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의 겨울
드디어 파리를 떠나고 있다.
하늘에는 해가 뜨고, 구름이 낮게 깔려 오늘도 잔뜩 비가 올 것 같다. 버스는 14시간을 달려 바르셀로나에 도착하기로 되어 있다. 아침 9시에 포트 마유에서 출발하는 바르셀로나행 버스를 타기 위한 과정은 무척 힘겨웠다. 겨우 포트 마유에 도착했을 때는, 한낮에 걸쳐 밤 시간에 바르셀로나에 도착하는 버스를 이용하려는 승객이 별로 없었다.
덕분에 2층 버스 위에 올라타서, 좌석을 두 개나 차지하고 누워, 나는 지난밤의 부족했던 잠을 청했다.
파리는 이상한 도시였다.
첫날, 나는 강변이 보이는 호스텔을 하루 전날 겨우 예약하고, 브뤼셀에서부터 4시간 반에 걸쳐 파리의 북쪽에 내렸다. 짐을 풀게 된 곳은 12인실 여성 도미토리였는데, female 돔이기도 했고, 강변이 바로 앞에 보이며 독립된 커튼을 칠 수 있어 크게 불편하진 않았다. 그리고 난 고작 하루 이틀정도만 파리에 머물 생각이었다.
오스트리아에서부터 지나치게 미술관을 갔다 온 데다가, 암스테르담에서 이미 고흐 박물관도 갔다 온 터라 긴 줄을 기다려 루브르 박물관에 갈 생각도 없었고, 나는 파리 시내 곳곳을 정처 없이 걷기로 했다.
그날 밤, 나는 노트르담 성당에서부터 에팔탑이 보이는 센 강을 따라 4시간 정도를 걸었다. 사실은 퐁네프 다리를 가보고 싶어서였다. 깊은 밤 속의 퐁네프 다리는 굉장히 고즈넉하고, 단출했다. 그 사이사이로 보이는 불빛과 나무들이 너무 아름다웠다.
파리는 베를린보다 구름이 잔뜩 낀 날씨에다가, 뜬금없이 비가 쏟아지곤 했다. 사람들은 모두들 굳은 얼굴로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파리의 지하철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역마다 페인팅들이 요란하게 되어 있었고, 집시들이 어디에나 많았다.
다음 날, 나는 루마니아로 가기로 했었는데, 루마니아로 가는 비행기가 출발하는 보베공항이 파리 외곽에 떨어져 있고, 숙소와 엄청나게 먼 거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새벽에는 버스가 다니지 않아, 택시를 타고 새벽 4시쯤 출발해야 한다는 것도.
그날은, oprea역을 지나가다가 핸드폰을 분실하였고(oprea역은 소매치기가 가장 많은 역 중에 하나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바로 숙소로 돌아와 로비에 있는 bar에 도움을 받은 한국여대생들과 4시간가량을 앉아 있으면서 생각했다.
핸드폰을 잃어버린 것은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상태에서 루마니아로 가는 것은 그 당시 나에게 매우 힘든 일이었다. 루마니아까지 가는 길도 그렇지만 그곳은 무척 치안이 안 좋은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ㅡ 나는 바로, 새벽 4시에 보베 공항으로 가는 것을 포기하기로 하고 그다음 행선지를 정해야 했다.
처음에는 볼로뉴 숲으로 갈까 했다. 볼로뉴는 바르셀로나랑도 가깝고, 조용한 소도시이며, 아마도 자연경관이 아름답지 않을까 해서.
파리에 온 나는 역시 대도시와는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하지만 숙소를 예약하기가 힘들어 보여 14시간에 걸쳐 그날 밤 야간 버스로 바르셀로나에 가기로 했다.
루마니아를 포기한 날, 나는 마레지구를 걷고 오르쉐 미술관에 갔다. 오르쉐 미술관은 생각보다 더 좋았다. 사람들도 적당히 많았고, 곳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글을 쓰거나 스케치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날은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하였고, 가지고 있던 까르네 10장을 다 쓰면서 지하철을 타고 다녔다. 그리고 다시 호스텔로 돌아와, 야간버스를 타기로 한 '포트마유'로 가는 길을 물었다.
호스텔 직원은 잘못된 역을 알려주었고, 잘못된 시간을 알려주었다. 사실은 완전히 잘못된 길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어느 정도는 돌아가는 역이었으니까, 하지만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아마도 밤 9시 30분까지 포트마유에 도착하기는 아무래도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파리에 단 하루도 머물고 싶지 않아서, 중간에 내려 택시를 타기로 했다.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여자택시기사에게 최대한 빨리 포트마유로 가자고 했다.
나는 그렇게 파리의 택시를 탔다. 택시 기사는 열심히 달렸지만, 포트마유에 도착했을 때는 타기로 한 야간버스가 마침 출발하고 있는 때였다. 그때의 시간이 9시 33분이었다. 기사가 내려 다급하게 버스를 세웠다.
나는 택시에서 내릴 채비를 하고 초조하게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버스는 더 이상 멈추지 않고 황망하게 떠나버렸다. 택시기사는 '그가 멈추질 원치 않았다'라고 했다. 물론 내가 3분 정도 늦긴 했지만 나는 너무나도 당황스러웠다. 어떻게 이럴 수가?
택시 기사는 미안해했지만, 물론 그녀의 잘못은 아니었다. 나는 포트마유역에 캐리어를 끌고 내렸다. 그때 파리의 시간은 밤 10시가 거의 다 되었다. 나는 다시 한 시간에 걸쳐 이전에 묵은 강가의 호스텔이 있는 crimee역으로 가야 했다. 다른 길은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리고 와이파이가 필요했기 때문에.
이미 몇 번이나 탄 파리의 지하철을 타고, 황망하게 앉아서 나는 올 때와 달리 무척 천천히 움직였다. crimee역에 내리고 싶지 않았다. 가능하면 포트마유역에 있으면서 어디로든 출발하는 그다음 버스를 타고 파리를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물론 그럴 수 없었다.
포트마유역에서 다시 crimee역으로 가며, 난 정말로 많은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아무 생각도 안 하기도 했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잘 맞지 않는 도시가 있는 법이다. 그리고 나에겐 정말로 기쁨이, 아름다움이 되는 도시가 있기도 하다.
나에게 파리는 정말로 떠나고 싶은 도시였다. 어쩌면 처음부터 그다지 가고 싶은 곳이 아니라고 생각해서였을까?
나는 힘겹게 호스텔로 되돌아와, 버스를 놓쳤으니 하룻밤 더 머물 수 있냐고 물었고 원래 묵었던 12인실 female룸으로 예약할 수 있었다. 그날은, 물론 굉장히 비 효율적인 일이 될 테지만 파리에서 가장 빨리 떠나는 바르셀로나행 버스를 예매했다. 그것은 아침 9시에 떠나 밤 11시에 도착하는 버스였다.
그러고 나서, 이미 새벽 1시가 다되어 가는 시간에, 나는 k라고 적힌 2층침대로 올라왔다.
밖은 고요했고, 로비의 bar는 문을 닫았다. 글을 쓰고 싶었지만, 타자 치는 소리가 크게 들릴까 봐 일기를 쓰기로 했다. 하지만 어이없게도 개인전등이 나가있었다.
나는 연락을 기다렸다 crimee역으로 돌아오는 길에 든 여러 가지 생각 중에서 하나는 일본에 가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다. 어쩌면 일본에 있는 친구와 2주 정도 함께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녀에게도 내가 굉장히 필요할 것이다. 내가 필요한 곳으로 가고 싶다. 날 기다리는 곳으로, 하지만 그녀는 일본에 있고, 난 핸드폰 번호를 모른다. 그리고 카카오톡은 지금 할 수 없다.
하지만 어떻게든 연락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파리에 더 있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는 무척 지친 나머지 바르셀로나에도 가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2층 침대에 누워 나는 잠이 들고자 했으나, 이미 시간은 새벽 3시를 넘어가고 있었으며, 인터넷도 되지 않아 잠시 쉬기로 했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밤은 깊어지고, 이미 깊게 잠든 외국여자애들의 숨소리만 들리는 가운데, 창문 사이사이로 보이는 가로등 불빛에 젖어있는 돌바닥이 커튼 사이로 보였다. 그것은 작년 부다페스트에서 봤던 그 불빛과 매우 비슷했다. 새벽 3시 반을 넘어가는 시각, 거리에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 보였다. 강 주변의 일렁이는 가로등 불빛만이 번져가고 있었다.
모두가 잠든 새벽, 노트북을 열어보니, 때마침 인터넷이 다시 연결되어 있었다. 나는 bach의 air on the g string을 듣기로 했다. 그리고 그리운 피아노 소리를 들으면서 베개에 얼굴을 묻고, 눈을 뜨고 생각했다.
나는 왜, 여행을 떠나온 것일까? 분명히 이유가 있었다.
나는 관광을 무척 좋아한다거나, 어떤 포인트를 꼭 찍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나는 유명한 곳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며, 꼭 가고 싶은 곳만 가는 편이고, 사진도 잘 찍지 않는다. 나는 스쳐 지나가며 보이는 그 순간순간의 느낌을 사랑한다.
그리고 그 순간순간의 일렁임이 없으면 아무리 유명한 곳이라도 바로 떠나버리곤 한다.
내가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내가 가고 싶을 때 언제든지 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나에게 진정한 자유로움을 줬다. 나는 머물 필요가 없으며, 어떠한 이유나 합리화를 할 필요 없이 그때그때 느끼는 대로, 그 감정에 충실할 수 있다.
그리고, 어떠한 벅찬 풍경 속에서, 아마도 다시는 보기 힘든 자연의 아름다움 속에서 내 안의 고인 것들이 마모되고 넓어지는 느낌이 좋았다. 풀숲 한가운데 있으면 ㅡ 나는 전혀 외롭지 않았다.
하지만 거대한 대도시에서, 핸드폰을 잃어버리고 아무도 모르는 지하철역에 앉아 버스를 놓치고 돌아가는 길은 나에게 절절한 괴로움을 안겨줬다. 그것은 고통과도 같은 고독이었고, 그 사이에는 내가 찾을 것은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분명한 ㅡ 이유를, 여행의 근원적인 물음을 던져야 했다.
그것은 분명히 나 ㅡ 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에 가까운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가 나는 깨닫게 되었다. 이제 이런 여행은 이걸로 그만하기로 하자. 고인 물을 퍼내려 가는 여행은 이제 여기서 그만두기로 하자. 아마 다른 방법이 있을 것이다. 여행은 쉼ㅡ 으로, 즐거움으로 하기로 하자.
그리고 언젠가 때가 되면, 지금껏 다녔던 곳 중에서 가장 기쁨이 되었던 곳을 다시 한번 찾아가 그 자연을 느끼기로 하자. 황량한 이리와도 같은 여행은 이제 끝내기로 하자고 그렇게 다짐했다.
동시에, 나는 내가 원하는 바를 약간이지만 분명하게 ㅡ 느낄 수 있었다. 완전히 흐릿하던 가닥을 잡은 것이다. 다음번에는 그것을 위해, 다른 방법을 택할 것이다. 아마도.