 나는 문득 무척 외롭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치 모든 것이 갖춰진 식물원 안에 뜬금없이 놓인 선인장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누군가와 함께 있어도 이렇게 외로울 수 있다는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다. 어떤 면에서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것은 외로움을 가중시키는 부스터와 같은 느낌마저 준다는 것을, 나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 그래서 어떤 삶을 살고 싶은 건데? '
라고 나는, 너에게 마음속으로 물어본다.
햇볕에 흔들리는 너의 속눈썹을 가만히 바라보며, 나는 닿지 않을 기약 없는 돛단배와 같은 등대지기와 같은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면서 말이다.
그리고 나의 상념은 간절한 여운처럼 너에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 나는 다시 한번, 에노시마 섬에 가고 싶어. 그때는 그 노을을 시간을 들여 천천히 바라보고 싶어. 굳이 동굴까지는 가지 않아도 괜찮아.
나는, 그 낯선 곳에서 다시 한번 정처 없이 떠도는 나그네가 되고 싶은 거야.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지? 에노덴 기차를 타고 지나가는 길에 보였던 쇼난의 바다, 그 바다는 언젠가 내가 읽었던 책에서 나왔던 낯설고 기묘했던 지명이기도 했어. '
그리고 나는 잠시 숨을 참는다. 눈을 감을까 말까, 고민하면서.
' 그리고 나는 너에게 이 이야기를, 또 나의 이야기를 여러 번 했었지. 나는 언제나 사람의 한계를 보게 될 때, 이루 말할 수 없는 혐오감을 느끼곤 했어. 그리고 나는 말하자면 사람의 밑바닥을, 한계를 마주할 기회가 유독 많았어. 다들 나를 만나면 입고 있는 옷을 모두 집어던지고 자신의 가장 나약한 면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일종의 자유인이 된 것 같기도 했어.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은 그것이 나의 특징이라고 했지만.. 생각해 보면 글쎄. 그것은 나의 특징이라기보다는, 나의 '성향'에 가까웠던 것 같아.
이를테면 나는 이도 저도 아닌 것을 싫어했어. 늘 명확하거나 확실한 방향을 좋아했던 거야.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명확하거나 확실하지 않지. 설사 명확하거나 확실하더라도 그 반대되는 방향에 서 있거든. 차로가 비어 있으면 왜인지 모르게 끼어들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처럼, 명확하거나 확실한 것들은 반대되는 것들을 하고 싶게 만드는 충동을 만들어내니까 말이야.
다시 말하면, 사람들은 평온한 것을 원하더라도 실지로는 평온하지 않은 것들을 선택하는 거야.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을 간절하게 바라지만 실제로는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들에 매이는 거지. 나는 물론 오래전부터 그런 멍청한 짓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해왔어. 심지어 나는, 그 상황을 어느 정도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컨트롤할 수 있다고 믿기도 했어. 하지만 물론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지. '
나는 그렇게 착각했다. 아주 많은 여러 가지 것들을. 그리고 그것들을 '갈무리'하는 것에 꽤 많은 소중한 시간들을 바쳐야 했다.
' 다 먹었어? '
아득하게 멀리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 다 먹었으면 이제 가자. '
햇살과 뒤섞인 익숙한 목소리가 바로 앞에서 들렸다. 물론 나를 바라보는 너가 나에게 하는 말이다.
나는 문득 잠에서 깬 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미 바로 옆에 테이블은 다른 사람들로 채워졌다. 두 번째 사람들은 이제 갓 만나기 시작한 연인들로 보인다. 그들의 눈빛에서 앳된 감정들이 느껴진다.
우리는 그곳을 나와 일요일 한낮의 이태원 거리를 다시 걷기 시작했다. 이미 충분히 배가 불렀기 때문에 오래간만에 천천히 느긋하게, 거리를 걷는 것도 꽤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