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떤 사람과 함께 하느냐에 따라 나의 삶이 바뀐다.
이혼을 앞두고 변호사를 찾아오는 많은 의뢰인들이 이야기를 하는 도중, 또는 처음부터 눈물을 보인다. 어제의 일이다. 40대 후반정도의 여성분이 이혼 상담을 하고 싶다면서 나를 찾아오셨다.
그녀는 상담 테이블에 앉자, 바로 백팩에서 노트를 꺼냈다. 낡은 노트에는 변호사 상담을 할 때 물어봐야 할 질문 리스트가 숫자별로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그리고 펜을 함께 꺼내어 나에게 처음에는 양육권을 누가 가져가는지, 양육비는 어떻게 책정이 되는지, 재산분할은 어떻게 되는 건지 담담하게 물어보고, 글로 열심히 적기도 했다.
아마도 그녀는 변호사를 만나러 오기 전까지 아주 많은 생각의 과정을 거친 것 같았다. 그리고 혹시라도 까먹고 묻지 못한 질문이 있을까 싶어 해야 할 말들을 적어 여기까지 나를 만나러 온 것이다. 그렇게 순식간에 30분의 시간이 지나갔다.
" 더 궁금한 것이 있으세요?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
나의 말에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젓고, 노트를 덮었다. 그리고 갑자기 나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 저 궁금한 것은 다 물어봤고... 이제부터는 개인적인 이야기예요. "
그리고 그녀는 말한다.
나는 사실 이혼을 하는 것이 두렵다고, 그리고 아이들을 이혼 가정에서 잘 자라게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고도 말했다. 어떤 면에서는 이혼할 마음을 정하기 전 하는 말일수도 있고 아니면 어떤 위로를 듣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무엇이 되었든 그녀는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이혼 상담을 하다 보면 생각보다 많은 의뢰인들이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변호사 사무실에 찾아온다. 그리고 여러 가지 이유로 망설인다. 가장 큰 것은 아무래도 자녀 문제이다. 아이들의 앞날을 생각 안 할 수 없는 것이다. 그 이후에는 아마 이혼 후 맞닥뜨려야 할 이혼 이후의 삶과 실질적인 불이익이 걱정된다.
이 과정에서 의뢰인들은 변호사인 나에게 나의 의견을 묻기도 하지만, 내가 어떤 말을 해 줄 수 있을까? 결국 이혼이라는 종착점에 다다르게 되더라도 각자의 사정은 모두 완전히 다르다. 변호사 또는 조정위원으로서 이혼의 원인을 크게 나누면 상대방의 외도, 폭행과 폭언, 그리고 완전히 다른 성격차이로 분류된다. 혼인파탄의 귀책사유를 나누다 보면 어느 정도의 위자료 금액도 예상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조금만 귀를 기울여보면 그들의 사정은 모두 다르다.
나는 변호사로서, 이혼을 상담하러 온 많은 의뢰인들에게 '이혼은 꼭 마음을 먹었을 때 진행하셔야 한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망설이는 의뢰인의 경우에는 이야기만 듣고 '다시 한번 찬찬히 생각해 보시라.'라고 말하며 돌려보낸다. 민사나 형사 소송의 경우 당장 시일이 촉박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혼 소송은 다르다. 이혼은 무척 신중하게 마음을 먹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혼은 결혼만큼이나 삶이 완전히 바뀌는 인생의 중대한 결단이기 때문이다.
이혼을 하고 난 후 삶은 어떻게 바뀔까? 나는 이혼 소송 이후 의뢰인에게서 종종 연락을 받기도 하고 어떤 경우 만나기도 한다. 겉으로 볼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적어도 지금까지 내가 보았던 대부분의 의뢰인들은 소송 전의 고통과 우울에서 벗어나 이혼 후 얼굴이 빛나고 삶이 윤택해졌다.
이렇게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내가 어떤 사람과 함께 있느냐에 따라 나의 삶이 바뀐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민감하게, 물론 나 또한 내 주변의 다른 이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기도 하고 악한 영향력을 주기도 한다(대부분은 그런 일들은 의도와 관련 없이 일어난다). 하지만 만약 내가 어떤 사람과 결혼한 이후 결과적으로 삶이 불행하다면 그 사람은 나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지 않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대부분 그 사람과 완전히 단절하는 것만으로도 삶은 무척 좋아진다.
유한한 삶에서, 좋지 못한 사람에게 얽매여 인생을 허비하는 것만큼 괴로운 일이 또 있을까? 사실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다. 내가 비록 '이혼'이라는 좋지 못한 일을 겪더라도, 한편으로는 나는 그만큼 나의 인생을 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