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트 벤 하두에서 메르주나로,

나의 첫 아프리카, 모로코 제1편

by 정현주 변호사



마라케시에서 아이트 벤 하두로 넘어가는 길은 마치 화성에 온 듯 신기한 지형이 계속되었다. 몇 시간을 가더라도 끝없이 듬성듬성한 낮은 초목들과 굵은 모래자갈들이 깔려있던 서부 호주의 사막과 달리 아이트 벤 하두로 가는 길은 다음 끝없이 달라지던 지형을 거쳐야 했기 때문이다. 만년설이 쌓여 있는 아틀라스산맥을 넘어갈 때는, 늘 한여름의 태양을 떠올리게 되는 아프리카 대륙임을 고려할 때 무척 기이한 느낌마저 들었다.


우리는 끝이 없이 펼쳐지는 평원과도 같은 초원 길을 달렸다. 어떤 곳은 거대한 암벽으로 둘러싸여 있었으며 몽골의 초원에서 보았던 아득한 수평선이 보이는 곳도 있었다. 몇 시간을 달려도 어딜 가나 사막이었고 아무것도 없었다. 문명이라고는 그 먼 거리를 통틀어 생각보다 잘 포장되어 있었던 도로뿐이다. 만약 중간에 차에 문제라도 생겨 갑자기 멈추거나 도로가 유실된다면 아찔할 정도로 이곳은 황량한 곳이었다. 그 야생과도 같은 곳에서 유독 잘 깔려있던 도로가 더 이상할 정도이다.


꽤 오랜 시간을 달려 아이트 벤 하두에 도착했다(사막 길을 달리면서 중간중간 작은 마을들과 도시들을 거쳐갔다). 흙먼지가 가득 차 있던 아이트 벤 하두는 오래전 인도의 자이살메르 마을을 연상케 했지만 도시 절반을 뒤덮는 올리브나무(그것은 마치 거대한 밭처럼 보이기도 했다)들이 사막 한가운데 세워진 오아시스 마을이라는 것을 이정표처럼 알리고 있었다. 사막의 나라들은 오아시스가 있는 곳에 마을을 만들기 때문이다. 도시는 로마시대에 만든 거대한 콜로세움 모양의 성을 중심으로 집들이 모여 있었다.




흙더미 속에 꽤 많이 보였던 아이들은 차가 지나가면 천진난만하게 웃으면서 손을 흔들곤 했다. 어딜 가나 발견할 수 있는 cafe에서는 생각보다 꽤 맛있는 에스프레소를 팔고 있다. 이곳 사람들은 대부분 에스프레소를 마시면서 작은 병의 물도 함께 구입하여 마시곤 한다. 심지어 메뉴판에는 에스프레소와 물을 함께 파는 시스템도 있었다. 아랍권의 영향으로 술을 파는 곳이 거의 없어 그 흔한 맥주도 마시기 어려웠다. 카페에는 쿠스쿠스와 타진을 팔고 있고, 한국인이라면 아무런 거부감이 없이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브로쉐(닭꼬치구이)도 팔고 있다.


한 겨울이었지만 한낮의 태양은 따가웠다. 아프리카 대륙이라도 겨울은 겨울인 것이 햇빛을 조금만 가려도 바로 추위가 엄습했다. 이곳에 있는 동안 언제나 그랬다. 언제나 신선한 민트 잎으로 우려낸 차를 마신다. 설탕을 넣으면 달달한 풀숲의 맛이 난다.


강렬한 태양빛과 땅에서부터 번지는 흙먼지는 오래전 걸었던 여름 길을 연상케 한다. 한국에서 가져온 책을 생각보다 꽤 읽었다. 거의 매일 먼 거리를 이동해야 했기에 도시에 도착하면 피곤함이 누적되어 숙소의 매트리스 위에 누워 아무렇게나 책을 읽는 것이다. 일을 제외하고 한국에 있는 그 누구와도 연락을 하지 않는다. 어차피 이곳의 밤과 낮은 한국과 반대다. 해는 꽤 늦게 뜨고 저녁 6시가 지나면 갑자기 사막의 추위가 슬금슬금 몰려온다.


아이트 벤 하두는 대부분 사하라 사막을 가기 위해 잠시 반나절 동안 머무는 거점 도시라고 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숱하게 지나왔던 곳 중에서도 어쩌면 가장 사막 도시의 느낌에 가까운 곳이었다. 우리는 시내 중심가에 있는 전형적인 리아드(모로코의 전형적인 여관)에 머물렀다. 아무도 이용하지는 않았지만 수영장과 테라스가 딸려 있는 숙소였다. 저녁으로는 마리네이드 한 구운 닭고기와 샐러드, 렌탈콩스프가 나왔다. 숙소는 아랍에서 많이 보이는 카페트가 깔려 있었고 바로 나갈 수 있는 테라스가 딸려 있다. 방 안에 있는 에어컨은 덜덜거리는 소리만 낼 뿐, 제대로 작동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한낮은 더울 정도였으나 해가 떨어지자 추위가 몰려와서 깊게 잠들기 어려웠다. 이곳은 어딜 가나 일교차가 무척 심하다고 느낀다.




이 흙으로 가득 찬 낯설고 이국적인 도시는, 내가 문득 한국에서 멀리 떠나왔다는 자명한 사실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한다. 이곳에서 보이는 광경들 중에는 익숙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다음 날, 나는 이곳을 떠나 메르주나로 가는 길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들을 본다. 어쩌면 길을 잘못 들지 않으면 절대로 찾기 어려울 만큼 낯설고 알려지지 않은 사막 도시들이다. 무성한 올리브 나무숲을 지나고, 우주에 떠다니고 있을 법한 거대한 암벽들을 지나고 어쩌다 가끔 있는 초목 아래로 얕은 강이 흐른다. 이름 모를 새들이 떼를 이루어 하늘을 뒤덮는다. 내가 지금까지 안고 있었던 수많은 걱정과 근심들이 내가 마주치고 있는 자연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해 보면 그렇다. 24년의 겨울, 나는 늦은 오후까지 지독한 꿈을 꾸면서 잠에서 깨어나올 수 없었다. 잠은 다른 잠을 몰고 오는 듯 나의 옷을 잡고 놔주지 않고 있었다. 그것은 나를 좁은 곳에 밀어 넣고 심문을 하듯 전혀 알 수 없는 이상한 곳에 홀로 떨어진 나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나는 연신 땀을 흘리며 그 상황을 벗어나려고 발버둥 쳤다. 물론 모든 것은 허사로 돌아간다. 나는 오늘과 내일과 모레가 뒤섞인 시간 속에서 오로지 꿈속에 갇혀 있을 뿐이다.


나는 어느 순간 체념하고, 아예 꿈속에 몸을 맡겨 버린다.


나를 지배하고 싶으면 마음껏 지배하라지.라고 나는 생각했다. 어차피 지배하려고 해도 불가능할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오겠지. 물론 오만한 생각이었다. 나는 꽤 오랫동안 환영과 꿈에 시달렸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늘 나 혼자 남았다. 꿈이 어떻게 시작되든 결국에는 말이다.


족히 반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지속된 어이없는 환영들은 메르주나로 가는 그 길 위에서 사라지고 만다. 그 외에도 나는 많은 것들을 내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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