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우연한 기회로 완전히 다른 길목에 다다르기도 한다.
페스(fes)에 간 것은 우연한 계기였다.
그때까지 나에게 아프리카란, 끝없이 펼쳐지는 세렝게티 초원 위에 얼룩말 무리들이 일정한 속도로 뛰어가고 사자들이 연약한 가젤을 사냥하며 표범이 나무 위에 누워 쉬는, 그야말로 약육강식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가공적 세계였다. 그곳은 나에게 너무 멀었다. 어떠한 계기나 동기가 없이 갈 만큼의 현실성은 없는 곳이다.
나는 우연히 한 장의 사진을 보게 되었다. 언젠가 보았던 인도 자이살메르와 비슷한 낮고 흙색으로 비슷하게 둘러싸인 집들 사이로 형형색색의 염색을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페스(fes)의 가죽 염색공장은 바로 옆에 흙으로 지어진 건물 위 옥상에서, 비둘기와 소 등 동물들의 배설물들을 섞어 만든 물들에 여러 번 담가 가죽을 늘리고 부드럽게 만드는 공정을 한다. 매일 이렇게 늘리고 색을 입힌 가죽들은 잘 마르도록 근처 공장 위에 널어놓았다.
아주 작은 것에 마음을 빼앗기고, 그것이 우연히 되어 삶의 방향이 결정되는 것처럼 나는 깃털과 같이 나에게 다가오는 무수한 기회들에 흔들린다. 그것은 혼돈이 되고 상념에 빠지게 만드는 결정적 기로가 된다.
페스는 모로코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결정적 기회를 주었지만, 모로코는 그보다 훨씬 더 광활한 나라였다.
그래서 결국 페스에서 무엇인가 바뀌었다는 것을 체감했지?
너는 묻는다.
확실히 그랬어. 나의 내부에서 무엇인가가 바뀌었지. 하지만 그것이 페스였던 것인지 라바트였던 것인지 정확하게 어디였던 것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아.
이번에는 꽤 멀리 갔었네?
맞아. 나는 마치 지구 반대편에 있는 느낌이 들었어. 이상한 일이지? 나는 그전에도 10시간이 넘는 비행을 여러 번 해 보았어. 단 일 년 전만 해도 나는 사막을 보았어. 하지만 이번에는 날 것의, 그야말로 야생 그대로의 느낌이 들었어. 마치 가방 하나를 들쳐매고 무작정 인도나 암스테르담으로 떠났던 그 언젠가처럼 말이야. 무엇보다 그런 일들이 있어. 삶의 전환이 되는 그런 장소, 여행, 느낌 같은 거 말이야.
나는 너에게 이어 말한다.
나는 많은 것들을 잊어버렸지. 정확하게 말하면 소멸해갔어. 내 마음속의 소중한 것들이 모두 닳고 소멸했지. 나는 그렇게 잃었어. 탈피하는 애벌레처럼 말이야. 하지만 정확하게 내가 잃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마치 단 꿈을 꾸고 일어났을 때처럼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아. 나는 몇 번이나 내 손바닥을 보았어. 어쩌면 나조차 사라져 버릴까 봐 말이야.
그리고 나는 분명히 느낀다.
내 마음속에 더 이상 너는 없다고. 너를 잃고 보냈던 그 수십 년 동안, 나는 다른 세계에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세계의 문을 닫고 다른 세계로 향하려 한다. 더 이상의 희망이나 기대는 없다. 오로지 낡고 서걱거리는 마음과 숱하게 남은 상처들과 고목나무와 같이 달라붙어 어디로도 사라지지 않는 생존의 고통만이 존재할 뿐이다. 나는 깊은 잠에 빠진다. 어쩌면 이곳이야말로 그림자를 남겨두고 떠나온 나의 본체가 있어야 할 장소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