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에 너는 어디에 있을까?

세계의 문은 닫히고 새로운 세계의 문이 열린다.

by 정현주 변호사


날이 무척 추워졌다. 늘 한 해가 떠들썩하게 지나갔던 것 같은데 2025년은 감은 눈처럼, 밤에 내리는 차가운 눈처럼 소리 없이 사라졌다. 몇 가지 일들을 정리하다 보니 시간이 한 움큼 지나버렸다.


나는 차가운 입김이 서리는 익숙한 카페에 앉아 연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 해변의 카프카를 읽었다. 시간은 늦은 오후로 한때는 이글거리면서 타올랐을 태양은 저 멀리 산속으로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고 마치 그 빈자리를 대신하는 것처럼 해는 그림자를 창 안으로 길게 드리웠다.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태양이 넘어가는 시각이다.


오래전부터 짙은 오후가 시작되는 이 시각에 카페에 앉아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다. 나는 면허를 꽤 늦게 딴 편이었는데(나는 34살에 면허를 땄다), 일을 하지 않았던 당시에는 차를 운전하여 외곽에 있는 전원주택처럼 아늑한 카페를 찾아가는 것이 소소한 취미였다. 혼자 있는 집은 언제나 썰렁했다. 집에 있는 동안 나는 유령처럼 아무것도 만들지 않았고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마치 언제든 짐을 싸서 이사라도 갈 수 있는 것처럼. 늘 소유가 없었으며 여관방에 머무는 객(客)에 불과할 뿐이었다. 나는 아무래도 공간적 개념이 희박한 사람이 아닐까 싶었다.


그날 내가 많은 것들을 내려놓고 긴 다리를 건너 오래간만에 카페에 가서 글을 썼을 때, 생각보다 오래 마음이 아파왔다. 그때가 벌써 일 년 전이다. 나는 여전히 혼란스럽고 불안했다. 오로지 내가 알고 있었던 것은, 무엇이 되었든 불편한 공간에 머물지 않으며 좀 더 익숙하고 친밀한 곳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뿐이었다. 이미 공간적 개념이 희박했던 나는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빠르게 많은 것들을 삭제시켜갔다. 그것은 완전한 소멸에 가까운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나의 기억이 소멸한 것이 아니라, 내가 그곳에서 사라진 것이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 그러니까 너는 몇 차례에 시도 끝에 그 세계에서 완전히 사라질 수 있었던 거야? '


이제는 희미한 기억 속에 남은 너가 물었다.


' 아마도. 하지만 나는 사라지려는 시도를 하지는 않았어. 그저 불편한 것들을 피했던 것뿐이야. '


나의 기억들은 단편적이다. 나는 고통을 묻는 습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겨울, 나는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고 스토리를 구상하면서 꽤 오랜 시간을 보냈다. 몇 가지 남는 여행의 잔향이 있었는데 그 기억의 장소가 바로 에노시마다.


' 에노시마에서, 너는 신사를 보았지? 신사에서 신년운세를 보기도 했어. 그 겨울 너는 꽤 많은 곳을 떠났어. 일을 하다가도 갑자기 부지불식간에, 마음이 이끄는 대로 어디든 잠깐씩 떠나 있곤 했지. '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커다란 까마귀들이 공격적으로 우는소리가 산 너머로 들리곤 했다. 그것은 마치 이곳은 너가 속한 세계가 아니며, 이방인으로서의 나를 명확하게 알려주려는 의도로 들리기도 했다. 하늘은 형형색색으로 물들었다. 그 빛은 매우 익숙하기도 했으며, 어떤 때는 몹시 다르기도 했다.


' 이제 너는, 더 이상 그곳에 속하지 않으니까 말이야. '


맞아. 나는 그곳에 속하지 않아. 나는 이제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 노트북만 있으면 어디에서든 일을 할 수 있고, 휴식을 취할 때가 오면 쌓아두었던 오래된 책들을 읽어. 또다시 세계를 회피하고 있지.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회피'라고 볼 수는 없는 것 같아. 이제는, 나는 나의 선택으로 머무는 곳을 찾아다녔던 거야.


그리고 그날, 바람을 맞으면서 긴 다리를 건넌 이후 들어간 카페에서는, 공교롭게도 나를 제외한 카페의 모든 손님들이 누군가와 함께 있었다. 그들은 커피나 차를 마시며 또 맛있는 케잌을 함께 곁들이며 순수하게 웃고 또는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당연하지만 그 사이에 껴있는 나는 그들의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가림막 같은 것이다. 지나가면서 길을 피할 수는 있지만 자리를 차지하는 것에 불과한 가림막. 나는 모두가 나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에 큰 안도감을 느끼면서, 동시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독감을 느꼈다. 나는 분명히 느끼고 있었다. 나의 존재는 몹시 투명해지고 있다. 반투명의 가림막처럼. 그것은 물론 내가 진심으로 바라고 있던 것이다. 나는 눈에 보이지 않으며 미끈한 물고기처럼 그들 사이를 빠져나간다. 나는 그림자를 남기고 실체로 빠져나간다. 오로지 그것만을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공기는 차고 투명해진다. 나는 그림자 분리 작업에 어느 정도 성공한 뒤에 그곳을 빠져나갔고, 두 번 다시 방황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 하지만 너는 또 방황할지도 몰라.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그것은 너의 DNA 같은 것일지도 몰라. '

기억 속에 희미한 너는 여전히 나를 우려하고 있다.


맞아. 그럴지도 모르지. 사람들은 자신의 습성을 못 버리니까. 얼굴은 변해도 취향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지. 하지만 생각해 봐, 지금 세계의 문이 닫혔어. 사람들은 모르고 있지만 나는 느낄 수 있어. 나는 지금 막 공기 속에 떠오른 셈이니까 말이야. 세계의 문이 닫히면 어떻게 되겠어? 아마도 다른 세계로 흘러가게 되겠지.


잠시 멈추는 방법도 있어. 좀 더 초월해서 말이야.

아니면 이렇게 떠오른 김에 두둥실 수영을 해도 되고.


너는 그 대목에서 잠시 미소지은 것 같다. 찰나의 웃음이다. 그 이후 너는 계속해서 말한다.


좀 더 시간을 가져도 될 것 같아. 어차피 지금 가 있는 곳은, 다른 사람들은 알 수 없으니까. 너는 상당한 안전지대를 찾았고 그곳에 원하는 대로 머물 수 있어. 머물면서 생각해 봐.


나는 알고 있다. 닫혔던 세계의 문은 소멸하고, 새로운 세계의 문이 열리고 있음을. 그것은 큰 변화의 모습이라기보다는 근원적으로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모하리라는 것을, 나는 그것을 과거에도 몇 번 느낀 적이 있었다. 인생의 전환은 늘 생각지도 못했던 지점에서 벌어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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