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와 의뢰인의 관계는 사회생활이다.
변호사 일을 하면 정말 다양한 의뢰인들을 만나게 된다. 다양한 직업군과 원래의 나라면 만나기 어려운 나이대의 그야말로 어려운 사람들도 만날 기회가 생기지만 직업적으로 사람들을 대하다 보니, 결국 의뢰인은 의뢰인으로 비슷한 느낌으로 대하게 된다.
우선 변호사와 의뢰인은 미묘한 선이 있다.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미묘한 느낌의 선이다. 그 선은 몹시 친밀한 감정을 느끼게 되기도 하지만 한 순간에 신뢰를 잃고 무너지기도 한다. 그 한 끗 차이는 무척 위태위태하고 쉬운 느낌이어서, 언제든 쉽게 변할 수 있다. 나는 그 이유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다. 아마 서로가 생각하는 지점이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각자 정해진 위치에 따라 결코 넘을 수 없는 벽들이 생기는 법이다. 많은 이들이 이를 '사회생활'이라고 한다. 사회생활로 만나면 진정한 친구를 만나기 어렵다고 하지 않는가? 우선은 '사회생활'이라는 벽을 넘어 서로가 진심을 내보일 기회 자체가 없기도 하고, 어떤 면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거나 그것이 오히려 관계를 망치기 때문이기도 한다.
변호사와 의뢰인도 마찬가지이다. 이 관계는 내가 생각할 때 좀 더 견고한 '사회생활'이다. 의뢰인의 입장에서는 나의 가장 약점을 드러낼 수밖에 없거나 때로는 절대로 보이고 싶지 않은 치부를 보여야 하는 사건이더라도 변호사는 '일을 처리해 주는 사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상호 간 '일을 처리해 주는 것'에 대한 과정에서의 신뢰관계나 결과에 늘 긴장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의뢰인은 '왜 변호사는 내 일에 (좀 더) 집중해서 일을 해주지 않는 거지?'라는 생각을 늘 하게 되고, 결과가 좋지 않으면 무조건 후회나 실망을 할 수밖에 없기도 하다. 변호사의 입장에서는 아무리 좋은 의뢰인이라도 늘 태도가 돌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형식적으로 대할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변호사는 일이 완전히 끝난 경우가 아니라면 의뢰인과 친구가 되기 어렵다. 물론 의뢰인들은 일이 끝나면(그 결과가 좋더라도), 더 이상 변호사와 연락을 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사건이 해결되었고, 이제 그 사건에 해방되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변호사를 쓸 만큼 어렵거나 힘든 일이었기 때문에 변호사는 사건과 함께 엮여서 생각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즉 좋지 못했던 기억을 떠올리고 싶지 않듯이, 그 사건과 엮여있었던 변호사도 사건의 끝과 함께 함께 삭제 버튼을 누른다.
대부분의 변호사들은 의뢰인을 어렵게 대한다. 특히 경험이 많은 변호사일수록 그렇다. 변호사들은 의뢰인에게 큰 선물을 받기도 하고, 진정을 당하기도 한다. 어떤 때에는 의뢰인으로부터 해임을 당하기도 하지만, 또 의뢰인에게 선임료를 돌려주면서 먼저 사임을 하기도 한다. 이처럼 변호사에게 의뢰인은 어려운 존재이다.
의뢰인은 나에게 사건을 맡겨주는 정말로 고마운 존재이지만, 비싼 선임료와 기대만큼이나 무거운 짐을 함께 떠안은 것이다. 당연히 긴장을 할 수밖에 없다. 늘 좋은 결과를 주고 싶고 원할 때 함께 해 주고 싶은 마음이지만 현실적으로는 물론 어렵다. 시간은 늘 한정되어 있고, 늘 이기는 싸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변호사와 의뢰인은 늘 미묘한 선을 지키면서 줄다리기를 한다. 물론 처음부터 완전히 합이 잘 맞는 친구를 만난 것처럼 좋은 느낌이 지속되다가 결과까지 좋을 수도 있고, 또는 반대일 수도 있지만.
많은 의뢰인들이 좋은 변호사를 만나려고 한다. 하지만 변호사인 내가 보기에 좋은 변호사란, 전체적으로 나와 잘 맞는 변호사, 또 바쁜 변호사라고 하더라도 과정에서 신뢰가 가는 변호사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더 큰 후회를 하기 전에 얼른 해임을 하는 것이 더 낫다. 변호사와의 선임계약은 일종의 위임계약으로 언제든 해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물론 착수금 반환은 별개로 남겠지만 말이다).
설령 착수금을 일부 반환받지 않더라도 뭐 어쩌겠는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을 믿을 수 없는 사람에게 맡기는 것보다는 이 편이 훨씬 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